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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다감 Dec 12. 2020

성추행 기억에 대한 다시 쓰기 1

나는 그 날의 기억을 한 소절도 숨길 이유가 없다

어릴 적 큰 집의 큰 아들에게 성추행을 당했었다.(어느 날부터 그를 오빠라 부르기엔 고운 호칭이 너무 아까워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


그놈의 말에 따르면 몇 번 반복된 것 같은데 나의 기억은 그 날이 기억된다. 추측컨대 6세 전 후쯤인 것 같다. 허름한 다락방 같은 2층의 어둡고 지저분한 방 앞에 좁은 마루가 있고 마루와 계단 사이에 허름한 문짝이 달려 있었다. 그 문에 나무토막으로 잠금장치를 만들어 놓은 허름한 손잡이가 있었다. 비닐이었는지 뿌연 유리였는지 문에 달린 창을 통해 마루 앞은 환하게 빛 났고 그가 문을 등지고 나를 마루에 앉으라 하고 팬티를 벗으라고 했다. 많이 컸나 보자며 얼르고 내게 많이 컸다며 칭찬하는 말투와 자기의 성기를 꺼내어 자기는 많이 컸냐 물으며 만져 보게 했다. 그 밖의 상황은 잠재의식 아래로 숨겨버린 것일까? 그 장소처럼 선명하지 않고 상황들이 쪼개져 불쾌한 장면들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구분하지 못하게 흩어져 있다.


성기를 서로 보고 만지는 게 6세 아이에게도 이상했을까? 아마도 그때의 마음은 두렵고 수치스럽고 오줌 나오는 성기가 더럽고 징그러웠다. 무엇이 무서웠는지 모르지만 너무 무서웠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편안하고 친절한 말투를 선택했지만 나는 편안하지도 배려받는 느낌도 아니었다. 두려움에 경직된 나의 표정에 공감하지 못하고 자기 기분만 보살핀 그가 저주스러웠다. 그때 나는 왜 아래 계신 엄마를 큰 소리로 부르지 못했고 그 후로 긴 긴 시간 두려움 속에 살며 나쁜 짓에 가담한 듯 그 날을 비밀에 부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위의 글은 짧지만 저 글을 쓰는데 총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처음 쓰고 2주간 글을 쓰지 못했고 불쾌한 기억에 대한 질긴 연을  끝 내자는 다짐으로 다시 쓰고 있다. 


이글을 처음 쓸 때는 피해자 조서인 듯 피해의식에 가득 찬 글이 쓰였고 그를 모두 그놈이라 썼고 성추행은 그 일이라고 썼었다. 그리고 그 상황을 과장시키려는 태도가 있었다. 아마도 내 억울하고 화나는 마음을 더 잘 호소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이것도 글 소재라고 흥미진진하고 아름답게 쓰려는 욕구가 있는 것일까? 어리석게도 젊은 날에는 내가 강간 살인 미수쯤 돼야 억울함을 인정받을수 있을까 생각한 적도 있다. 그래도 어지러움을 이겨내며 최대한 담담하게 공원에 앉아 다른 사람들 바라보는 마음으로 쓰고자 애를 썼다.


하지만 혀가 떨린다. 글을 쓰기로 다짐했지만 오랜만에 그때의 기억을 의식 가까이 꺼내 자세히 들여다보려니 손가락이 두꺼워지고 눈에 압력이 올라와 흐려지기도 하고 심장이 궂어지는 듯 어깨가 뭉치고 큰 숨을 몰아 쉬게 된다. 


성추행에 대한 경험은 꺼내지 말아야 할 기억인 듯 내 몸이 두려워하고 있지만 기여코 모두 꺼내 아무렇지 않게 날려버리고 싶었다. 마음 깊은 구석탱이에 묻어두고 살아도 살만하지만 기여코 기억을 가볍게 만들고 싶어두려움에 맞서고 있다. 성추행은 더 이상 내 안에 갇힌 두려움, 수치심, 괴로운 비밀이 되지 않길 간절히 소망한다.


과거일 뿐 이미 지나간 일인데 나는 왜 이리도 두려워하는 것일까? 


성인이 된 후 신뢰가 가는 이들에게 성추행 사실을 알려왔다. 부모님과 가족들에게는 말하지 못했다. 너무 놀라실까 봐. 혹은 나를 비난할까 봐. 혹은 그랬냐고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까 봐. 


아무튼 세상에 가장 싫은 사람과 둘 만 아는 기억이 있다는 게 저주스러웠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기필코 말해야만 했다. 어렵게 말을 꺼낸 뒤 수년에 한 번 씩 진솔한 대화가 오고 가는 자리를 또 만나면 성추행 경험을 계속 알렸고 40세가 되어서 다시 말할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담담히 말할 수 있었다. 


