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육아 성찰 04화

존댓말이 그렇게 중요해?

누가 애고 누가 어른 인지도 모르고 싸우면서

by 송다감

남편과 만남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 친구였던 남편이 말했다.

'내가 나이도 많고 이제 편하게 지내려면 말 놔도 되죠?' 그리고 나는 말했다. '싫어요. 서로 존중하는 관계가 좋아요.'그리고 결혼 7년 차인 우리 부부는 아직 존댓말을 한다.


우리 부부가 존댓말을 하는 것은 나에게 자부심 같은 것을 느끼게 해 준다. 멋지고, 품격 있고, 평등하고, 지적이고 등등.. 그런데 오래 살다 보니 남편이 점점 6,7은 반말이고 3,4는 존대를 쓰는 상황이 많아져 언짢음을 느끼게 되었다. 남편 말대로라면 나이 어린 나도 반말에 동참하면서 말이다.


상호 존중하는 관계를 좋아하는 나라서 그런지 아이를 낳고 아이에게 나도 모르게 존댓말을 쓰게 된다. 나뿐만 아니라 tv나 주변에 아이 키우는 모습을 보면 많이들 그런다. 맘마 먹을까요? 쉬아했어요? 아고, 힘들었어요 등등. 아이를 사랑하는 심장 울컥함을 알지만 왜 그 사랑이 존댓말의 형태로 전달될까 궁금하게 여겼고 존중이 넘쳐흘러 존대의 형태로 나타나는 걸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가 조금 더 자라면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예의 바름을 가르쳐야 한다는 집념을 보인다. 배꼽 인사를 강제하며 '예쁘게 말해야죠?'혹은 '주세요~ 해봐'라며 아이에 대한 존중을 넘어 예절에 대한 의지 혹은 투지 같은 것을 드러낸다. 조금은 갑작스럽다. 아이를 낳기 전에 예절에 대해 별 의식 없이 살던 우리들 아니었나? 존댓말이 무엇이길래 아직 제 이름도 잘 모르는 어린아이 때부터 가르치고 싶은 걸까?


존댓말에 대한 이런저런 잔상을 가지고 있던 터에 우연히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답을 얻었다.


최연소 자연인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던 것 같은데 태어나서부터 건강이 안 좋아 할아버지가 5살쯤 된 아이를 산중에서 몇 해 째 키우는 중이라 했다. 자연인의 집은 다른 자연인들의 집과는 많이 달랐고 일반 가정집과는 아주 비슷했다. 아이 자전거와 주방놀이 세트 등 플라스틱 집기들이 마당에 즐비했다. 아이는 할아버지에게 100% 반말을 했고 할아버지는 아이에게 친구처럼 대했다. 산중에 살면서 자연 놀이가 아닌 자질구레한 시중의 놀잇감을 사들이고 아이는 반말을 하게 내버려 둔다고 판단되어 내가 심사위원이라도 된 듯 언짢음과 불만이 보글보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계속 보다 보니 그 아이는 산중에서 나물 반찬, 고기반찬 가리지 않고 스스로 아구아구 씩씩하게 먹었다. 산중에서 할아버지를 따르거나 위하는 마음이 주변에서 보기 드물게 의젓하고 대견했다. 할아버지는 친구처럼 말하면서 아이를 수용해주고 알려주고 응원해 주었다. 프로그램 초반에 저러면 안 되지 비난하는 내겐 반전이었고 그 모습에서 깨달음이 있었다.


'아이는 씩씩하고 할아버지는 어른이다'


존댓말을 못하는 버릇없는 아이와 애를 잘 못 키우는 할아버지라며 잣대를 들이 댄 나. 책으로 애 키우는 것을 배우며 공감 육아, 존댓말, 예절, 자립적이라는 단어만 머리에 맴돌 뿐 애한테 치이고 싸우고 화내고 바라면서 누가 애고 어른인지 모르게 투닥투닥 싸우고 내 주장대로 끌고 오려고 전전 긍긍하면서 아이에게 존댓말을 쓰고 존댓말 하도록 가르칠 뿐이었던 나를 알아차렸다. 진짜 가르쳐야 할게 무언지 전혀 느끼지도 못하고 있었다.


나는 단순히 내 아이에게 존댓말을 가르치는 예의 있어 보이는 사람만은 아니어야 했다. 아이 곁에서 이해하고, 기다리고, 응원하고, 지지하는 진짜 어른이 되어 주어야 했다. 존댓말은 형식일 뿐이다. 형식도 중요하지만 형식에 목메다 보면 형식의 본질은 잊히기 쉽다.


tv에서 그들의 삶을 목격 후 육아의 방향뿐 아니라 삶의 방향도 바뀌었다.


며칠 전 남편과 부부싸움 후 화해를 하고 다시 이런저런 대화 중에 서로 반말을 쓰고 있음을 알아챘다. '그래, 남편과도 마찬가지구나. 반말이라고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편하다는 거구나. 서로 악의 없고 친근한 상태라면 반말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라고 말이다.


형식 자체도 중요하긴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형식이 필요했던 이유다. 존대라는 형식은 상대에게 존중을 표함으로써 함께 있어도 안전한 좋은 관계임을 확인하는 것이 주목적일 것이다.


이제는 아이가 존댓말을 잘 쓰는가 보다는 상대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있는가에 관심을 기울이려고 한다. 그리고 나는 존댓말 쓰는 품격 있는 사람이기보다는 어른다운 포용심과 배려심으로 마음 놓을 수 있는 편안한 부모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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