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딸이다. 둘째와의 나이 차이가 세 살이니 3년간 딸아이 엄마로서 흔히 듣던 말이 있었다.
대충 이런 내용이다. "딸이라 수월하지? 아들 키워봐라. 애교도 없고 극성 맞고 몸이 치이고 애 키우기 너무 힘들다." 안 키워본 나로서 속상했다. 나 역시 말도 통하지 않고 제멋대로인 아이 때문에 수난의 시간을 걸으며 곰이 마늘 먹는 심정으로 살고 있는데 내 아이가 딸이라는 이유로 나의 고통이 별것 아니라고 하니 억울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래서 아들을 더 키워보고 싶었다. 아들 키웠거나 키우는 엄마들이 하는 인사가 '아들에 의한' 것인지 '아들 키우는 엄마에 의한'것인지 나의 호기심이 발작해서 너무나 밝히고 싶었다.
둘째는 아들이다. 오호라 잘됐다. 어디 내가 파헤쳐 보마!
둘째를 임신하고 태동이 있었다. 다시 인사가 시작됐다. "아들은 태동도 거칠지?"첫째보다 많이 움직이긴 했다. 하지만 출산 경험을 듣다 보면 첫째라 둘째라 혹은 남자라 여자라 따질 수 없이 모든 경우에 따라 달랐다.
"젖 빠는 힘이 다르다니까!"라는 엄마 말씀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수긍은 되지 않았다. 단단하고 빡빡한 젖을 빨아낸 첫째와 첫째가 1년 넘게 빨았던 물렁물렁한 젖을 빠는 둘째 중에 누구의 힘이 더 들었을까 생각이 들어서였다. "발차기하는 것 봐라. 확실히 뼈대가 굵고 힘이 세다" 이건 수긍이 됐다. 첫째에 비해 몸이 단단해 보이긴 했으니까.
이렇게 나는 아들을 낳고부터는 '아들이라~'라는 인사를 계속 들었다. 내가 인식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아이의 많은 행동을 아들이라 그렇다고 인사 전하며 나를 교육시켜나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이가 놀이터에 나가 걷고 뛸 때도 마찬가지였다. 겁 없이 기어오르고 뛰어내리면 '아들들이 저런다니까'라고 했다. 하지만 이것도 수긍이 안됐다. 우리 첫째는 더 일찍부터 걷고 뛰고 넘어지고 까불고 다쳤기 때문이다.
둘째가 곧 다섯 살이 되지만 아들이라 더 힘든 것은 사실 별로 없다. 그냥 말 못 하고 제멋대로 날뛰는 아이 시절을 보내는 것이 힘들 뿐이다. 이렇게 힘든데 주변에서 '아들이라 그래~'라고 인사해 주면 사실 꼭 그렇지는 않다는 걸 알면서도 내 힘듦을 알아주는 게 기분 좋아 고맙게 느껴졌다.
사실 아들이라 힘든 부분은 아들이 남. 자. 이기 때문이다. 보통의 남자. 언어능력이 여자보다 뒤떨어지고 감정교류와 사회적 교류를 중시하는 여자와 다르게 자기중심적이고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 보통의 남자.
언어로 생각과 감정을 교환해서 언어로 소통이 가능하길 원하는 엄마가 여자인 딸에게 요구를 전달하면 딸들은 비록 어린 나이어도 어느 정도 입력이 가능하다 하지만 아들들은 주로 언어가 딸려 엄마가 뭘 원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고 집중할 수가 없기 때문에 엄마와 아들 사이에 어려움이 발생하기 쉽다고 생각된다. 마치 남편과 소통이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아이는 2차 성징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남자, 여자가 아니라 그냥 아이라는 말을 좋아하고 지지한다.
뇌 과학적으로 보아도 우리 뇌에서 사회성과 감정표현을 관장하는 변연계가 완성되는 것은 4살 경이라고 한다. 아이를 키워 보니 정말 이때쯤 딸아이랑 다르다고 느끼게 된다. 첫째 키우듯 하고 싶지만 말로 집중시키고 말로 의사 전달하는 게 잘 되지 않아 '왜 이렇게 까부니? 엄마 말 안 들려? 엄마 이제 말 안 하고 치울 거야!'같은 협박의 말을 엄청 쏟아붓지만 아무런 반응도 이끌어 내지 못했다.
또 한 가지는 여자로서 남자 사람과 함께 할 때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은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상대의 감정을 읽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기본적인 교류 활동을 남자들이 인식조차 하지 못할 때인데 '비추어 생각하기'나 '공감 능력'과 관계가 깊은 전두엽과 뇌섬엽은 15~25세(사춘기기 시기와도 비슷하다)가 되어야 발달이 성숙되기 시작하니 적어도 몸과 마음 모두 여성성 남성성이 드러나려면 초등 고학년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초등 고학년 이전인 아들 딸에게 남자, 여자의 잣대를 가져다 대고 아이들 행동을 남자라서, 여자라서 규정짓고 규정에 따르도록 혼내고 가르치는 것은 아이의 바른 성장에 지장을 준다고 생각한다.
아이의 행동은 딸이라서 아들이라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 그냥 그 아이의 기질이고 그 기질을 수용할 수 있거나 없는 엄마의 기질이 반영되고 있음을 기억하고자 노력한다.
'아들 키우느라 힘들지?'라는 인사의 달콤함을 뿌리치기 쉽지 않다. 위로와 공감 그리고 지지가 절실히 필요한 산후 엄마에게는 말이다. 내 모든 고난을 네가 아들이라 그렇다고 아이에게 덮어 씌울 수도 있지만 내가 그 달콤함을 취하는 순간 위로는 잠시이고 그 아이가 하는 불편하고 개선되어야 할 행동이 '아들들이 그래~'라며 용인되고 개선의 기회를 잃게 되면 또 다른 육아의 고난으로 연결되었던 경험들을 기억한다.
아들을 키우며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을 모색할 때 번쩍하고 반전을 느꼈던 것은 바로 내가 여성성이 강한 장년 여자 사람이라는 인식이었다. 아이를 여자 사람 방식만 강요해서 언어적이고 맥락적으로 훈육하고 소통하고자 고집할 때 아들 딸 할 것 없이 육아와 훈육이 어려웠던 것이다. 아이를 아이로써 받아주고 가끔은 '나의 여성성'을 내려놓고 남자 사람처럼 단순하게 표현하고 육체적으로 대응하면 오히려 아이의 성별이 전혀 부각되지 않음을 경험할 수 있었다. 참 재미있는 발견이자 성찰이었다.
여전히 '아들은 원래 힘들다'는 위로 섞인 교육을 받을 때면 내 컨디션이 허리 이상 올라와 있는 한에서 마인드 세팅하고 화답한다. '애들이 다 그렇죠. 활발해서 좋아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