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자의 특성을 통해 본인간 심리
“벗어날 수 없다면, 뛰어들라!” 예를 들어, 타자가 두렵다면 정면으로 마주 보며 그/그녀의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라. 그리고 당신의 공감이 확장될 때 두려움이 줄어드는 것을 지켜보라.
- 파커 팔머 -
최근 들어 생각해 본 주제는 ‘사람에 대한 이해’이다. 한 개인을 이해하는 데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개인의 삶의 역사, 자라온 생활환경, 교육, 부모와의 상호작용 등 중요 타인과의 관계 경험, 사회적 시스템과 시대적 배경까지 포함해야 한다. 이러한 객관적인 정보 이외에 이것들을 개인 스스로 얼마나 정리하고 표현할 수 있는가에 따라 그 이해의 수준은 차이가 생긴다.
초월 심리학의 대가 켄월버가 이야기 한 대로 개인의 이해는 얼마나 자신의 문제를 솔직하게 털어놓느냐, 즉 진실한가에 차이가 있다고 한다. 좋은 일에는 이야기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고, 심지어 자기 과시를 하기도 하지만 힘들거나 수치스럽고 취약한 경험에 대해서는 숨기게 되고 억압하게 된다. 불편함과 어려움에 대한 마음의 긴장과 두려움에, 우리는 많은 정신적, 신체적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수치심은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와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볼 것이라는 추측에 기반한다. 수치심을 경험한 개인은 마치 그러한 추측과 생각이 사실인 양 온몸으로 느끼며, 그러한 감정을 빨리 덜어내려고 애쓴다.
Nathanson이라는 학자는 수치심을 느낄 때 보이는 반응을 철수, 자기 공격, 타인 공격, 회피 반응으로 설명하였다. 부끄러운 감정을 느끼는 것을 허용하지 못하고 상황을 피하거나, 느끼지 않으려 노력하기도 하며, 자신에게 수치심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타인을 공격한다. 가장 흔한 경우가 자기 비난과 비판으로 자신을 옭매이는 경우다. 늘 매 순간 잘할 수 없고 실수와 실패를 할 수 있는데, 자신이 세워놓은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과 현실에서 경험하는 자기의 모습이 배치된다고 느끼면 매우 불안하고 우울해한다. 또한 새로운 변화와 경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외면하여 지속해서 수치심을 느끼는 환경을 스스로가 만들게 된다.
나는 수년간 범죄자들을 상담하면서 그들이 갈등 상황이나 취약해질 때 드러나는 4가지 패턴들을 여실히 살펴보았다. 교도소는 사회생활의 축소판이며 좀 더 그들의 갈등을 좀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교도소에 들어오는 것이 위기지만, 그 위기 속에 개인의 취약성이 또 찾아온다.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연락이 두절 때, 자신이 예상했던 형기보다 많은 형을 확정 지었을 때, 같은 거실 동료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지 못할 때, 해왔던 사업이 실패하여 출소 후에도 재정적으로 큰 어려움에 부닥칠 때, 부모나 형제가 아프거나 돌아가실 때, 생활하는데 필요한 보관된 돈이 부족할 때 등 교도소 생활의 적응에 어려움을 나타낸다. 교도소 생활은 자신의 취약성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범죄의 재발 방지를 위한 프로그램과 심리상담도 일차적으로 중요하지만, 이곳에서의 자신의 취약성을 살펴보고, 그것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취약성을 극복하지 못하여 범죄로 이어질 수 있고, 이곳에서 잘 적응하고 나아가야 사회 복귀의 꿈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담자로서 나는 늘 이들의 취약성을 매 순간 마주하게 된다.
내가 만난 수형자들의 범위가 한정되어 있다지만 가장 많이 보인 모습은 ‘회피와 철수’ 유형이었다. 나는 이들을 ‘자신만의 시간을 기다리는 자’라고 칭한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거나 할 수 있는 것이 이곳에서는 없다고 말한다. 즉,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나 문제 상황을 숨기거나 모른 체하며 시간만 지나가길 바란다. 소일거리로 TV, 판타지 소설, 만화책, 잡지를 보며 아무 생각 없이 출소일만을 기다린다. 문제를 집중하지 않고 축소하려 한다. 심리상담시 이러한 현재의 심리적 상태에 대하여 언급하면 이 유형이 가장 많이 하는 소리가 ‘여기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잖아요?’라고 오히려 되묻기도 한다.
두 번째로 많이 보이는 유형은 ‘자기 공격’ 유형이다. 나는 이들을 '인생의 교훈을 들으려 하지 않는 자'라고 칭한다. 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힘들다”라는 말이다. 무엇에 힘든가에 관해 물으면 겉에 드러난 다양한 증상만을 호소한다. 교도소에는 많은 사람이 우울증과 불안장애, 수면장애 약을 복용하고 있다. 낯선 상황에 적응하려니 심리적 스트레스가 많은 것도 있지만,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보지 않고 약에 의존하는 사람이 많다.
