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여기서 즐겁고 싶은 순수한 기대심
육아는 말이 통하지 않는 생명체를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신경 쓰고 관리해야 한다. 더불어 건강한 어른으로 키워내기 위해 교육해야 하는 숙고의 시간이다. 또한 나에게 있어서는 사회적 동물로 나고 자라나서 갑작스레 실내에 갇혀 나와 동등한 지적 수준의 인격을 만날 기회 없이 자기 요구만 하는 아이의 비위를 맞추고 인자한 미소로 하루를 보내야 하니 여간 고된 수련의 시간이 아니었다. 어른 여자를 만나 공감의 시간을 갖거나 공감을 잘하는 남편이 있다면 좀 낫긴 하겠지만 그마저도 어렵다면 동굴에서 마늘과 쑥을 먹었을 곰의 심정이 이랬을까 싶은 마음이 든다.
우울하고 불안하고 정서적으로 궁핍해진 어른의 몰골을 하고 tv나 유튜브에 나오는 놀이 장면을 보면 참 신기했다. '어떻게 저렇게 놀아주지?', '나는 나쁜 부모인가?' 그러다 아이가 그것을 따라 놀아달라고 하면 말한다. '저건 영상 찍으려고 가짜로 하는 거야', 남편도 말한다. '돈 안 벌고 노니까 할 수 있지. 아빠는 돈 벌러 다녀서 힘들어서 안돼'
정말 그럴까? 진짜로 신나서 놀아주는 부모도 있지 않을까? 돈 버는 것과 상관없이 놀 수는 없을까?
그러면서 계속 돌이켜 생각하고 놀아주는 척 시늉도 해보고 이런저런 궁리를 해보면서 마음의 걸림돌을 찾아보았다.
첫 번째 걸림돌은 '나는 힘들다'는 고난을 인정받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지치고 나약해진 내가 아이와 신나게 놀아 버리면 유일하게 만나는 지적 인간인 배우자가 내 고난을 몰라주고 내가 빈둥거리며 아주 살만 난 줄 알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나는 웬만해선 웃지 않고 괴로워하며 내가 힘들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알리고 인정받아야 하는 욕구가 무엇보다 앞서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두 번째는 '나는 애가 아니다'라는 거부감이었다. 나는 인테리어를 전공했고 서울, 경기권 현장들을 누볐었다. 연극을 하며 대학로 극장에서 밤을 새우고 연습실에서 땀 흘리며 지적 가치를 불태우던 불타오르는 어른이었다. 지금 여기서 부스스하게 어린아이와 구부정하게 마주 앉아 냉소적이고 잘난 척 섞어 응대하고 있지만 나는 이러고 있을 사람이었다. 여기는 내 자리가 아니고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니다. 지금 여기를 인정할 수 없었다.
아이에게 화가 날 때 마음을 들여다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여기서 너 정도 지적 수준의 인간에 맞춰 신이 날 수 있는 수준의 사람이 아니단 말이다. 내게 즐거움은 너의 미소가 아니라 지나가 버린 젊은 날의 그 열정과 그 유희란 말이다.' 그렇게 나는 나에게 내가 얼마나 괜찮은 인간이었는지 확인시키며 아이 앞에 구부정 앉아있는 여기를 시시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인형 놀이하자고 조르는 다섯 살 딸아이에게 허세 섞인 어투로 말을 했다. '내가 지금 나이가 몇인데 너랑 놀 때냐?'그때 깨달음이 내게 왔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그럼! 놀 때지! 남자 나이 40 중반이면 한~창 애랑 놀 때지!'
나는 지금 놀아주는 때가 아니라 한창 잘 놀아야 할 때를 살고 있는 것이다.
아이와 함께 '한 창 놀 때'를 살고 있었는데 내가 누구고 여기가 어딘지 모르고 있었던 것 같은 통쾌한 알아차림이었다. 그런데 잘 놀 때를 사는데 나는 왜 안 놀고 싶지? 내 태도와 마음을 계속 읽다 보니 내게 동심이 없어서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동심이라는 것은 '요즘 아이들에게 있었으면 하는 순수하고 뭘 잘 모르는 순박한 마음'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아이와 살아가는 지적 인간이라면 반드시 간직해야 할 마음. '즐거움에 대한 순수하고 열렬한 기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동심은 행복이다. 내가 지금 여기서 즐겁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과 같다. 호기심을 내는 것은 내가 더 많이 정확히 알고 싶어 나를 위해 행동한다는 것과 같다. 그러니 동심을 낸다는 것은 나를 아끼고 내편에서 활동하겠다는 것이니 동심은 행복이라 확신할 수 있다. 동심을 가지고 함께 노는 친구가 있다면 행복이 가득한 시간이니 그 순간은 사랑일 것이다. 내가 동심을 찾고 아이와 논다면 우리의 시간은 사랑이 가득한 시간일 것이다.
동심에 감명을 받고 나니 동심의 한자 뜻은 어떨까 궁금해 옥편을 찾아보았다. 아이'동(童)'자는 里(마을_리) 위에 立(설_입)으로 만들어졌다. 마을 입구에 있는 아이들을 본뜬 글자라 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해석했다. 사람이 모여 살 때 먼저 세워야 할 가치라고 말이다.
신기한 것은 동심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이 강해지면서 남편에게 힘듦을 인정받고 싶거나 나 자신에게 내 자리를 묻는 어린 생각이 줄어들었고 순수한 즐거움을 바라고 쫒다 보니 식상한 아이 책도 재미있게 읽고 쿵닥쿵닥 인형 놀이도 재미있었다. 이래라저래라 가르치는 말이 더 많을 때보다 친구처럼 대화하다 보니 내 감정과 요구를 전하는 괜찮은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건 아이와 함께 있건 없건 간에 동일한 작용을 했다. 동심의 힘은 정말 강력했다.
내가 또다시 아이 앞에서 신경질 적이고 지루해한다면, 이 글을 찾아 읽고 즐거움을 느끼려는 순수한 마음의 힘을 기억해 내고 얼른 다시 나와 아이의 행복을 위해 웃으며 살길 바란다.
동심은 아이가 갖아야 할 덕목이 아니다. 아이 땐 자연스레 갖고 있다 어른이 되며 잊히기 쉽지만 행복한 삶을 위해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어른의 덕목이다. 어려서부터 갖고 있던 즐거움에 대한 순수한 기대심을 깨워 한 층 성숙한 인간이 되고 싶다. 오늘도 물 한 잔과 동심 한 모금 들이키고 아이들 하원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