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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잔 Aug 20. 2021

내가 발견한 질문은 무엇인가?

나를 믿는다는 것

이 우주에서 우리에겐 두 가지 선물이 주어진다. 사랑하는 능력과 질문하는 능력. 그 두 가지 선물은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는 동시에 우리를 태우는 불이기도 하다. 

                                                                  - 메리 올리버의 휘파람 부는 사람 中 -          


 

   현재 일이 안 되거나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로고스와 에로스부터 탐구해야 한다. 로고스는 현재 상황을 이해하려는 마음의 본질이며, 에로스는 사랑하고 사랑받고자 하는 인간 존재의 이유이다.  사람은 문제에 빠지면, 무엇이 문제지?라고 스스로 질문을 한다. 처음에는 외부에서 문제를 찾다가, 좀 더 깊이 생각하기 시작할 때는 자기 안에서 문제를 찾으려 노력한다. 원하는 답은 잘 보이지 않거나, 반복적으로 해 왔던 답만 찾는 모습에 좌절감을 겪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한다. 


  평상시 세상에서 요구한 답만 제출한 사람은 다른 상황이나 문제 난이도가 달라지면 쉽게 포기하거나 지친다상담이라는 일은 그동안 살아왔던 자신만의 답을 푸는 과정에 회의를 가진 사람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상담자는 이 사람이 스스로 깨어나서 좀 더 넓고 정확하게 현 상황을 볼 수 있도록 질문을 건넨다. 똑같이 써왔던 문제의 답을 좀 더 다른 시각에서 답하다 보면 새롭게 보이는 것이 있다. “다 알고 있었던 건데, 선생님에게 이야기하니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게 되네요.” 라든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질문인데, 신선하네요. 제가 쓸데없는 데 시간을 쏟았네요.”     


  고민하는 사람이 많이 하는 또 다른 말이 있다. “선생님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잘하고 싶고,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상담자는 그 말의 의미를 세부적으로 묻고, 마음속 깊은 곳에 품은 희망을 믿고 싶어 하는 마음에 공감해 준다. “지금 상황이 두렵게 느껴지고, 그것을 해내지 못할까 봐 두려운가 보지요?”, “어떤 두려움인지 말해줄래요”, “잘하고 싶지만 잘 안될 것 같은 부분인가요?”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기 믿음이 생겨야 한다상담과 심리교육을 진행하면서 그것의 중요성을 자주 느낀다. 내가 햇병아리 상담자 시절 평생 중요한 이정표가 된 사례가 있었다. 이유도 없이 아이에게 손찌검하고 화를 낸다는 30대 중반의 엄마 A님이 찾아왔다. 그 당시 나는 정신 역동적 상담에 관심이 많던 때였다. 현재의 갈등 원인을 세세하게 파헤치고 문제를 현재화하였고, 인과론에 기초해 현재의 문제의 원인을 과거의 경험을 통해 이해하고자 하였다. 초보자 시절이기에 더 상담을 잘하고자 하는 욕구도 있었기에 슈퍼비전을 이 사례만 4번 정도 받았다. 2번은 사례의 이해와 해결책을 위해 정신역동적 상담의 지도교수님에게, 다른 2번은 사례를 다른 시각에서 보기 위해 인간 중심적 상담의 선생님과 인지행동적 상담의 선생님에게 각각 슈퍼비전을 받으며 상담을 진행해 나갔다.      


  하지만 불안하게도 내담자는 상담받는 동안 정신과 약을 먹게 되었으며, 아이에 대한 분노는 해결되지 않았다. 나는 정신과 약을 먹고 있으니, 병원에서 상담을 받아도 된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였다. 일종의 포기상태였지만, 그 내담자는 나와 계속 상담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내가 잘하고 있는지 불안한데, 이분은 나를 믿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니 책임감이 더 느껴지며 고민이 깊어갔다. 그래도 그 마음은 숨기면서 슈퍼바이저들이 주신 조언을 생각해 보며 더 잘 상담해 나가려고 애썼다. 그러던 어느 날, 상담 시간이 끝나갈 때 여전히 자신의 변하지 않는 모습에 대해 불안해하는 내담자에게 의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런 말을 내뱉었다. “나는 A 님을 믿는데, A님은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 같군요.”  우연찮게 내뱉은 말이었다. 그것은 내 의식 차원에서 말한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나온 말이었다.     

 

  그다음 상담 시간 A님은 나와 나눈 말을 남편과 이야기했었다고 하였다. “선생님이 나를 믿는데...”라고 남편에게 말했더니 남편은 어떻게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냐고 핀잔을 주더라고 하였다. 그 말을 한 후, 정신과 약의 효과인지, 오랜 상담의 효과인지 몰라도 내담자는 다음 회기부터 아이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고, 눈에 띄게 안정되어 갔다.      


  획기적인 변화로 인해 나는 이 사례를 곰곰이 씹어보며 무엇이 변화 요인인지 고민해 보았다. 나의 결론은 나는 꾸준히 상담을 받으려는 내담자의 변화에 대한 의지를 마음 깊은 곳에서는 믿었고, 내담자는 그동안 스스로 자신의 의심을 해결한 것이다. 줄탁동시였다. 내담자의 밑 마음은 ‘흔들리는 나 자신을 믿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있었고, 상담하는 과정에 그 답을 찾은 것이다.     

  

  이 사례에서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질문이 자신을 자유롭게 해 준다는 것이다어느 정도 건강한 사람이라면 문제의 핵심적인 질문만 발견하면 스스로 해결해 나갈 힘이 있다는 것을 배웠고나 스스로 현재 불안하고 힘든 문제가 생길 때 나에게 필요한 질문은 무엇인지스스로 묻는 습관이 생겼다.     


  또 하나, 나는 자신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있는 것인가?를 배웠다. 하지만 나는 A님의 변화가 마냥 즐겁지는 않고 큰 자극이 되었다. ‘그 부지불식간 내가 A님을 믿는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나는 정말 나 자신을 믿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걸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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