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미선 Dec 21. 2017

실수에 대하여

실수는 인간 조건에 내재된 것

미국 살면서 가끔 느끼는 것 중 하나는 한국 삶과 비교했을 때 마치 아날로그 세상으로 되돌아온 것 같다는 점이다. 물론 내가 시골에 살고 있기 때문일 거다. 미국 대도시는 안살아봤으니...

한국에 보낼 서류가 있어 몇 주 전 신랑이랑 우체국에 가서 무사히 절차를 마치고 왔다. 그런데 한국에는 도착할 생각을 안하는 것이다. 당장 급한 건 아니라서 별 생각 안하고 지내다가 늦어도 너무 늦는다 싶어서 확인서를 보니...

세상에, 받는 곳이 South Africa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일본인 직원이었는데, 여기서 일하는 게 신기하다 싶을 정도로 발음을 알아듣기 어려웠었다. 물론 내가 영어를 못하기도 하지만..흠흠.. 뭐 원어민 신랑도 알아듣기 어렵다 했으니...

무튼 받는 주소에 South만 보고 급하게 일처리를 하다가 그렇게 된 거겠지. 그래서 오늘 우체국에 다시 갔는데, 어쩜 오늘도 그 직원이 담당자가 되었다. 한국 같으면 대기표 뽑고 의자에 앉아 기다릴 텐데 여긴 의자도 없고 그냥 오는 순서대로 줄을 서서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우체국 안에는 핸드폰 인터넷도 안 돼서 뭐 찾아볼 게 있어 잠깐 밖에 나갔다 온 사이 신랑이 물어봤나보다. 다시 들어왔더니 그 직원이 알아보러 갔다며 잠시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잠시 후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난 직원은 마치 다른 사람이 실수한 것인 양 말을 한다. 아마 신랑은 당신이 이거 접수했던 사람이라고 애초에 말을 하지 않았을 게다. 보나마나...

직원의 그 태도에 나는 좀 짜증이 났다. 사우스 아프리카로 간 나의 서류는(개인정보도 있는데) 지금쯤 어디를 헤매고 있을지...

올라오는 그 짜증에 저항하지 않고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이니 금세 잠잠해진다. 정말 1분도 채 안 걸렸다. 그러면서 실수에 엄격한 내 자신을 발견한다.

실수는 인간 조건에 내재된 것이다. 실수를 하지 않고 사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 나는 나 자신이든 타인이든 실수에 대해 언제나 엄격했다. 실수를 하면 미친 듯이 짜증이 나고 화가 났던 것이다.

그 아래는 뭐가 있는 걸까? 바로 자존심이다. 나는 실수하면 안 되는 것이다. 남들에게 완벽한 존재로 보여야 하는 것이다. 나 자신에게 그러니 남들에게도 똑같은 것이다.

그럼 나는 실수하는 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을까? 이 생애서 그것을 배워가는 중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법. 그것만이 그 너머에 진짜 완벽한 참나가 드러나는 길이라고 많은 성인들이 말씀하셨다.

오늘도 또 하나 배우는 감사한 날이다.

The only

The only real tragedy is to become older but not wiser.


David R. Hawkins, <현대인의 의식지도>



작가의 이전글 각자의 의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