최근 들어 공황장애를 겪는 환자들도 많다. 어느 수형자는 아내와 딸이 죽은 것이 모두 자신의 탓 인양, 10년이 지난 일에 매여 일상이 생활이 안 될 정도로 죄책감과 수치심에 고민하는 사람도 있다. 증상이 왜 생겼는지에 대해 탐구하기 어렵고 증상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 무엇 때문에 힘든지,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지는 관심이 없다. 상담자인 나는 그 당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왜 자신의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는지, 그것이 왜 사건화로 일어났는지? 를 찾아보도록 안내를 해도 신체적인 반응에만 초점을 둘 뿐, 증상이 어떻게 발현되고, 증상이 발현될 때 어떤 생각하고 있으며, 그 생각이 어떻게 증상을 악화하는지 관심이 없다. 그의 내면에는 여전히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허덕이고 있다. 이러한 사람을 돕는 데는 그 사람의 무의식이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까지 인내를 가지고 접근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세 번째로는 '타인 공격'유형이다. 이들은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은 자'라고 칭한다. 이들은 자기 자신을 단순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한다. 교도소에서는 아픈 환자나 특이한 사항이 없는 경우 수형자들은 혼거수용이 원칙인데, 이 유형 중 많은 사람은 거실 동료와의 반목으로 독방 수용을 요구하거나 싸움을 일으키기도 한다. 더 심한 경우 직원을 폭행하거나 동료를 폭행해 다시 추가형을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원인은 다양할 수 있지만, 자신의 욕구와 생각을 관찰하려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감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조사 수형자나 징벌 수형자를 만나 상담을 해 보지만 거의 모든 사람은 자신은 억울하고 타인과 함께 생활하는 것은 불편하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 하며, 자기 생각이 100% 옳고, 타인의 입장과 상황을 이해하는 능력이 매우 부족하다.
마지막으로는 간혹 보게 되는 '종교로의 도피' 유형이다. 교정기관에서는 종파마다 종교집회도 있고, 종교의 교정위원들이 수형자를 찾아와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데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수형자에게 생활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동안의 잘못을 뉘우치고 새로운 삶에 대해 결심을 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힘든 수형생활 속에서 종교에 의지에 재활과 사회 복귀를 준비하지만, 그중 걱정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이들을 ’ 알고 보면 실망하는 자’라고 칭한다. 이들은 하나같이 생활을 잘하는 듯 보이고, 긍정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거실을 함께 생활하는 동료는 이들과 생활이 불편하다고 하나같이 이야기한다. 나는 이 유형과의 면담을 통해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 들의 말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를 용서하셨다.”, “출소 후 아버지가 하던 일을 물려받으려고요.”, “출소 후 다 잘될 거예요.”, “여기서도 견디었는데, 밖에서는 뭐든 못하겠어요.”라는 말을 한다. 불안감이 느껴지거나 자신 없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이들에게 구체적으로 나는 이런 질문을 한다. “하나님은 용서하셨지만, 피해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농사를 지어보신 적이 있나요? ", "월수입은 얼마로 예상되나요?", "어떤 부분은 잘 되리라 예상되고 어떤 부분은 어려움으로 다가올까요?", "여기서 어떤 마음으로 견디었나요?", "예전에 사회생활하실 때 어떤 점이 어려우셨나요? 그것을 여기서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대략 이런 질문을 하면 다소 당황하거나 왜 자신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혼란을 주느냐는 반응을 보인다. 어떤 사람은 평상시의 차분한 모습과는 다르게 “잘 지낼 거라 믿는데 왜 그런 질문을 하냐?”라고 반문하며 짜증 섞인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삶을 긍정하는 것은 무조건 덮어놓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는 그러면서 이들에게 좋은 수단이었다. 진정 신을 믿거나 진리를 찾기보다 현실을 생각하지 않으려 하거나, 남들에게 좋은 인상을 얻기 위해 선택되면 삶은 나락으로 빠지며, 나중에는 자신이 믿는 종교를 부정하게 된다. 삶의 긍정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 속에서 자신을 새롭게 발전시키려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종교에만 의지하고 자신의 몫,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부정한다면 이보다 위험한 것은 없다.
취약해질 때 우리는 불안하다. 우리 삶은 매 순간이 취약성을 맞닥뜨리는 현장이다. 우리의 삶이 좀 더 새롭기 위해서는 이 취약성을 극복해야 한다. 취약성을 극복할 수 있는 때는 언제 다가올 좋은 때도 아니다. 지금-이곳이다. 삶 그 자체이다. 때로는 상대방으로 인해 내 부족감이나 열등감이 올라오더라도, 나의 선택이 후회되어 쥐구멍에 숨고 싶더라도 그 피하고자 하는 감정을 경험해 보는 것이다. 내가 생각한 만큼 힘들지 않을 수 있다. 피해야 한다는 생각, 경험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나를 힘들게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