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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다감 Dec 09. 2020

어른 공부도 시켜줘

영 단어, 방정식, 원소 기호처럼 어른 공부도 시켜줘

초, 중, 고, 대학까지 16년을 4지선다형 문제를 풀며 어린 날 배움의 시간을 지내왔다. 


어린 날 반짝이던 눈동자로 만들어낸 창의력과 천진함은 산만하고 상황 파악 못하는 철부지라 취부 되며 나를 사랑하기보다는 그저 공부 못하는 찌질이로 낙인 되었다.


그런데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오니 세상에서 풀어야 할 문제들은 학교에서 풀던 문제와는 전혀 달랐다. 


세상은 4지선다형 질문지도 아니었고 심지어  출제자도 없이 하얀 종이를 보고 서있는 느낌이었다. 착실히 졸업을 하고 이제 사회 인으로써 잘 살아보려고 지난 상황처럼 문제지를 들여다보려는데 더 이상 내게 물음을 하는 대상이 아무도 없어 배신감마저 느꼈다. 당혹스러웠다.


확실한 것은 이 당혹감과 배신감은 학창 시절 공부를 못해서 겪는 고난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이 학교 밖에서 이렇게 쓸모없이 이럴 거면서 소중한 창의력과 천진함을 묵살하고 4지선다형 문제 풀이만 강조한 학교와 부모가 무책임하다고 까지 느껴졌고 남 탓을 즐기는 내겐 세상이 미웠다. 


내가 안정적인 어른이 되기 위해 학창 시절에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어마어마한 것들(자본주의, 민주주의, 내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몸과 마음, 감정표현법, 공감법, 스트레스 관리법, 이성교제, 결혼, 육아, 행정서류, 투자, 부동산, 부, 환경, 평화, 세계 구호, 종교, 철학 등등등)에 대해선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조차 주지 않다. 최악 중에 최악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나 자신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힘'을 바닥으로 끌어내려 놓은 것을 알았을 땐 배신감을 넘어 억울하기까지 했다.


누군가는 내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고 세상에 나와 사회에서 배우는 것이 어른이 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당장 필요하지 않은 영어와 수학과 과학을 그리도 깊게 미리 배우지 않던가! 그러면서 왜 어른이 되면 당장 알아야 할 것들은 이렇게도 철저히 가르치지 않는단 말인가!




미개한 국가에는 높은 데서 떨어지거나 신체를 뚫고 고통을 가하는 성인식이라는 것이 있다. 


그들의 비 인격적인 모습은 잔혹해서 눈살을 찌푸리게 되지만 자신의 문화에서 성인이 갖추어야 할 기준이 있고 그 기반을 갖추기 위해 준비하게 하고 그것을 축하하는 점은 인정이 된다.


생리한다고 어른이고 나이가 몇 살이 넘었다고 안전한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성인물을 볼 수 있느냐 없느냐의 기준이 어른이 되는 것과는 별 상관이 없음에도 그것에 포커싱 되어있는 성인에 대한 인식이 아쉽다. 우리의 성년식은 어떤 것을 기준으로 무엇을 축하하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인지 성년식에 받았었던 장미 한 송이는 참으로 어색했던 기억이 난다.


미성년자들에게 TV와 학교와 부모는 어른이 갖추어야 할 것을 잘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내 경험에 비추어 글을 쓰며 민주주의이자 자본주의인 이 나라에서 살아가기 위해 성년 이전에 배워야 할 것을 정리하고 후배들에게 안내하고 싶다. 비록 어설프더라도 지난날 내가 느낀 당혹감을 거름 삼아 생물학 적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는지, 성인물을 볼 수 있는지가 아닌 구체적인 어른에 대한 기준을 제시해보고 싶다. 


그리고 우리를 억울하게 만든 가해자, 우리들의 부모도 어른 교육받거나 생각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삶을 힘겹고 치열하게 살아 내며 나름의 최선을 다 한 분들이라는 것 또한 말하고 싶다. 


우리의 부모들도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고 어른이란 이름표 아래 내몰려 있기는 매 한 가지다. 우리의 조상들이 인류의 성장에 따른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며 진화해 왔듯 나 역시 이 시대의 과제로써 미숙한 어른 공부를 성숙시키는 일에 기여하고 싶다는 꿈을 품어 본다.


내가 겪은 어려움 정도는 인생을 풀어가는 당연한 과정일 뿐이라 말하면서 패배의식을 갖는 이들을 그저 안타깝게 여기고 스스로 잘 사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어딘가에 나처럼 억울함을 느꼈던 이가 있다면 그들에게 우리의 상태가 무능력하다 질타받을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전하고 싶다. 


어디로 연결된 에스컬레이터 인지도 모르고 학년이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어영부영 성인이 되어서 여기가 어디고 내가 누군지 모르는 몸만 어른이 된 이들도 사회 일원이니 이들의 어려움은 사회에서 인정되고 공감되고 지속적으로 있을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 개선되어야 할 문제다. 


영어 단어, 방정식, 원소 기호 가르치듯 어른 공부도 떠먹을 수 있게 가르쳐야 한다. 


자본주의, 민주주의, 내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몸과 마음, 감정표현법, 공감법, 스트레스 관리법, 이성교제, 결혼, 육아, 행정서류, 투자, 부동산, 부, 환경, 평화, 세계 구호, 종교, 내가 누구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철학에 이르기 까지.


학교 교육을 받는 12~16년 동안 어른 됨에 대해 심사숙고할 수 있는 기회가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통해 얻지는 세상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성년식에 그동안 자신이 구축한 어른 다움이 민주적인지 자본주의에서 생존할 용기를 품었는지 응원 나누고 후원받는 열띤 현장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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