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다른 여자가 키운 아들과 살고 있다. 나는 그를 남편이라 부른다. 때론 불만족이 가슴을 뚫고 나와 나를 집어삼킬 때도 있다. 통찰처럼 다가온 메시지를 가슴 치며 말한다. '아들을 잘 키워야 해'
대부분의 아들은 자라서 누군가의 남편이 된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지 말고 가슴에 깊이 새기고 아들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더욱 절박하다. 요즘 시대는 많이 개방적이고 인권이나 평등의 개념이 일정 수준까지 올랐다고 하지만 가정이라는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돈 벌어오는 귀한 남편과 다르게 집에서 놀며 살림이나 하고 애나 키우는 아내라는 인식은 뼈에 묻혀 있는 듯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내가 이러려고 결혼했나? 결혼 후 언짢고 억울함을 경험한 아내들은 적지 않을 것이다.
물론 딸도 잘 키워져서 좋은 엄마, 좋은 아내가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유독 아들을 잘 키워야 한다고 하는 것은 결혼 전 잘 키워지지 않은 아들은 아내가 좋은 아내가 되려 헌신 할 수록 더불어 좋은 남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내의 큰 아들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성인 한 명에 애들만 사는 버거운 가정이 되어버린다.
아내로 살면서 억울한 이야기좀 풀어보겠다. 남편이 돈 버는 대신 부인이 집에서 살림하고 아이를 키우는 것이라 역할을 나눈다면 바깥일과 집안일은 평등해야만 한다. 그런데 보통은 남편이 쉬는 날 남편의 쉬는 시간은 존중하면서 독립된 자기 시간을 전혀 갖지 못하고 밤에도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똥도 아이 눈 마주치고 얼르며 눠야 하는 엄마, 아이와 이심 동체 되어 있는 아내의 쉬는 시간은 없는 듯 있는 듯 결국 없다.
끝내 아내의 스트레스 과다로 폭발해서 싸움이라도 일어나야 선심 쓰듯' 오늘 당신 시간 잠깐 가져'라며 잠깐의 휴식을 얻어 낸다. 그런데 이것도 운이 좋을 때이지 맨날 놀면서 하루 쉬는 남편 못 잡아먹어 안달 난 생각 없고 자기 생각만 하는 여편네로 취급받는 경우가 더 빈번하다. 억울해도 어쩌리 이 남자를 고른 것은 내 선택이었으니, 지금은 선택을 책임질 시간이라며 애들 다 키운 어느 날을 계획하는 수밖에.
결혼 초 아내의 역할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힘든 시간을 지냈다. 끼니를 챙기고, 치우고, 빨래하고, 가족과 소통을 나누는 것은 나이, 성별, 권력에 상관없이 살아있는 한 누구나 해야 하는 기본적인 활동이라 생각은 한다. 하지만 나부터도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자라다보니 살림살이는 허드렛일, 지저분하고 천한 일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내 인식이 그렇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전까지 갓난아이가 있을 때조차 설거지를 일주일씩 미루고 걸레질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
나는 남편과 내가 함께 꾸려가야할 살림(천한 일)을 육아라는 상황과 더해져 나 혼자 감당하는 것이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남편은 난 돈벌고 들어와서 힘든데 집에서 노는 당신이 해야지라는 생각이 절대적이라 먼지 한 가닥, 물 한 방울 손에 묻히지 않았다. 우리 부부 모두에게 천대 받는 살림을 누구 하나 쳐다보지도 책임지지도 않았다. 집안 일이 밀리고 밀려 결국 내가 해야 했지만 남편은 집안이 어떻게 되든 아랑곳 않고 나 혼자 감당 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억울하고 자존심 상했다. 마지 못해 분노하며 살림을 했다.
