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를 위한 자가 격리 지침은 없다. 오직 엄마의 선택만이..
확진자가 지금 보다 많지 않았지만 불안은 곱절이나 컸던 2020년 9월. 4살, 7살 아이들과 양평으로 이사했다. 이곳도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로 완전히 차단될 수는 없는 곳이지만 마치 사람이 적은 청정 지역으로 숨어드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사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근 학교에서 한 명의 확진자가 나오면서 어린이집도 쉬어가는 분위기라 그냥 맘 편히 이사 온 곳에 적응할 겸 집 앞 계곡에서 물놀이하며 인적 드문 동네에서 코로나 현실을 나 몰라라 하고 한 달 넘도록 잘 쉬었다. 코로나 때문에 이사 한게 아니고 아이 초등학교 입학에 앞서 준비하고 움직인거지만 때 맞춰 잘 숨어들었다는 만족감이 가득했다.
아이들이 기관을 이용하게 되면서 단체 생활에서는 종일 마스크를 쓰지만 스쿨버스에서 내리면 마을 초입에서부터 곧바로 마스크를 벗으며 '아 시원해'라고 말하고 시원한 공기를 크게 들이쉰다.
인적 드문 산골 마을 길에서 우리는 마스크 없이 산책하는 호사를 누리며 잘 살았다.
그렇게 1년 여가 지나 얼마 전 둘째 어린이 집의 교실에서 확진자가 나오면서 둘째가 자가격리를 하게 됐다.
뉴스에서 확진자가 4,000명이네 7,000명이네 할 때는 그런가 보다 하고 지냈는데 우리 가족이 1명의 확진자와 접촉이 있다고 하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자가 격리자가 되자 보건소 여러 부서에서 4,5통의 전화를 받았다. 한 분은 자가격리 방침을 알려 주셨는데 답답한 마음에 물었다. '무슨 수로 천방지축 5세 아이를 격리하죠? 이미 우리 가족은 물고 빨고 접촉이 끝났는데 못 놀게 하고 종일 마스크 쓰게 하는 게 의미가 있는 건가요? 제가 아이와 공동 격리를 한데도 초등 1학년 형제도 있어요. 이 아이나 일 다니는 아빠에게도 제가 필요한데 엄마는 무슨 수로 자가 격리가 가능하죠?'
하지만 답변은 '글쎄요. 그래도 철저히 해주셔야 해요'라는 말 뿐이었다. 마치 '개인 사정은 모르겠고 방침 알렸으니 잘못되면 다 엄마 탓이야. 아이와 악다구니의 전쟁을 치르던 있을지 모를 확산을 엄마가 책임지던 알아서 해.'라고 말하는 것 같아 막막했다.
그리고 며칠 후 자가 격리 지원 물품을 받았다.
쌀과 물 그리고 라면, 참치 통조림, 찌개, 김 등. 물품을 받고는 도저히 어린아이에 대한 이해가 없는 지원 현실을 다시 느꼈다. 왜냐하면 5세 아이는 아직 라면, 통조림, 찌개를 못 먹는 음식들이기 때문이다. '이건 나 먹으라고 준 건가? 안 줘도 될 것을..'
그렇게 처음 겪는 자가격리에 이해도 안 가고 지키기도 어려운 지침을 어떻게 따를 것인가에 대한 스트레스와 혹시 모를 확진에 대한 두려움에 벌벌 떨며 지냈다.
우리 가족 모두 음성이지만 애들 나이가 어린 우리 가족은 여느 가정처럼 물고 빨면서 서로 하나 같이 지내기 때문에 모두 같은 정도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데 대상자가 된 한 아이만 자가 격리시켜야 하는 방침이 이해되지 않아서 어차피 지키지 못할 규칙을 지키고자 아이와 싸울 것인가, 아니면 내가 책임지고 우리끼리는 그냥 지낼 것인가 결단 내내려야만 했다. 만에 하나 격리를 잘 못했는데 확진이 되어서 가족 생명에 지장이 생기면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함께.
