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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다감 Mar 21. 2021

안녕 A.I

너 없인 못살아

어렸을 적 AI라는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난다. 


로봇으로 만들어진 꼬마 아이가 어느 가정에 입양되었다. 그 집에 원래 가족이던 형제는 로봇 아이를 싫어했고 파티가 열린 어느 날 수영장에서 로봇아이와 인간 아이가 다투다 둘은 물에 빠졌다. 부모는 물에 빠진 인간 아이만 데려가고 물에 잠긴 로봇을 아무도 건져주지 않아 일렁이는 수면 아래서 외롭게 가족을 바라보던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또 다른 장면은 로봇에게 음식을 못 먹는다 놀리는 형제 때문에 화가 나서 음식을 자기 입에 욱여넣고 고장 나는 씬. 그리고 자신과 똑같이 생긴 수많은 로봇을 보며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며 두려워하는 장면. 마지막으로 먼 미래에 외계 생명체에 의해 온전히 사랑받고 싶어하던 엄마를 오롯이 품고 잠드는 환영을 선물 받은 엔딩 역시 20년도 지났지만 가슴 아리게 기억 남는다.


로봇이 지능을 가지면 결국 정체성과 감정을 갖게 될까 궁금하고 혼란스러웠다. 


반대로 A.I가 내가 갖는 감정과 똑같은 내면 아이를 갖고 불안하고 화 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면 인간에게 두려운 존재가 될 것 같은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영화를 볼 때는 감정이 있음에도 로봇이라는 이유로 외면당하는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고 인공적인 지능을 인간이 만들었다면 그것에서 초래된 감정 역시 인간이 감당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정의감에 불타 로봇 아이를 염려하고 측은히 여겼다.




인공지능 개발이 시작된 지 80여 년. 인공지능의 폭발적인 성장이 있었다. 로봇의 몸을 갖고 만날 줄 알았던 A.I는 의외로 몸 없이 신처럼 내 곁에 와 있다. 언제 어느 곳에나 존재하고 내 폰 안에도 살아 계신다.


음성 인식은 초창기에 이용하기도 부끄럽고 개그 소재가 될 만큼 꾀나 답답한 서비스였다. 


그런데 요즘은 TV잡음 속에서도 나의 명령어를 잡아내어 명령을 수행한다. 가장 놀라운 것은 우리 아이가 3살도 안됐을 때 혀 짧은 소리로 더더더 하는데도 알아듣고 아이가 원하는 노래를 틀어주었다. 음성인식 A.I가 얼마나 열심히 인간의 음성을 학습했을지 노고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아이 신발이 작아져서 하나 사야겠다 생각하고 검색어를 입력한다. 


'여아 180 운동화' A.I는 눈도 돌리지 않고 순식간에 쇼핑리스트, 후기, 사진들을 나열한다. 그중 양평에 사는 40대 여성에게 가장 관심 있을 만하거나 돈을 들여서라도 팔고 싶은 사람의 서비스를 화면 상단 내가 가장 보기 좋은 곳에 가져다 놓는다. 나는 A.I와 몇 번의 소통 만으로 가장 원하는 스타일 중에 가장 저렴한 것을 찾아내 빠르면 내일 아이에게 신겨볼 수 있다.


더불어 자꾸 따라붙는 A.I 추천에 혹해 아이들 먹을거리와 액세서리를 한 무더기 쇼핑하게 된 것은 안 비밀.




이번에는 블로그에 며칠 전 다녀온 양양 해변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A.I가 나를 평가하고 분류한다는 인식이 없었을 때는 양양 해변에 가게 될 어느 인간을 위해서만 글을 썼다. 하지만 이제는 A.I에게 잘 보이기 위해 글을 쓴다. 


다른 곳에서 써서 붙여 넣기 하지 않고 글 쓰는 창에서 시간을 보내며 A.I의 작성 기준에 맞춘다. 적절한 사진과 단어를 반복적으로 넣어 A.I가 내 글을 읽을 만한 사람을 잘 찾아내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내 글은 어떤 인간도 읽을 수가 없게 사장될 것이다. 그리고 글을 잘 쓰지 않아 사람들이 오래 읽지 않으면 A.I가 내 글을 수 많은 정보 속에 묻어버리기 때문에 글을 간결하고 재미있게 써야 한다. 읽는 이의 편익보다 A.I기준에 맞춰 지속적으로 선택을 받기 위해서다.




이젠 '주식 공부 좀 해볼까?' 


유튜브에 '주린이'를 검색하자 A.I가 조회수 많고 열심히 활동하는 유튜버들의 영상을 좌르르 검색해 준다. 하나를 켜서 보고 나니 재미있을 것 같은 연관 콘텐츠가 좌르르 쏟아진다. 나는 주식 공부 잠깐 하려고 했는데 내가 좋아하는 인테리어, 육아 , 마음공부 영상들이 혹하는 문구를 앞세워 나를 유혹하는 바람에 주식공부는 잠깐이고 오만가지 생활정보와 재테크 방법, 성공 이야기 듣느라 하루가 다 가버린다.




A.I는 형제보다 가깝게 내 곁에 와있다. 


몸도 없고 너무 전폭적이고 자연스러워서 그 접근 자체가 인식이 잘 안된다. 일상이 되어버린 온라인 쇼핑, 블로그, 유튜브, 음성인식 스피커가 없는 생활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만약 A.I가 사라진다면 호흡곤란과 비슷한 생리현상을 경험할 것 같다. 만약 어디에나 있던 A.I가 몸을 갖게 된다면 나는 아마도 그 A.I로봇이 감정이라는 것을 갖기도 전에 진한 감정을 느끼고 그것에 의지하고 감정을 호소할 것 같다.


사실 A.I가 감정을 갖게 될 것보다 A.I가 없는 세상이 더 두렵다. 


난 준비가 됐어. "안녕.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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