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다감 Dec 02. 2020

포기라는 덕목 2

포기는 선택의 또 다른 이름

포기할 줄 모른다면 삶에서 짊어져야 하는 것은 너무 많다.

새로운 것을 얻는 것이 즐거움이 아니라 무거움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집 안을 둘러보아도 그렇다. 종이 가방이나 상자 혹은 젊은 날 잘 입던 옷의 재 사용 가능성을 포기하지 못하고 쌓아둔다. 전공 서적과 관심 분야 판플렛의 먼지가 쌓일지언정 그 경험이 다시 꽃 피울 날을 그리며 바쁜 일상 속에 한 번도 열어 볼 일 없지만 포기하지 않고 방 한 구석을 내어 준다. 


오늘 찍은 수십 장의 아이 사진에서 하나의 사진만 남기고 나머지를 포기하기엔 미묘하게 조금씩 달라 그 차이를 포기할 수 없어 클라우드 서비스에 수북수북 쌓아둔다. 결국 포기할 줄 모르는 덕에 깨끗한 책장, 쾌적한 분위기, 원하는 사진을 바로 찾아 감상할 수 있는 홀가분함을 포기하게 만든다.


주부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네 식구 해 먹는 식사와 빨래, 청소, 쇼핑, 쓰레기 처리 등도 깔끔하게 해내는 건 포기하면 안 되지. 아이들 간식과 식사의 영양도 잘 챙기고 아이들 교육을 위해 책도 많이 읽어주고 같이 놀아주고 이야기 들어주고 깨끗하게 씻기고 입히는 것도 포기하면 좋은 엄마가 아니야. 이제 애들도 어린이집 다니고 있으니 나를 위해 책 읽고 경제 공부하며 재테크도 하고 영어 공부하고 운동하고 자기 관리하는 것도 포기할 수 없어. 나도 잘 살아봐야 하니 부업이던 아르바이트던 뭐라도 하려는 노력을 포기해선 안돼. 부모님께 효도하는 건 중요하니까 종종 연락드리고 찾아뵙고 용돈 드리는 것도 포기하면 나쁜 사람이지. 친구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야 주기적인 관심과 마음 잇기를 포기하면 인생 외롭지..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데 봉사하고 기부하고 공동체 참여하는 것도 포기할 순 없어. 등등등...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열거만으로도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 진다. 모두 가지려 하면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는 말이 너무나 공감된다. 아무것도 포기하지 못하는 태도 때문에 나는 결국 아이에게도 남편에게도 부모님과 친구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도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완수하지 못한 채 자괴감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걸 짊어지고 그 무게에 목구멍이 꽉 막혀 모두 집어던지고 싶은 마음이 절실해졌을 때,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포기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 생겨났다.


포기의 또 다른 이름은 선택이라는 것이다. 포기는 당하는 게 아니라 이전과 다른 것을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기해도 된다는 말은 '그만둬라, 낙오자가 돼라, 내동댕이쳐라, 원점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아니다.'너에게 유익하게 방향을 바꿔라,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해라, 지금까지의 선택을 점검해보라'라는 말이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의 요건 중에 하나로 꼽는 성공을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선택과 집중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포기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선택이란 많은 것 중에 최고의 것을 고르는 것이기 때문에 아주 그럴싸 하지만 최고가 아닌 것들을 포기해야만 선택이란 걸 해 낼 수 있다. 만약 포기를 모르면 무슨 수로 선택이란 걸 할 수 있을 것이고 선택하지 않고 모두 짊어지고는 절대 집중이란 걸 할 수는 없으니 성공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포기에 대한 긍정적 기능을 기억하고 늘 염두에 두는 것은 '언제라도 나를 위한 더 나은 선택을 취할 수 있다'는 포용적이고 내편 같은 느낌이다. 포기에 대한 긍정적 메시지를 마음에 담아 두고 포기의 필요성을 바르게 인지함으로써 포기 못했던 것들을 하나 둘 포기하고 그래도 아무 문제없음을 경험해 간다면 결국 선택된 가장 소중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끝내 이루는 경험을 쌓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지난 속상한 경험들이나 가족 그리고 이 세상의 고난은 내 책임이 아니다. 사실 나 말고 누구도 책임질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누구나 지금 여기 자신을 건강하고 유익하게 잘 살게 할 책임만 있기 때문이다. 


나를 갉아먹고 있음에도 내 것인 양 포기하지 못하고 짊어지고 있는 수만은 죄의식과 불안의 뭉텅이들을 포기해야만 지금 여기 내게 유익한 것에 집중하는 날들이 쌓여 미래를 밝힐 역사가 될 것이다.


포기야 말로 나를 과거의 죄의식과 미래의 불안에서 끄집어내 지금 여기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며 행복하게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지혜로운 덕목이라는 생각이다.


이제 나를 더 이상 돈도 못 벌고 설거지하고 청소기나 돌리는, 하찮고 귀찮은 일이나 하는 부엌데기 같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나와 우리 가족의 정갈하고 건강한 정신을 만들기 위해 돈벌이를 포기하고 선택한 일로 여기겠다. 아이들을 돌보는 시간을 내 시간을 갖지 못하는 지루하고 성가신 일이라 여기지 않고 결혼과 출산이라는 나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다 하는 일, 지난날 누리던 기쁨은 포기하고 차원 높은 기쁨위해 선택한 일로 여기겠다.  


깔끔한 포기란 지금의 선택과 순간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진정 고마운 덕목이라 생각된다.

내가 포기하지 못하는 것들을 조용히 써 내려가고 그중 절대 포기 못할 것을 선택하고 나머지를 깔끔히 포기하는 연습은 한동안 수행될 마음 복잡한 과제일 테지만 분명 나를 간결하고 목적이 있는 삶으로 이끌 것이라 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포기라는 덕목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