사실 처음에는 확진에 대한 두려움보다 조심하지 못한 확진자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 있었고 다음으로는 만약 내가 확진되었을 때 요 몇 일 내가 만난 분들도 이렇게 검사받고 격리돼야 할 것이라는 죄스러운 마음이 가장 두려웠다.
확진자 접촉 후 격리 안내를 받기 전 2,3일 동안 우리 가족 모두 학교도 다니고 일도 나가고 나 역시 아이들 미술 수업을 하던 터라 만약 일이 잘못돼서 격리 해지 전 검사에서 양성이 나오면 이 민폐를 어쩌나 하는 불안과 공포가 밀려와 정신줄을 잡고 있기가 너무 어려웠다.
다행히 중반이 넘어서면서는 정신을 다잡기 시작했다.
1. 확진된 사람은 비 자발적 감염자다. 그도 어쩔 수없다.
2. 내가 결국 양성이 나오면 나 역시 그들처럼 감염자가 되는 것이다.
3. 감염은 면역의 문제이지 책임의 문제가 아니다.
4. 가족 모두 증상이 없고 컨디션이 좋다.
5. 모두 마스크 잘 쓰고 다녔다.
6. 확진자 접촉 후 우리 가족 모두 물고 빨고 이미 끝났는데 이제 와서 자가격리가 불가능한 5세 아이를 띄어 놓겠다고 살벌한 분위기 만들지 말자. 이미 우리는 하나다.
7. 이미 모든 일은 벌어졌다. 살면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다.
길게만 느껴진 자가격리를 마치고 자가격리 해제 전 검사에서 아이와 나 모두 다행스럽게 음성이 나왔다. 격리중에 다 괜찮다고 마음먹고 있었지만 음성 확인 문자를 받는 순간 '살았다'하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얼마나 긴장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혼돈과 공포의 경험을 지나 무사히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2주가 지나기도 전에 첫 째 역시 교실에서 확진자가 나왔다. 이번엔 확진 규모가 커서 10인가량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또 다시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지난번보다 확산 세도 심하고 친하게 놀던 친구들이라 접촉 강도도 강했을 텐데 신기하게 덜 불안했다. 역시 경험의 힘은 위대한 것 같았다. 그리고 덜 불안한 또 하나의 이유는 내가 접촉한 사람이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내가 확산의 고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내가 확진이 되는 것보다 무서운 일이라는 걸 다시 경험했다.
반복되는 격리에 폭풍 같은 두려움과 긴장이 밀려왔지만 경험에 의지해 곧바로 마음을 다잡았다.
'확진자가 가장 힘들다. 책임의 문제가 아니라 면역의 문제다. 컨디션 좋고 마스크 잘 썼고 우리는 하나고 살아도 같이 죽어도 같이 간다.' 둘째는 하루 종일 스스로 마스크를 꼼꼼히 쓰는 것이 서툰 관계로 그냥 집에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나는 코로나 검사를 받지 않았고 스트레스 때문인지 열감이 느껴져 약국용 검사만 실시했다. 왜냐하면 만에 하나 아이들은 면역이 좋아 음성이 나왔는데 나만 무증상 확진이 되면 이 애들을 집에 두고 내가 어찌할 바가 없기 때문에 어차피 가족 격리 예정이니 이번에는 나서서 검사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난 경험으로 정립된 우리 집 스타일 방역 코스를 밟았다. 그건 바로 '뽀뽀 삼가하고 컵, 숟가락, 수건 나눠 쓴다. 물 많이 마시고 프로폴리스 챙겨 먹으면서 남편이 자체 격리하라'는 자가 지침이다.
다행히도 열흘 간 정신줄 무너지지 않고 무사히 격리를 마치고 음성 판정받아 학교로 돌아갔다.
나는 자가격리 지침을 따르지 않았다. 확진자와 밀접 접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2,3일간 이미 온 가족은 밀접 접촉이되었기 때문이다. 지침을 따르지 않은 죄 값으로 충분히 막막하고 불안해하며 두려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두 번의 자가 격리 끝에 내린 결론은 영유아를 위한 자가격리 지침은 없다. 오직 엄마의 선택에 행운이 따라야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