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60이 되어도 80 노인이 된 부모 눈에는 어린아이라는 말이 있다. 인간극장 같은 생활 다큐에 나오는 삶을 구경하다 보면 종종 목격되기도 하고 쿵덕쿵덕 살아가는 모습에 살며시 미소가 지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게 내 이야기가 되면 미소는 싹 가신다.
얼마 전에 친정 가족들이 이사하고 처음 내 집에 오셨다. 아빠는 '아침에 이불을 게워라. 깨끗하게 살아라. 이거 애들한테 위험하다. 찻길 조심해라' 등등의 인사를 계속하셨다. 집은 내 기준에서 깨끗한 상태였음에도 잔소리를 하셔서 '맨날 먹고 하는 게 애들 키우고 살림하는 건데 잘하지요.'라며 언짢음을 표현했더니 아빠 말씀이 '부모니까 가르쳐 주는 거지. 부모가 안 가르치면 내가 여기 있을 필요가 뭐가 있냐! 부모가 하는 말 잘 들으면 돈 많이 벌고 판검사 되는 거다'하셨다. 그 말에 '지금 내가 성공 못했고 그게 아빠 말 안 들어서 그렇다는 건가?' 비틀어 듣고 기분 상하려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졌다.
부모 말 잘 들어야 성공한다고?
부모가 하는 말은 정리된 교재가 아니다. 내가 지금 하고 싶은 말, 할 수 있는 말이 있고,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해야 할 말이 있다. 전두엽은 죽을 때까지 발달한다는데 아직 성숙 중인 부모의 말들을 잘 듣고 따라야 할까? 그 말들을 잘 들어야만 정말 성공할까? 의문이다.
아이들에게 하.고.싶.은. 말은 주로 '엄마 때는 이런 거 맘대로 사 먹어본 적이 없어. 이렇게 지원받아보지 못했어. 고맙게 생각해야 돼'같은 내가 어린 시절 부족했던 것을 아이에게 제공하며 스스로를 충족시키는 말이나 '공부 잘해야 돈도 많이 벌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 수 있는 거야'처럼 자기 부모로부터 자주 듣던 말 혹은 tv나 영상에서 배워서 따라 하는 '안돼. 엄마가 안된다고 하면 안 되는 거야'와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구나'같은 말들이다.
그런데 이런 말들을 아이 입장에서는 생각해 보면 공감도 안 되고 이해도 안 되고 혼란스럽기까지 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 내려면 듣는 이의 공감과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는 것은 기본적인데 내 욕구 안에서 안정화되지 않은 상태로 뱉어내는 무의식적인 말들은 아이의 행동 변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그리 어른스럽지 못한 경우가 많다다.(아이 입장이 이해가 가지만 나도 내 말에 변화하지 않는 아이를 보며 언제나 욱하고 올라온다. 아빠나 나나 똑같다.)
속상하고 화가 난 아이
할.수.있.는. 말도 그렇다. 사람들은 각자 경험의 양과 질이 다르고 패러다임이 다르게 살아간다. 따라서 출력할 수 있는 어휘의 양이나 수준 그리고 이야깃거리도 다 다른데 내가 완전히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절대적이지도 안거니와 한 인간을 완벽한 성공으로 이끄는데 한계도 있다고 생각된다. 자신이 아직 경험하지 않은 세상에 대해 나의 패러다임만 인식하고 나의 판단 기준으로 방향을 강요하는 건 걱정스럽고 겁도 난다.
가장 중요한 건 해.야. 할. 말.이라고 생각된다. 한 생명이 자라나 사회에서 인정받는 안정적이고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 부모가 꼭 해줘야 하는 말 중에 최고는 '너는 지금 여기 이대로 괜찮다'는 응원과 만족을 전하는 말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일상을 돌이켜 보면 나는 주로 내가 들어왔고 욕구에 차올라서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튀어나오는 배설물 같은 말만 무한 재생하느라 내 아이가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행복감을 키우는 데는 관심을 주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내 부모에게는 잔소리만 한다 비난의 마음을 키웠는데 잔소리만 한 건 나 역시 마찬가지 구나 반성이 되었다.
반성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자식이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다면 태도를 훈계하는 부모의 가르침은 일단락이 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은 계속된다. 유치원도 대학도 전문가 과정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수료를 하는데 부모로서 자식의 수료를 인정하기는 쉽지 않은가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자식이 100세가 되면 수료시켜 줄 수 있을까? 그럼 60은 왜 안되지? 그럼 40, 20은 왜 안되지? 하는 생각을 하다 보니 열 살 혹은 다섯 살부터도 부모로서 가르칠 나름의 과정은 그때그때 수료시켜주고 수료한 가르침에 대해서는 계속 가르치려는 마음을 자제하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생각 들었다.
어려서부터 혹은 일련의 사건들을 맞으며 차근차근 수료시키는 연습을 하지 않는 다면 자식이 60살이 되어도 철부지 아이로 '내 마음에 저. 장.'하기 쉽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스므살이 되면 독립시키고 내 삶을 누리는 꿈을 꾸는 나로서는 절실한 성찰이 아닐 수 없다.
엄마 말 하나도 안 듣고 차려입고 기어오르는 아이
앞서서 부모가 '해야 할 말'은 지지와 만족을 전함으로써 아이의 비전을 밝히는 말이라 하면서 '하고 싶은 말'과 '할 수 있는 말'을 배설물이라 비하했다. 부모의 하고 싶은 말과 할 수 있는 말에 대한 내면 깊은 곳의 수 틀림이 존재하는 것을 인정한다. 내가 너무 했다. 좋게 생각해 보면 욕구가 담긴 생각은 이념이라 할 수 있고 할 수 있는 말을 한다는 건 자기 신뢰가 강하다고도 할 수 있다.
부모로서 자기 자질을 불신하고 뭘 어떡해야 하나 늘 불안해하는 것보다 이념과 자기 신뢰가 강한 것이 더욱 성숙된 인간이고 육아에 더욱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동전의 양면처럼 신념과 자기 신뢰 뒤에 숨은 권위에 순종하길 바라는 마음을 스스로 들춰보고 주의 함으로써 아이가 가족을 벗어나 사회를 만났을 때 권력 앞에서 습관처럼 고개 숙이지 않고 아무 애쓰지 않고 흘러나오는 생각이 '나는 지금 이대로 괜찮다. 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아이가 예측 불가한 시대를 자신 있게 헤쳐나가는데 도움되는 부모가 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나에게도 전한다. '나는 지금 이대로 완전히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