남편은 집안이 지저분해지면 우리 둥지가 지저분한 것을 인식하고 치우는 시늉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나니까 봐준다는 뉘앙스로 발로 툭 치고 한숨 섞인 표정만 남기고 지나가면 신경질이 나서 나도 살림을 집어던지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남편에게 당신이 그것 좀 치우라고 말하면 될 텐데 돈 벌어오는 게 뭐라고 나를 외면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듯 말 꺼내는게 자존심 상했다. 왜냐하면 어쩌다 말을 꺼내 보면 '내가 힘들게 돈도 벌어 오는데 저것도 해야 돼'냐는 소리만 듣게 되는걸 알기 때문이다. 내 처지가 얼마나 처량해지는지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나, 나의 미래는 있는 것인가, 내 미혼 시절의 빛 나던 꿈과 사랑은 정년 꿈이었던가 서글퍼진다.
남편에게 유머 섞어 가며 여유 있고 애교 있게 의사 전달하고 소통하면 좋으련만 육아 중인 여성은 그게 되지 않는다. 우선 호르몬 영향으로 기존의 나와는 전혀 다른 생각과 태도로 스스로도 순간 순간이 혼란스럽다. 스스로 버거울 뿐 아니라 아이를 키우느라 못 자고 못 먹고 더욱이 가치 실현 할 수 있는 소통 없이 집에 고립된다. 소통과 공감으로 살아가던 성인 여자가 다른 성인 여자를 만나 공감하고 지적 대화하는 활동을 하지 못하고 온종일 아이에게 대답 없는 외침을 반복하는 것은 정신적 고문이다.
유일하게 만나는 어른 사람이 남편이다. 남편이 얼마나 반갑고 오아시스 같은 존재일지 경험해 보지 않고는 모른다. 아이가 돌 전 후 일때는 내가 굴에서 마늘 먹는 곰인지 종일 젖 짜고 젖 주는 젖소인지 모를 혼돈 속에서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퇴근해서 돌아온 남편은 자기 자신을 귀하디 귀한 돈 벌어오시는 분으로 인식하고 자기 수발 들어줘야 할 아내가 안 그래도 힘들게 일하고 들어온 자신이 게임 한 번 하겠다는데 그걸 방해하고 말을 시키고 이해 안 가는 말로 공감을 원한고 가사나 아이와 놀아줄 것을 요청하니 어디 감히. 가당치도 않다.
남편은 남자라는 권력을 내세워 마치 매우 언짢고 화가 난 사람처럼 '몰라, 말 시키지 마. 안 그래도 힘든 사람한테.'라며 한심한 눈빛을 나를 통과해 집안 곳곳에 쏘아붙이며 혼돈의 육아맘에게 칼을 꽂는다. 남편들은 자신이 꽂은 것이 칼이라는 것도 모른다. 맞아본 적도 없고 맞아볼 일도 없으니 피를 흘리던 쓰러지던 관심 없이 휘두르는 것 같다. 그 남자는 결혼 전 나를 사랑한다고 치열하게 구애하던 내 편인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어디서부턴가 그때의 그 사람과 지금의 남편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연결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부모 말을 듣고 배우는 시기는 사춘기 전이다. 아이들에게 그 전에 가르쳐야 한다. 특히 아들에게.
남편은 아이 낳고 1~2년 정도 아무리 힘들어도 집에 돌아와 아내와 잠깐의 대화시간은 갖아야 한다. 아니 그만큼의 에너지를 반드시 남겨서 돌아와야 한다.
종일 말도 통 하지 않는 아이에게 배려와 존중의 시간으로 채우고 있는 아내의 정신노동을 인정하고 어려움을 이겨 나갈 수 있도록 힘이 되어 주어야 한다. 그 아이는 아내 소유가 아니라 남편 본인의 지분이 절반인 핏줄임에도 한 여인이 하루 24시간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온전히 헌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는 물론 가족들도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외면하면 안된다.
그리고 살림은 함께 하는 것이다. 만약 남편이 돈 버느라 살림에 소홀하면 아내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밖에 나갈 수 없는 아내가 돈 벌어 오는 남편에게 고마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표현으로 저녁 설거지는 남편이 하는 것이 맞다.
남편의 저녁 설거지는 많은 것을 의미한다. 가정을 함께 꾸려 간다는 증거, 아내의 어려움을 인정하고 응원의 마음 표현, 주방이라는 공간이 허드렛일 하는 주부의 공간이 아닌 우리 가정의 공유물이라는 인식 개선, 24시간 중 타인과 협업하는 소중한 시간 경험(남편이 설거지하면 아내는 보통 아이와 놀아주거나 잘 준 비를 한다) 등 저녁 설거지의 의미가 크다.
