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빈잔 Aug 23. 2021

취약성을 생각한다

나의 투사에 대한 알아차림의 필요성

미리 정한 범주에 상대를 집어넣고, 그 범주를 통해 상대를 이해하려 한다. 그 범주를 근거로 상대가 겪는 고통을 비난하거나, 우리가 상대에게 품어야 할 자비를 회피하게 만든다. 

                                                                                                                 - 브레네 브라운-       



  나는 겉으로 보이는 멋있는 모습만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사람이 나에 대해 얼마나 친절하고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냐를 보았다. 아무리 훌륭하고 나보다 나은 사람이더라도 나를 홀대하는 느낌이 들면 가까이 다가가 배우려 하지 않고 등한시하였다.     


  10대, 20대에는 나를 인정하는 사람이 내 옆에서 나를 지지해 주기를 바랐고 그런 친구만 내 옆에 두었다. 30대는 친구 관계를 새로 맺기보다는 직장 내에서 내가 업무를 잘해나가도록 도와주는 동료와 상사를 원했다. 상황이 내가 바라는 대로 흘러가지 않고 괴로울 때는 나의 편이 되어줄 만한 사람에게 연락하여 불편한 나의 현실에 관해 이야기하고 내 편이 되어 달라고 징징거렸다.     


  40이 되면서, 나의 관계 패턴이 조금 바뀌었다. 친절하고, 호의적인 사람에 대해서 이전처럼 경계를 풀며 관계를 맺으려 하는 모습이 줄어들었다. 아마도 그동안 관계를 맺으면서 경험했던 아픔의 경험이었을 것이다. 상대방이 내 기대를 채워주는 경험보다는 내가 호의를 가지고 베풀었는데, 뒤통수를 맞거나 호의를 베푼 사람이 내 흉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지인을 통해 근근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 관계는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고, 눈에 보이는 사람의 모습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배웠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나이를 먹고 성숙해진 것은 관계를 끊고 살아가기보다 그럴수록 내가 부족해서 생긴 일일 수도 있으며, 무엇이 상대방을 자극하게 했는지 내 안의 요소를 살펴본다는 점이다. 내 안의 잘못한 점이 없다면 그냥 그 사람의 ‘어두운 부분’이라고 생각하며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한다. 그것이 나를 보호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어두운 부분이 있고, 나에게도 그러한 부분이 있어서 그 사람의 부정적인 모습이 전체적인 그 사람을 모두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한다.     


  교도소에서 근무하다 보다 보면 사람들의 어두운 부분을 보게 된다. 사실 그 어두운 부분으로 인해 죄를 짓고 들어온다. 하지만 그 어두운 부분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지만, 교도소에는 사람보다는 그 죄를 보고 사람을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야 수용관리가 되고, 그 어두운 면이 재발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정에서의 심리치료는 이 어두운 면이 개선되기를 바라고, 그에 맞는 교육과 심리상담이 이루어진다.      


  지금 근무하는 직장 전에도 상담업무에 종사하였지만, 이곳에 오면서 나는 사람들의 어두운 면을 더 자주 목격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수시로 하거나, 상대방의 부족한 점, 실수를 파헤쳐서 공격하는 모습. 자신의 작은 불편함에 노발대발하지만, 타인에게 자신이 어떤 불편감을 주는지는 생각해 보지 않는 모습.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무조건 상대방, 환경, 세상의 탓을 하는 모습. 약에 의존하며 자신의 문제를 회피하는 모습. 폭력, 지위, 돈, 말발을 자신의 힘이라 여기고 마구 휘둘리려는 모습. 자신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지속해서 상대방을 괴롭히는 행동들.      


