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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잔 Aug 21. 2021

내 안의 목소리를 피하지 말자

고민해결 장소 만들기

살되, 네 생명을 살아라. 생각하되, 네 생각으로 하여라. 알되, 네가 깨달아 알아라.

                                                                                                 -차 마리사-         



  마흔 중반이라는 나이가 되었다. 성숙하고 자유로워질 줄 알았다. 이 정도 나이 되면 남들처럼 행복하고 삶을 즐길 줄 알았다. 가족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마음속의 허전함은 점점 커지고, 딸의 귀여운 장난도 허용되지 않았으며 훈계조로 화를 내는 날들이 늘어갔다. 딸은 울었고, 달래도 멈출 수 없는 울음에 너무 지쳐갔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고, 딸을 아프게 해서 마음이 아팠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다. ‘박사학위를 가진 상담전문가가 정녕 이 수준이었던가?’ 그동안 내담자에게 했던 나의 교훈적인 말들에서 모순을 느끼며 점점 자괴감으로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졌다. 잠을 못 자고 뒤척였던 날 내 안의 목소리는 선명해졌다. ‘이대로 사는 것이 맞는 걸까?’     


  자녀 출산으로 육아휴직을 하는 아내에게 나도 함께 쉬고 싶다고 말했다. 아내는 침묵했다. 주변의 목소리는 ‘직장의 힘든 일을 피해 도망가는 거야?’, ‘부럽다, 아내가 교사니까 할 수 있는 거야’, ‘이 기회에 좀 놀러 다녀’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분명 쉬러 가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좀 더 치열하게 고민해 보고 싶었다. 나에게는 반복되는 일상을 멈추어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왜 그러는지, 왜 이런 갈등을 여전히 하고 있는지 답을 얻고 싶었다.


  착한 아내를 끈질기게 설득하여 휴직을 간신히 얻어냈다. 아내는 허락은 했지만, 여전히 이해가 잘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내는 지난 3년간의 휴직으로 통장이 마이너스인데, 둘이 놀면 어떻게 하냐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현실적인 목소리였다. 틀린 말이 아니라 100% 동감하는 말이다. 나는 아내의 말을 한쪽으로 흘려보내고, 내 안에 끊임없이 들려오는 내 안의 목소리를 해결해 보기로 했다. 이번에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이대로 사는 것이 맞는 걸까?', '내가 원하는 것은 무얼까?', '어떻게 살아야 행복해질 수 있을까?'는 그중 덩치가 큰 내 안의 목소리였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그 목소리의 실체를 찾기보다 피하면서 사는 방법을 찾았던 것 같다.     


  사실 이전에도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심리 분야의 전문가에게 조언을 듣거나 방법을 찾기에만 수백 시간을 투자하였고, 어느 정도 답을 얻었다고 자인했었다. 하지만 백색의 소음처럼 이 목소리는 늘 나를 감싸고 있었다. 외면했는데, 이제 그 소리가 커져서 나를 덮쳐오고 있었다. 마치 우울증 걸린 사람이 자기에만 들리는 내면의 소리를 듣기가 무서워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처럼 나에게도 무언가 답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심각한 상태였다. 이 목소리를 외면하면 안 되겠다고 직감했다.


  모르는 수학 문제를 그냥 지나치면 평생 그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냥 넘기면 평생 알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인생의 문제인데, 이것을 모르고 살면, 내 인생 전체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것보다 왠지 그 목소리를 외면하면 내가 더 아프고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또 다른 내 안의 생각이 밀려왔다. 그동안 내 안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마치 정답을 찾으려고만 하고, 그 답안에 나를 맞추려고만 한 듯 보였다. 나이가 차면 결혼해야 하고, 결혼하면 아이를 꼭 가져야 하고, 내 집이 꼭 있어야 하고, 남편으로는 책임감 있고 따뜻하며 생각이 깊어야 하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고 그것이 정답인 양, 그것에 부응하려 애써왔다.     


  상황이 좋아지지 않으면 늘 패배감이 느끼고, 채워지지 못한다는 것을 느끼는 것. 이러한 패턴이 왜 생기는지 알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 패턴을 멈추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또한 내가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이제부터 남과 좀 다를 수 있지만, 나만의 질문과 답을 해나가자.      


 나는 누구이며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게끔 만드는 두려운 것은 무얼까?’, ‘어떻게 살아야 행복해질 수 있을까?’이 목소리를 해결해 보자!     


  이제는 누구의 조언이나 충고를 듣기보다 내가 배운 것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동안 자기 계발서나 상담 분야의 책과 철학이나 영성 관련 책을 나름 읽었다. 그것을 나 나름대로 정리하고 적용해 보자. 새로운 이론이나 좋은 조언의 책들은 내가 죽을 때까지 계속 나올 것이다. 나에게 꼭 맞는 것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대학교 때 친구인 I가 있다. 이 친구는 교과서 빼고 평생 책을 10권을 읽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나보다 더 어려움을 잘 극복하는 것 같고, 어려움에도 많이 흔들리지 않고 제자리를 찾아오는 것 같았다. 그는 자기 인생에 있어 전문가 같았다. 나는 학위와 자격증은 있지만 늘 잰뱅이 같았다. 살아오면서 그 친구가 자신의 고민을 나에게 털어놓을 때가 많았다. 나는 그동안 배운 상담이론과 좋은 격언을 조심스레 적용하며 말하였던 것 같다. 대화의 끝에는 그 친구가 불편해하지 않을 말들을 하며 위로와 격려를 반복해 왔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어떤가? 왜 나는 이리 흔들리고 내 문제의 답이 찾아지지 않는 걸까? 오랜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딱 하나다. 그 친구는 자기만의 철학, 생각을 가지고 인생을 부딪쳐 보고 스스로 정리해 본 것이다. 그 친구는 고민이 있을 때 자기의 블로그에 적고 그 고민의 해결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 본 것이다. 나는 그런 정리의 시간이 적었던 것 같았다.      


  내 생각을 정리해 보자. 나를 탐구할 시간, 나의 고민을 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생각해 보니 자녀 육아로 인해 시간이 없는 내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유일한 시간이 새벽이었다.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책상에 앉아서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그랬더니 정말 나 자신에 집중할 수 있었고, 앉아서 나의 고민을 진지하게 해 보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행복 의자의 시초이다. 내가 앉아서 고민하는 자리, 나는 그 자리를 ‘행복 의자’라고 명명하였다. 그러한 시간이 느니까 내가 약속 시각에 일찍 나가 친구를 기다릴 때도, 하루 일과 중 잠시 틈이 생겨서 딴짓할 작은 시간 여유가 생겨도 나는 내 고민을 하기 시작하였다. 어느 장소나 시간에도 내가 앉아 있는 자리가 행복 의자였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내 안에 올라오는 목소리를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잘 듣고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이 행복 의자에서 힘든 일이 있거나 불현듯 나도 모르는 충동과 두려움이 휩싸일 때 ‘나는 행복해지기를 선택했어’라는 말을 다시 되뇌며 그 문제의 실체를 이해하려고 한다. 그 문제를 적고, 내 안에서 답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며, 고민한다. 이 시간이 늘어나고, 더 나 자신에 집중할수록 풀리지 않던 문제들도 조금씩 풀려나가기 시작하였고, 이전과 다르게 좀 더 나 스스로 만족하고 행복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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