그간의 명상과 알아차림을 통해 거의 치유되었다 느꼈었다. 그런데 이렇게 글로 그날을 기록하고자 차분히 기억을 꺼내 쓰다 보니 타인 앞에서 말은 했지만 이렇게 자세히 그날을 떠올린 적이 없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간 치유가 아니라 시야를 어둡게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두려움이 갈비뼈 깊은 곳에서 올라와 팔뚝을 저리게 하고 아랫배가 뭉치는 기분이다. 오랜 기간 내 머리에 박혀 나를 괴롭힌 익숙한 이미지인데 말이 아닌 글로 꺼내니 몹시 괴롭다.


어린 시절 그가 있는 큰 아버지네 동네를 지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큰 아버지가 다른 동네로 이사했어도 나는 성추행이 있었던 그 집은 커녕 그 동네도 바라보지 못했다. 내가 크면서 큰 집에 인사드리러 갈 때면 멍청한 듯 큰 돌덩이처럼 느껴지는 그놈이 신경 쓰여 심장 졸였고 그놈이 우리 집에 놀러 올 때면 좁디좁아 숨을 곳 없는 집에서 마주치지 않을 곳에 숨기 위해 팔딱거렸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 한 번은 간식거리 사준다고 나를 데리고 나갔다. 불쾌했고 불안했고 두려웠고 무서웠지만 우리 가족 모두 인정하는 자연스러운 그 상황을 거역할 수 없어 슈퍼를 따라나가 아무렇지 않은 대화를 나누는 내가 너무 초라하고 무섭고 냐약하고 괴로웠다. 


모든 촉을 동원해 두려운 일이 발생되지 않도록 긴장하고 거리감을 두었다. 내가 그 날로 부터 완전히 우뚝 서지 못했는데 그 일에 대해 이야기 꺼내면 내가 모르는 일인척 거짓말할까 봐 혹은 무서워하는 게 들키면 내가 더 위험해질까 봐 혼란스러웠다.


그의 결혼식 땐 사진 찍지 않으려 팔딱거리고 숨어 다녔고 부모님께 혼났다. 20대 때는 한 동안 그놈이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와 퇴근 길마다 마주해야 했는데 아무렇지 않게 인사 건네며 거들먹거리는 말투를 들어야 했던 그 시간은 너무 싫고 두려워서 그놈이 다시 오지 않게 된 날 이후로도 나는 독립을 하기 전 10년이 넘는 매일 밤 동안 우리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 코 너를 돌면 보이는 옆 집 지붕 꼭대기에 시선이 닿는 순간 그가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자괴감을 느끼며 심장 졸이는 느낌을 받으며 집에 들어가야만 했다.


성추행으로 인한 피해는 이런 몇 가지 사건 만이 아니다. 나에게 세상은 어디에도 의지 할 곳 없고 내 감정을 드러낼 수 없는 곳이라는 고립감과 외로움을 주었고 남자는 무서운 인간, 나는 나약한 존재라는 거짓을 만들어 나를 조장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나는 젊은 시절에 내 젊음과 아름다움을 인정하지 않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간절함 반 면 남자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으로 남들 앞에서는 여장부 인척 터프하게 굴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늘 혼란스럽고 누군가 마음으로 다가오는 느낌을 치 떨리게 두려워했다.


성추행 상황, 그 후의 경험 그리고  그로 인한 나의 신념 전반에 끼친 피해를 이렇게 까지 정나라 하게 펼치는 이유는 첫째는 성폭력 가해자였거나 가해할 기회를 맞이한 사람들이 이 글을 읽는 다면 피해자의 입장을 정확히 알리고 싶어서다. 가해자는 자신의 죄의식을 물리치려 더욱 자기중심적으로 안하무인 할 수있다. 그래서 피해자의 입장을 가만히 들을 기회가 없을 것 같다.


피해 아이가 어리면 기억하지 못할 한 순간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성 노리개가 된 다는 건 평생 지워지지 않는 귀신 얼굴 처럼 깊은 심상으로 뇌리에 남는다. 생명에 해를 끼치지 않았건, 건강에 큰 해를 끼지치 않았건 본인 생각엔 잠깐의 농락일지라도 피해자는 평생에 걸쳐 파생되는 수많은 피해를 지긋지긋하게 짊어지고 살아간다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그 아이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압도당해 단 한 번 주어진 인생을 허비하면서 성인이 되고 머리를 풀어헤친, 한 서린 귀신같은 간절한 마음으로 당신이 처참히 죽어가길 간절히 기도한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성추행 기억을 다시 쓰는 두 번째 이유는 수 없이 많을 피해자들에게 나의 성찰을 나누고 싶어서이다. 


만약 그 날의 일을 숨기고 싶다면 그 건 그놈, 그 년이었어야지 그 아이는 단 하나도 숨길 이야기가 없다는 걸 나를 포함한 피해 아이들에게 정확히 전하고 싶다. 


나는 그 날의 기억을 한 소절도 숨길 이유가 없다. 가해자의 죄의식은 나의 몫이 아니라 그들의 것이다. 내 몫은 오직 나의 치유와 떨치고 나아가는 지혜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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