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해결의 실마리
욕망에 불을 붙이는 것은 결핍의 환상이며, 행복의 근원은 자기밖에 있으므로 따라서 그것을 추구하거나 얻어야 한다는 환상이다.
- 데이비드 홉킨스 -
최근 문득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무언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상대방 탓, 내 탓 상황 탓을 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 여겨지면 그것의 원인은 과거로 귀착하거나, 미래에는 어떻게 될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거나 열심히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이럴 때 가끔 생각나는 한 분이 있다. 대학원 시절의 은사였고, 그분에게서 5년간 상담사례 슈퍼비전을 받으며 현실감각과 질문이 주는 힘을 배웠던 장성숙 교수님이시다. 교수님은 사람들이 과거에 붙들려 사는 이면에는 현재 생활이 불만족하니까 그런 것이고,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모든 것을 과거 탓만 하고 문제 해결의 타이밍을 늘 놓치고 있다고 하셨다. 사실 행복한 사람의 대부분이 삶을 만족하고 과거의 역경이 자신을 성장시킨 좋은 계기였다고 말하는가 하면, 좌절된 사람들을 보면 상황 탓, 사람 탓만 하고 누군가 자신을 고통에서 구해줄 대상만을 찾거나 현재의 문제를 외면한다.
나는 지난 과거 8년 동안 범죄자를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길게는 6개월 300시간, 짧게는 2개월 집단치료와 심리상담을 진행한 경험이 있다. 그들의 60~70%가 어려운 성장사와 가정환경 탓을 한다. 그 어려움을 이해하는 것이 연결고리가 되어 자신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변화될 동기를 찾는 데 도움이 되기는 한다. 하지만 변화 동기가 없거나 자신의 문제를 보지 못하는 대다수 사람은 과거 상황과 환경 탓에 함몰되어 현재의 문제를 등한시하며, 자포자기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러한 범죄자들에게 종종 직언할 때가 있다. “냉정하게 생각해 봅시다. 과거의 경험이 현재 OO님의 범죄 행동으로 이어졌나요?”, “과거 그런 경험을 했다고 해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과 그렇지 않고 잘 사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과거로 돌아가서 그때의 상황을 바꿀 수 없는데, 계속 과거에 매달려 인생을 낭비할 예정입니까?", "과거는 뒤로하고 희망을 키워나갈 의향은 있으신가요?"
지금의 문제행동과 과거는 연결고리가 분명 있다. 하지만 내가 믿는 것은 그 무의식적이고, 의식적인 행동 패턴의 개선에는 나 자신의 행동과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부분을 수형자들에게 강조하며 상담을 했다. 이 부분이 없다면 그들과의 상담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 성중독이라는 것도 의지의 문제와는 별개로 뇌의 질환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을 극복하려는 사람의 태도 없이는 변화는 요원하다. 의지가 약해서 성중독에 걸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자신의 인생을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이런 질문에 화를 내는 사람도 있고, 훈계를 받은 듯하여 숙연해지는 사람도 있다. 화를 낸다는 것은 무언가 마음의 것을 건드린 것이다. 나는 그럴 때 다시 질문을 던진다.
“냉정하게 생각해 봅시다. 지금-현재 무엇이 문제지요?” “무엇이 염려되나요?”
답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 번도 생각 못 해 본 양 어리둥절하는 사람도 많다. 자신의 사건을 인정하는 사람 중 어느 수형자가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있다.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과거 탓, 부모 탓해봐야 달라질 것도 없지요. 현재가 막막하니 이러고 있는 것 같아요."
문제는 현재이다. 아픈 것은 현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힘이 없으니 그 문제를 풀 실마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과거나 미래의 이야기에 집중되는 것이다. 내가 했던 것은 현재의 스트레스원과 걱정되는 것을 명료화하는 것이다. 모든 치료의 효과는 솔직함에 있다. 솔직함은 자신의 내면 욕구와 현실적인 바람을 다 털어놓아야 가능하다. 이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떻게 상대방을 무얼 믿고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겠는가? 솔직하게 표현하면 나를 더 쓰레기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말한다고 소용이 있을까? 해 보았자 달라질 것이 있나? 더 나를 표현하면 이 사람이 나를 맘대로 대하면 어떨까?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나? 여러 가지 갈등이 있다. 나도 그러했다. 수많은 치료자에게 내 이야기를 할 때 나도 겪었던 문제였다.
하지만 이들은 나보다 좀 더 어렵지 않을까 추측해 보곤 하였다. 범죄자라는 사회적 낙인에 더 솔직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표현하면 자신에게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 일반인보다 더 클 것이다. 이러한 내면의 갈등이 신뢰를 통해 해소되면 현재의 문제를 털어놓는다. 어느 범죄자와의 상담할 때 나는 이러한 생각을 더욱 확실히 확인하였다. 평상시 생활을 잘하다가 술만 먹으면 과거 생각에 물건을 부수고, 사람에게 행패를 부려 다시 교도소에 갇히는 사례였다. 그와의 상담에서 먼저 따져보았던 것은 현재 생활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는 일에 집중부터 하였다. 현재의 문제는 다양하였다. 가족과의 불화, 일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성과, 생활상의 경제적인 어려움 등이었다. 술은 그 문제를 잠시 잊게 했다. 과거는 그 문제의 잠재적 원인일 수 있다. 과거로 귀인 하면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보지 않고, 그 속에 자신의 이바지한 요인을 생각하지 않으면 그러한 원인 분석은 백해무익하다.
“당신이 이바지한 부분은 없나요? 경제적으로 어렵고, 부모님 수준이 그러하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는데, 당신은 알면서도 자신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았네요?”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지 않고 상대방 탓, 환경 탓, 과거 탓으로 귀인 하면 해결방안은 없다. 중요한 것은 현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가 나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도 요즈음 내가 고민하는 문제를 새롭게 질문하려고 늘 주의 깊게 살펴본다.
“현재 내가 아픈 것은 뭐지?” , “현재 무엇이 고통스럽게 느껴지나?”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뭐지?” 해결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것은 무엇이지? “
"고질적인 문제라면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천천히 바꾸어 가야 할 문제이지 않나! 상황을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 더 고집 피우지 않는 것이 낫지 않을까?"
바꾸어 갈 것은 현재이다. 현재의 생각이 과거를 새롭게 채색한다. 미래의 가능성을 열게 한다. 현재 문제의 해결은 미래에 역경이 생길 때 문제를 풀어가면서 지혜와 성공의 경험으로 남는다. 내가 부족했던 것이나 수형자들이 부족했던 것은 성공경험이었다. 현재의 문제를 제쳐둘수록 과거나 미래는 불행해진다. 미래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미래를 보장하지는 않지만, 그 내공을 키우는 것은 현재, 언제나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