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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잔 Aug 25. 2021

거꾸로 매달려 있기

취약성 극복의 새로운 시각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꿰뚫어 보는 지식을 타고난다…. 어린아이에게는 탐구능력이 없다는 믿음이 강요되는 경험 때문에 배반당하고 훼손된다.   

                                                                 -진 라들로프의 잃어버린 육아의 원형을 찾아서 중-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기만의 감옥이 있다. 나는 그 말을 믿는다. 그 감옥은 자신이 세운 자신만의 틀과 원칙, 세상을 보는 시각이다. 그곳에서 벗어나는 길은 만기출소, 죽음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패턴과 궤도를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안정이라는 것은 사실 쥐약이지만 늘 그렇게 한다. 결국 우리가 하는 일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늘 해왔던 것을 하는 것을 반복하려 하므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자신을 더욱더 도태시킨다. 피하는 것이 그때는 편하고 좋으나, 시간이 갈수록 경쟁력도 떨어지고 변화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대부분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더 변화를 두려워하고, 새롭고 낯선 곳에 있을 때 더 자신을 보호하려고 애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주어진 환경을 벗어나 새로운 창조와 변화를 꿈꾸는 것은 어렵다. 어린 시절 부모들의 가치관과 양육 방법, 학교 교육, 종교 생활 안에 나도 모르게 그 속에 젖어있게 되고, 한 번도 내가 세상과 나를 어떤 방식으로 보는지 잘 모른다. 소위 객관적으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그래서 어렵고, 나의 주관과 관점이 늘 그 속에 있게 된다. 그 편향성은 늘 자기 보호와 안전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가진 틀을 한 번 의심할 때는 일상생활에 문제가 있거나 대인관계에 어려움이 있을 때이다. 이 때는 자기 생각을 곰곰이 생각해 보기도 하고, 타인의 도움을 받으려 전화를 하며 조언을 얻기도 한다. 이럴 때에도 내 생각과 유사한 사람을 찾지, 나와 완전히 다른 생각과 가치를 가진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이것이 확증편향의 오류이다. 그래서 변화가 어렵다.      


  변화를 늘 바라면서도, 변화가 필요한 순간 자신만의 스타일과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다. 그래서 혁신이 어렵다. 사실 엄밀히 말해서, 오늘 하루도 늘 우리는 과거의 방식대로 무의식적, 의식적으로 처리한다. 식사할 때도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한다. 출근할 때는 다녔던 길로 다니고, 직장에서도 반복되는 패턴대로 일을 처리하며, 만나는 사람들과도 똑같이 반응하려 한다. 늘 일생이 새로울 것은 없다. 새로움을 경험하는 것은 기존의 반복되는 틀로서는 되지 않는 하나의 변화이다. 이럴 때에 무의식적, 의식적으로 처리했던 그것이 안 되어 버퍼링이 걸린다. 이때 자신을 의심하고, 평상시 숨겨왔던 취약성이 드러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취약성이라는 것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새로움을 경험할 때 나오는 자동적인 부분이다. 본래의 나의 일부분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나는 이 취약성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좀 더 생동감 있게 살 수 있을까? 오랜 기간 고민 끝에 한 가지의 방식을 찾았다. ‘거꾸로 매달려 있기’이다.      


  거꾸로 매달려 있기란, 타로를 공부하거나 타로점을 본 사람은 타로의 12번 카드 행맨(Hangged Man)을 연상할 것이다. 나는 타로 공부를 몇 년 스스로 해 보면서 이 행맨 카드가 주는 메시지에 개인적으로 깨달은 바가 컸다. 자신이 현재 무엇을 시도해도 자유롭지 않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도 제한적이라는 이 카드 주인공의 암시이다. 오직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정확히 알고, 매달려 있기 편하게 내가 가지고 있는 짐들을 내려놓는 것이다.      


  우리는 위기나 변화가 필요할 때,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좋은 방법을 찾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다. 점을 보거나 자신의 종교적 지향에 따라 기도를 하기도 한다. 좋은 조언자, 상담자, 문제 해결 능력이 우수한 사람이 옆에 있으면 한 숨 돌릴 수 있다.


  물론 외부의 상황이 좋아질 때가 있다. 그때가 오면 무언가 보이지 않는 외부의 힘, 에너지, 기운, 운, 타인의 도움으로 있게 된다. 이럴 때 내가 운명의 주체가 아니라 운 좋게도 벌어진 것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는 것을 더욱 믿게 된다. 이를 더욱 믿고 자신의 내면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며 좋아지는 상황만을 바라보는 피동적인 삶이 된다. 삶의 주인이 아니라 운명의 종이 된다. 이는 내가 운명의 주체가 아니라 생각하기에 자신이 어려운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도 없고, 다음의 위기의 순간이 와도 체득된 지식과 지혜가 없기에 늘 외부의 힘에 귀인 하게 된다. 


  요즈음 같이 내 인생이 꼬이고 답답하다고 여길 때, 나는 자주 12번 카드를 본다. 원래 이 카드의 의미는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리고 견디라는 의미이다. 오래 견딜 수 있도록 내가 쥐고 있는 것을 버리고 주어진 현실을 있는 그대로 살펴보라는 것이다. 삶을 제대로 살려면 내 뜻대로 되지 않은 때도 있고, 내가 견디어야 할 시기가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내 힘으로 되지 않는다고 안간힘을 발버둥 치는 것보다 현명한 것은 나도 모르는 무의식적인 흐름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어보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 흐름을 탐구하려는 태도이다. 정확 치는 않지만 이해해보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현재 역경에서 내면의 흐름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또한 상황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의식적인 흐름의 영향도 알고, 그 속에서 자신의 내면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관찰할 수 있게 된다. 그 알 수 없는 힘은 일방적이지 않다. 내가 동조하고 알려할 때 반응해주고 협조해 준다. 역경이 나와 별개로 존재한다고 생각할 때 이질적이고 괴롭지만, 그것이 주는 흐름과 메시지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려 할 때는 달라진다. 나는 피동적인 존재만은 아닌 견디는 힘이 있는 주체적인 존재가 된다.     


  어찌 보면 나에게 그것을 풀 좋은 기회와 스승, 수행, 만남이 있었을 수 있는데 내가 묶였다는 것에만 열중해서 그것을 외면했던 것 같다. 나만 묶였다. 나만 아프다. 여러 방법을 찾았지만, 이 방법도 없고 이 모양 이 꼴이다.라고 나를 자책하고 있는 줄 모르겠다.      


  또, 어찌 보면 우리 삶 자체가 이렇게 묶여 있는지 모르겠다. 몸이라는 나라는 것이 현실에 묶여 있지 않으면 삶 자체를 경험하지 못한다. 내가 죽겠다고 힘들다고 발버둥만 치지 않는다면 주어진 그 고통만 받으며, 그 안에서 내가 더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힘을 빼고그냥 지금 사건만을 온전히 경험하자나에 관한 판단과 타인에 대한 평가를 흘려보내고피하지 말고 그냥 그 자리에 있어 보자어떻게 상황이 변화되고 내 마음이 어떻게 변하는지 묶여서 있어 보자."


"그래! 내가 나를 힘들게 하는 생각과 감정이 지나간 후, 내가 찾은 나만의 행동을 정성을 다해 행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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