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육아 성찰 08화

내 민낯을 알고 있는 어린 지구인

너와 내가 분리되는 말 '그럼 엄마는?'

by 송다감

아이는 언제부터 사랑스럽지 않아 지는 걸까?

결혼 전부터 궁금한 질문이었지만 임신하고 출산을 준비하며 이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우리 모두는 태어나는 순간이 있었다. 길에서 마주친 저 아줌마, 아저씨, 약수터의 할머니, 할아버지도. 태어나는 순간은 반드시 있었다. 그래서 출산일이 다가오며 두려움에 쌓일 때면 이 생각을 주문처럼 했었다. '모든 사람과 동물은 출산을 통해 태어났다. 아무 일도 아니다. 나도 할 수 있다.'


아무튼 내 궁금증은 한 아이가 엄마의 두려움과 기대 속에 간절하게 태어나 귀하디 귀하게 엄마 손에 들리고 안기고 씻기고 바라보는 보는 모든 이의 얼굴에 미소를 자아 내게 만들었었다. 그렇게 귀하고 귀한 인간이 자라서 지금 내 옆에 화난 듯 내버려 놓은 듯 살고 있는 우리들이 되었다. 어떤 과정을 겪으며 여기까지 온 것일까? 언제부터 덜 귀해지다 언제부터는 이리도 안 귀해진 걸까? 육아 중간중간 연구하는 마음으로 지금 내 아이가 아직 귀한가를 확인했었다.


7년의 관찰 끝에 답을 찾았다. 아이가 귀하지 않아 지는 순간은 의견이 생겨 '말'하는 순간이었다.


아이가 처음 말문을 열어 '엄마'하고 말하면 너무나 귀엽고 기특하다. 누군가는 눈물이 났다고도 한다. 점차 할 줄 아는 단어가 늘어나며 비록 이 세상에서 엄마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지만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되다 보면 이제 다 키운 것 같고 벅찬 뿌듯함에 쌓이기도 한다.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그 아이의 입이 얄밉다 못해 오래도록 느껴보지 못한 분노를 일으키는 순간을 맞이 하기도 한다. 슬픈 일이다.


아이가 아직 말을 잘하지 못할 때 우리는 나의 감정을 100% 투여할 수 있다. 아이의 울음에 엄마는'배고프구나, 심심하구나, 보고 싶구나'등등 마음껏 이유를 붙이고 그 마음을 헤아려 자애로울 수 있다. 때때로 어린 아기를 안고 길을 나서면 지나는 어른들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아기에게 마음껏 웃음을 건네어도 자신을 판단하거나 왜 저러냐는 비난을 하지 않을 꺼란 걸 잘 알고 있어서 인 것 같다.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는 타인의 의도를 거역하는 의사표현을 전혀 하지 않고 어떤 의사 표현도 상대방이 자율적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어른들을 마음껏 자애롭고 기분 좋아도 되게 만든다.


그러다 아이가 '안돼, 싫어, 몰라, 잠깐만'등의 단어를 아는 순간부터 나의 자애로움은 사이코 패스 같은 이중성으로 돌변한다. 아이가 말하지 못할 때 이유식을 주다 얼굴로 거부하면 '아이고, 먹기 싫어요~ 그래도 먹어야 돼~'정도로 얼르던 것을 아이가 직접'싫어'라고 하면 이전의 굽신거림은 사라지고 눈이 돌아가며 '싫으면 먹지 마. 열심히 만들었는데 하나도 안 먹고 이게 뭐 하는 거야. 이제 안 줄 거야'라며 아이와 싸움을 시작한다.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엄마는 웃었다가 화내고 싸웠다가 사과하고 삐진 척했다가 굽신거리고 제정신이라 하기 어려운 감정 변화를 일으키며 아이와 성장해 간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엄마가 힘으로 전적으로 우월하니 엄마 감정 중심으로 맘껏 포옹하고 뽀뽀하며 아이와 귀한 인연을 이어 갈 수 있다.


