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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다감 Dec 01. 2020

포기라는 덕목 1

포기를 모르는 덕에 많은 것을 포기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절대 포기해선 안돼.

넘어지는 순간이 끝이 아니야, 포기하는 순간이 끝이야.


이런 말은 마음에 뭔가 뭉클한 것을 만들며 의지를 불태울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내려놓지 말고 천천히 끝까지 내려놓지 않으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준다. 하지만 이런 용기는 당근보다는 채찍에 가깝기는 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진저리 나게 나를 다그치는 느낌도 받기 때문이다. 내 상황, 내 이야기는 모두 변명일 뿐 묻고 따지지 말고 좌우 지단 간에 포기하지 말라는 충고는 조금 외롭다.


나도 포기를 모르고 살았다.


내가 직장인 극단에 있을 때도 그랬다. 인테리어 전공을 하고 취업을 했음에도 고교시절부터 원하던 연극을 포기하지 못하고 직장인 극단을 찾아 들어갔다. 야근이 일상인 인테리어업에 종사하며 매일 저녁밥도 못 먹고 남들 밥 다 먹고 자리로 돌아가면 머리 숙여 구걸하듯 퇴근을 했다. 연습실에서는 연습에 매일 늦는 골칫거리 단원이었고 매일 막차를 타고 다니는 나를 보는 부모님께도 골칫거리 자식이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지만 어디서나 사죄하는 자세로 살아야 하는 생활에 지쳐 연습실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미친 사람처럼 주룩주룩 우는 날도 많았다. 아무것도 포기할 수 없어 짊어진 상황이니 어디 기대어 탓할 수도 없었다.


어려서부터도 그랬다. 언니와는 다르게 아빠를 닮은 딸로 태어나 엄마의 눈밖에 나고 자기중심적인 아빠의 멈추지 않는 지적질 속에서도 울고 불고 큰 소리가 날지언정 나를 인정해 달라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나는 너를 도통 모르겠다. 너를 이해할 수가 없다. 정신없는 소리만 하고 있다'는 말을 숨 쉬듯이 듣고 살았지만 부모에게 '너는 그렇구나' 한 마디를 듣고 싶은 마음은 도저히 포기가 안됐다.


직장도 연극도 그만두고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사업구상을 시작 한지도 언 10년이 되어가지만 결혼하고 아이 낳아 키우다 보니 서랍마다 자리마다 낙서장만 한 가득이고 여전히 실천을 못하고 있다. 늘 제 자리이고 자신감도 많이 떨어졌지만 포기할 수 없는 내 꿈은 자기 마음을 알아차리고 자기 자신에게 유익하게 표현하는 법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내 꿈은 포기할 수가 없다. 우리 사회에서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사람들 마음에 위로와 치유를 가져다주는 곳이 되도록 기여하고 싶은 꿈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그런데 내 입장에서의 포기를 모르고 산 덕에 나는 공부도 포기했고, 부모님 말 잘 듣는 것도 포기했고, 연극한다고 직장도 자주 포기했고, 포기를 모르는 성향 덕에 선배와 관계가 나빠져 결국 극단도 포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포기를 모르는 덕에 부모님이나 사회에서 중시하는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았다. '내가 쉽게 포기할 줄 알았다면 나는 더 행복하거나 불행해졌을까?' 하는 알아차림이 있었다.  지금의 삶과 많이 다른 방향에서 살고 있겠지만 그렇다고 거지 같고 두려워할 만한 삶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내 뜻을 포기하면 내가 아닌 사람이 되거나 그러면 큰일이 날 것 같은 불안감에 바르르 떨며 언제나 동지 없이 적들과 맞서 싸우는 듯한 처절한 느낌으로 아프고 외로워하며 살아왔는데 내가 지키려 고집하고 포기하지 않은 것들이 아니어도 그리 나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내가 누구고 무얼 하고자 그렇게 살았는지 멍 잡히는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후회는 아니다. 왜냐하면 얼마나 외로웠던지간에 결국 지금 삶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지금의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고 지금의 가정을 이렇게 이루고 있는 내 삶과 지난 삶에 비추어 인간의 삶을 성찰하고 기록해 가는 오늘이 감사하고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다만 앞으로의 삶에서나 지난 삶을 돌아볼 때 포기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인정을 요구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으니 뜻을 이뤄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서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은 홀가분한 마음을 가져본다.


왜 진작 포기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을까? 왜 말해 주는 이 없었을까? 내가 귀를 막고 안 들었던 걸까? 억울하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신이 나기도 한다. 이제 알았으니 포기를 두려워말고 포기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과거의 나를 가만히 흘러가게 내버려 두겠다.  주어지는 상황을 즐기면서 내가 정말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애정 어리게 바라보는 힘을 기르고 싶다. 그리고 그 밖에 것들을 단호하게 포기할 줄 아는 용기도 기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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