  그 어두운 모습을 계속 지켜보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교도관에게는 스트레스가 된다. 이 어두운 면을 자주 접하다 보면 이 사람의 어두운 면을 가지고, 이 사람이 지은 죄와 연관 지어 자동으로 추측하게 된다. 직업적인 특성이 작용하여 투사되는 것이다. 이러한 투사들은 근무 연차가 늘어남에 따라 어느 정도 맞추는 확률이 늘어난다. 상대방을 볼 때 ‘사기범이니까 매끄럽구나! 100%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되겠구나!’라고 경계하게 된다. 그것이 나를 보호하는 수단이기는 하지만 그 사람 전체의 인격을 보는 것은 아닌데 하며 씁쓸함을 느낄 때가 있다. 


  어쩌겠는가? 그것이 직업병이다. 대화를 몇 마디 나누고, 생활하는 것을 지켜보면 느껴지는 기운이 있다. 경제사범은 문제를 덜 일으킨다. 교도소 내에서도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자신의 선택은 회사 직원을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이며, 자신이 한 범행은 성공한 기업의 총수에 비하면 아주 작은 것이라고 한다. 검사가 지금의 상황을 잘못 본 것이고, 재심을 하면이 상태가 곧 풀려날 것이며, 곧 상황이 좋아질 거라고 희망 섞인 말들을 한다. 이들은 거실 생활도 깔끔하며, 주변의 돈이 없는 수형자들을 돕기도 하지만 조금만 자신에게 피해가 오는 것을 애써 묵인하며 늘 밝은 모습을 보이려고 애쓴다. 대화하면 경제용어를 많이 쓰며 똑똑한 모습을 드러내지만 무언가 공허하고,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성범죄자들은 대부분 무언가 예민하다. 특히 상대의 취약점을 보는 눈이 발전된 듯하다. 자신이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작은 약점을 가지고 공격하려 하며 집요한 구석이 있다. 상대의 말을 오해하고 곡해하는 인지적 왜곡이 심하다. 감정적으로 취약하며 내면적으로 우울하고, 불안한 모습이 보이지만 그런 자신의 모습을 모르는 것처럼 비친다. 강간범은 다소 거칠고, 폭력적이며, 카메라 촬영범은 내향적이며, 대인관계를 잘 못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


  폭력범은 무언가 대화할 때 자신감이 있다. 사건은 욱해서 사람을 때린 것일 뿐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이다. 자신은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 구속되었지만, 지금까지 사람 나쁘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한다. 나름 의리를 강조하지만, 자신을 헐뜯거나 비난하는 소리가 들린다면 힘으로 응징한다. 자신에 대한 불만을 가지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상대방을 못마땅하게 한다. 내 편과 내 편 아닌 사람이 분명하다.     

 

  마약범은 극단적이고 통제가 되지 않는다. 사람 자체에 대한 신뢰가 가장 없다. 누범은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었다며 내 머리 꼭대기에 앉아서 나의 의도와 생각을 지레짐작한다. 외롭지만 상대방을 믿지 못해 늘 확인하려 하고, 경계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나의 투사이다. 내가 바라본 범죄자 집단들의 특징, 편견이다. 개별적으로 보면 다르지만, 다만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다. 다른 사람이 보면 또 다르게 판단할 수도 있다. 집단적인 편견을 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개별적인 개인을 만나보는 것이다. 흉폭하고, 인간 이하라고 판단하면 개인의 나는 대적하기 힘들고 꺼려지는 범죄 집단이지만, 범죄성향이 있는 한 사람이라 생각할 때,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은 가능해지고 변화의 모색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늘 새로운 범죄자를 만나는 데 그 개별성을 함께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 개인의 개별성을 인정하고 이해하려 할 때 변화가 되고, 내가 조금은 부담이 덜 되기 때문이다.      

  투사는 내가 보기 싫어하는 사람을 뭉뚱그려 판단해 놓고내 생각과 감정이 맞는 쪽으로 판단을 하는 인간이 가지는 취약성이다범죄자들, 약자들,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는 내가 흘러가는 생각과 생각의 흐름을 살펴보려고 노력한다. 또한,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내가 나를 그동안의 과거 경험, 그중 취약함을 보였던 나의 모습이 나의 전체적인 모습이라고 판단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이전 04화 고통 성찰 질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