이제 아이는 더 커서 '그럼, 엄마는! 엄마는 왜 하는데?'같은 말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절대 권력이 무너지는 순간이며 이때가 바로 아이의 귀함을 잊히는 순간이다.


내가 한 생명의 의도를 전 적으로 명명하고 진두지휘하며 나의 언행에 어떤 오류도 문제 삼지 않던 아이가 나와 완전히 떨어져 나가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이 말은 마치 '당신이 그간 나에게 가르쳤던 옳고 그름의 잣대를 이용해 당신의 언행에 잣대를 들이댈 수 있습니다'와 같이 해석되어 두려움 섞인 배신감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아이의 생각이 자신과 엄마를 분리시키기 시작하면 엄마는 아이가 나인 것 같은 착각을 알아차리게 되고 이제 내가 아닌 남이 되고 미워지기 시작한다고 결론지었다.


아이는 점점 성장하며 엄마를 넘어서서 점점 더 자신과 타인을 분리시키고 나의 생각, 내 입장을 강화하면서 엄마는 물론 주변 사람들로부터도 멀어져 가고 그런 반복이 쌓이고 쌓여 우리 주변에서 늘 만나는 어른들처럼 화가 난 듯, 내 놓인 듯, 그 무엇도 나와는 상관없는 듯한 표정과 피부의 두께를 갖게 되었겠다 추측하니 아이 모습에서 내 얼굴로 변해 온 날들, 수없이 많았을 세상과 나를 분리시키는 말들이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화난 듯, 내 놓인 듯 살고 있는 나로서 '인생 그렇지 뭐~'하며 한탄스럽기도 하고 내 아이도 이렇게 점점 화난 듯 한 어른 얼굴로 성장할 생각을 하니 안쓰럽기도 했다.




인생사를 아우르는 개인적 연구를 정리해야겠다 마음먹은 것은 내 아이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아이에게 옷을 벗으면 바르게 정리해 두라고 늘 말했는데 얼마 전 갑자기 아이가 말했다. '엄마는 나한테 옷 정리 잘하라고 하는데 엄마는 왜 옷을 바닥에 놔?' 화내거나 투정하는 게 아니었다. 진솔한 물음이었다. 그래서 더 당황스럽고 얼굴이 화끈거려 변명하려다 사과하려다 비난하려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옷을 옷걸이에 걸어 올렸다.


어버버 하던 갈등의 시간은 파이터가 될 것인가 어른다운 엄마가 될 것인가의 갈림길이었다. 엄마로서 아이에게 바른 행동을 안내하고 좋은 습관을 길러주고 싶었다. 비록 나는 정리를 잘 못하지만 살다 보니 그게 불편해서 아이에게는 정리 잘할 것을 반복적으로 훈계하며 가르침의 방향을 잡아갔다. 비록 나는 못하지만 아이에게는 바른 길을 인도하는 괜찮은 엄마로 인식하는 모순이 정곡을 찔렸다.


이제 세 살이 넘은 아이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새끼만은 아니다. 나를 가장 가까이서 보며 내 민낯을 모두 보고 듣고 알고 있는 어린 지구인이다. 나를 사랑하지만 나의 모순과 허점에서 물음과 답을 찾으며 세상 지도를 그려 갈 부담스러운 주체. 애가 못마땅해서 싸우면 싸웠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지는 꼴이 되는 그런 불리한 관계가 되었다. 이젠 대충 말로만 가르칠 수 없고 행동으로 모범 보여야 하는 불편한 관계가 된 것이다.


옛말에 아이를 낳아봐야 진짜 어른이 된다고 하는데 아마도 이런 불편한 관계가 맺어짐에 따라 생겨나는 태도의 변화가 어른 다움을 만드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어른 되기 성가시고 힘든데 우리 아이가 이제 어른 될 때라고 반짝이는 눈으로 덤덤히 전한다. '그럼, 엄마는?' 그럼 난 오늘도 파이터와 어른 다움 사이에서 외줄을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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