육아라는 낯선 상황, 아직은 인생 초짜지만 시간은 흘러 아이는 성장할 것이고 주부도 다시 사회로 나오게 될 것이다. 남자들의 권위적이고 공감을 모르는 무식한 태도로 인해서 인생에서 그리 길지 않지만 돌이킬수 없이 중요한 육아 기간을 날려버리고 자기 안식처를 잃게 될 것이다. 아내를 우울하게 유지시켜서 자기 아이가 행복하고 편안한 양육자 밑에 있게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아내의 자존감을 깎아내려 사회 복귀를 늦추는 결과를 가져와 자기 어깨만 계속 무거워지고 매일 같이 돈을 벌어 오지만 충전받을 수 없는 살벌한 가정을 꾸려나가게 될 것이다.
이 글은 매우 편파적이다. 엄마 입장, 여자 입장, 주부 입장만 말했다. 너무 그러고 싶었다. 지혜로운 엄마 혹은 아내가 되고 싶고 가족의 평안을 위해 말을 아끼고 쭈그러들어가는 어린 엄마들에게 이 글이 응원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육아 7년 차임에도 아직도 쭈그러 들어 있는 내 마음에 힘이 되어 주고 싶다.
혹시 아들 중에 누군가 이 글을 읽는 다면 밖에서 스트레스 처리 하나도 못하고 옴팡 받아와서는 내 아이를 키우기 위해 자기 인생에 브레이크를 밟은 고마운 사람, 종일 사람이라고는 처음 만나 들뜨고 위로받고 싶은 호르몬 덩어리 아내에게 모조리 쏘아붙이며 닥치고 짜져 있으라 하지 말아 주길 간절히 바란다. 또한 부디 밖에서 에너지 다 쓰지 말고 집에서 저녁 설거지하며 하루 일과 이야기 나눌 정도의 에너지는 남겨서 들어오 길 간절히 바란다. 만약 당신이 이렇게 에너지 조절력을 약간만 발휘한다면 그 가정은 그렇지 못한 가정보다 아내와 남편 그리고 아이의 에너지 충전소 나아가 에너지 발전소가 되리가 확신해 본다.
남편들이 이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내에 대한 이해보다는 오히려 자기 어려움을 몰라 준 것이 서운할지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그렇게 어려움을 꺼내놓고 서운함을 털어놓다 보면 적어도 부부간에 내 사람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알게 되는 것이니 언젠가 이해의 길을 걸을 수도 있게 되니 말이다. 그런데 만약 알 수 없이 발끈한다면 그것은 아내 문제가 아니라 자기 죄의식과의 만남이니 괜스레 아내에게 화풀이 말고 '미안하구먼'한 마디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이 시대를 사는 육아맘으로써 아들을 잘 키우고 싶다. 그리고 아들에게 이렇게 전하고 싶다.
아들아! 장가가기 전에 엄마가 할 말 있다. 네가 장가가는 건 네 뒤를 봐줄 엄마를 바꾸는 일이 아니란다. 너는 우리 가족의 소속 선수 타이틀을 벗고 다른 한 사람과 팀을 맺어 사회의 기초가 될 가정을 일구는 공동 리더가 되는 거란다. 경제 활동에서 성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먹고 치우고 자식을 키우는 데 있어 얹혀살 생각하지 말고 파트너 존중하며 의논하고 함께 결정하고 함께 책임지면서 소속 감 누리는 행복한 삶 살기 바란다. 안 그러면 스스로를 돈 버는 기계로 몰락시키는 거란다. 기계는 멈추면 버려진다는 걸 반드시 기억하고 스스로를 기계화되지 않게 인간다운 공감의 힘을 기르는데 소홀히 하지 말고 공감하고 위로받는 가정 일구기 바란다. 너의 미소가 가정의 미래다. 엄마는 여기 까지다. 반품 사절이다. 잘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