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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미선 Jan 27. 2018

통제 욕망

살아남기 위한 에고의 몸부림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은 두려움이라는 감정과 맞물려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인간의 특성상 미래는 불투명한 안개와 같다. 그래서 과거에 바탕한 미래 계획하기는 인간 존재의 살아남기 위한 강력한 무기가 되었고, 그걸 못하는 사람은 사회부적응자 혹은 낙오자로 비춰진다. 삶에 아무런 열정도 갖지 않고 인생을 의미없이 살면서 그 인생을 낭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언젠가부터 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깨달음이 되었다. 이번 생에 이루지 못한다 해도 그 원은 계속해서 나를 이 세상으로 데려올 테고, 반드시 목적지에 닿을 것임은 자명하다.


삶의 방향이 이렇다보니 내 삶의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그 목적에 부합하는가 하는 것이고, 목적달성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최대한 이용하려고 노력한다.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님의 가르침이 그 중 가장 큰 수단이다. 모든 것을 신께 내맡기는 것이 핵심이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다.


평생 나라고 생각해 오던 것, 옳다고 생각해 오던 것을 하나씩 놓는 과정은 말 그대로 에고가 조금씩 죽어가는 과정이다. 에고에겐 이 작업이 자신을 죽이는 끔찍한 것이기에 거세게 저항할 수밖에 없다. 문제를 외부로 투사해서 자기합리화를 꾀하고, 자기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자 한다.


내 덕분에 네가 살 수 있는거다!라는 걸 어필하기 위해 끊임없이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고자 한다.


그런데 조나단을 통해서 에고가 세우는 계획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를 여실히 깨닫고 있다. 순간순간 변하는 계획은 나의 에고를 미치게 만든다. 계획을 세웠을 때 에고는 그에 맞춰 세세한 내용을 다시 계획한다. 그런데 그게 무산이 되면 존재 자체가 무시당한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너 때문에 내가 짜증난다고, 내 안에 있는 부정성을 상대방에게 투사하고 옳고 그름의 위치성을 만들어 피해자 위치성을 강화한다. 그게 에고가 하는 일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매번 그 에고에게 속아 감정의 피해자가 되곤 한다.ㅠㅠ


요즘 많이 드러나고 있는 에고의 가장 큰 기능이 바로 그것이다. 통제하려는 욕망.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돈은 없는데 일은 할 수 없고, 경제권이 없고 영어가 유창하지 않다 보니 큰 일을 결정하는데 있어 내가 원하는 것을 조나단에게 강요할 수 없다.


조나단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큰 도시로 가고싶어하지만, 나는 세도나에 살고 싶다. 그런데 세도나에 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당장은 없는 것이다.


직관적으로 나는 우리가 세도나에 살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어쩌면 몇 년은 도시생활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건 어쩌면 조나단의 배움을 위해 필요한 시간이라는 생각도 든다. 사회생활을 거의 하지 않은 조나단이 세상을 마스터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


그러면 지금 조나단이 잡을 구하지 못하는 것이 나의 저항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걸 알아차리는 지금 이 순간 그 저항이 놓아졌음 또한 알아진다.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나의 계획은 계획하지 않음이다. 펼쳐지는 삶을 있는 그대로 완벽하게 받아들이며 그저 한 발짝씩 나아가는 것. 그것이 내 계획의 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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