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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다감 Oct 31. 2021

결혼을 선택한 대가라기엔 너무하잖아.

자율주행차가 돌아다니는 시대에 아가씨, 도련님, 서방님, 올케라 굽쇼?

잘 알지 못하는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처음 만났다. 


젊은 날 연애에 관심 둘 용기도 없이 헐레벌떡 살다가 서른 중반을 앞두고서야 마음이 급해졌었다. 더 늦어지면 결혼 막차 놓치겠다 싶어 여기저기 기회를 만들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뒤늦게 찐 사랑을 만난 것일까? 아님 급한 마음이어서 그랬을까? 콩깍지 제대로 씌어서 눈에서 하트 뿅뿅 날리며 서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세 번 정도 만나자 남편이 내게 '내가 나이도 많고 앞으로 편하게 지내게 말 놔도 되지? 하고 대범하게 물었다. 하지만 나는 '아니요. 싫어요. 앞으로 더 많이 편해져도 존대하는 사이가 좋아요.'라고 했다. 그리고 결혼 9년차가 되어가는 우리는 지금까지도 절반 가량의 존대를 이어오고 있다. 


나는 예전부터 말을 쉽게 놓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말을 높여 서로를 존중하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때 안정감을 느끼는 그런 사람. 하지만 결혼을 선택한 대가로 심적으로 매우 불편한 뭔가가 훅하고 들어왔다.


처음 그 남자의 애정 공세와 사랑의 눈빛에 뿅 가서 행복한 마음으로 결혼을 결심하고 그의 가족과 첫 인사 할 때 까지도 아주 좋았다. 모두 좋은 분이었고 기분 좋고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좋은 사람들과 한 가족이 된다는 것이 다행스러웠었다. 하지만 결혼식을 올리고 그의 가족과 인척관계가 되자 내가 느끼던 안전함은 곧바로 사라져 버렸다. 


호칭 때문이었다.


'형'이라는 소리를 내 본 적도 없는데 어깨들이 할 법한 형님이라는 말로 남편의 누나를 불러야 하는 게 이상했다. 서방님이라는 말은 전설의 고향에서 귀신들이 남편을 부를 때 자주 하던 말인데 내 서방도 아닌 남편의 동생에게 서방이라 불러야 하다니 좀 소름 끼치고 싫었다. 동서는 드라마에서 많이 들어서 익숙하긴 했지만 그 이미지 때문인지 막상 내가 하려니 윗사람 티 내는 것 같아 오글거렸다. 


결혼 전에 엄마가 엄마의 시가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듣기는 했지만 전라도 분이셔서 시숙, 당숙, 아재 등 뭐 그렇게 불렀고 사투리에 옛날 말이다 보니 내가 쓸 말 같지 않고 거리감이 있어 인터넷에서 알아본 수준에서 시가 식구들과 통성명하듯 관계를 한 번 정리하고 결국 형님, 아주버님, 서방님, 동서, 올케로 호칭하게 되었다. 


저 호칭을 받아 들일 때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일 태지만 여자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누군가를 만나 마법처럼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선택한 대가로 나에게 사랑을 속삭이던 남자의 가족들에게 일방적으로 아랫사람임을 표하는 호칭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건 당황스럽고 불편한 일이었다. 그나마 나는 남편에게 여동생이 없어서 아가씨라는 말은 안 해도 된다는 현실이 다행일 지경이었다.





결혼 후 8년을 잘 지내오다 문뜩 결혼 초의 불편함이 강하게 밀려왔다. 그간 완전히 괜찮지 않았고 부를 때마다 불편한 것을 적당히 외면해 왔는데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2년 가까이 양가 가족들과 만날 일이 거의 없다 보니 다시 부르기가 또 불편했다.


그동안에도 불편감을 느낄 때마다 인터넷을 뒤지며 서방님 호칭을 대신할 방책을 늘 찾아보지만 그냥 이름을 부르자는 것이 대안의 전부였다. 하지만 그건 좀 아니었다. 남존여비사상에 불쾌감을 느낄 뿐이지 가족 관계 자체를 격없이 허물고 개별 관계로 가깝게 트자는 생각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름 부르긴 뭐하다고 기존의 호칭을 그냥 쓰기에는 어원을 알고 생각하면 할수록 그냥 쓰기 괴로웠다. 


아주버니는 성인 남자를 칭하는 아재를 높여 어미에 씨를 붙인 아저씨를 한 번 더 높여 부르는 말이다. 그런데 보통은 그것을 한 번 더 높여 님을 붙여 아주버님이라 쓴다. 4단 높임말이다. 시가가 정말 대단하긴 한가보다. 


서방님, 도련님, 아가씨라는 호칭 모두 노비들이 양반집의 자제를 부를 때 쓰던 호칭이었다. 내가 누군가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결혼을 선택한 대가가 그 집에 종으로 들어간 격이 된다는 호칭을 써야 한다는 것은 절대 인정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동안은 나 역시 그저 호칭일 뿐이라 여기며 그럭저럭 지내왔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불편함이 도저히 가시지 않는 데다 이제는 두 아이를 키우는 어엿한 엄마 역할에 임하는 사람으로써 뭔가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다짐이 하게 됐다.


내 아이에게 '감정은 언제나 옳다, 당당하게 자기 생각을 말해라', '문제에 직면해서 해결하려고 노력해라' 가르치는 엄마이면서 본인이 느끼는 불편과 잘못된 풍습은 뭉개고 앉아 불만만 품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아이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어 결혼을 선택하게 된다면 내 아이도 그 집 종이라는 의미를 품는 말을 이어서 쓰게 될 테니 혼자 삭히고 말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 지혜의 보고인 맘 카페를 샅샅이 뒤지며 질문과 답을 찾아 헤맸다. 지식정보 사이트, 한국어 어원 자료 같은 곳을 아무리 뒤지며 몇 날 며칠 지혜를 찾아봐도 답이 없었다. 포기할까 했다. 그렇지만 딸아이가 좋은 사람들과 새 가족이 되고도 가족을 만날 때마다 연례행사처럼 고민하고 불만 쌓는 이런 일은 넘겨주지 않으리 다짐하며 문제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 마음먹었다.


'그래, 호칭 문제에 정녕 답이 없다면 당사자인 내가 답 해보자.' 


일주일을 꼬박새워 답을 찾았다.


https://brunch.co.kr/@lovingsong/131


https://brunch.co.kr/@lovingsong/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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