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육아 성찰 10화

그걸 왜 애한테 물어?

단절된 부부의 대화

by 송다감

남편이 일이 많아 쉬는 날이 없어지면 남편도 지치지만 가정주부인 나도 너무나 지친다. 하루 중 유일하게 만나는 성인과 지적인 대화는커녕 오늘 하루 일과를 나누기도 어려운 데다 살림도 온전히 내 차지이니 가정부 같은 느낌도 들고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마음의 지지와 응원이 간절해진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이런 간절한 마음으로 주말을 맞으면 그 날은 부부 싸움하는 날이다.


결혼 초 남편 친구가 결혼 10년 만에 이혼을 하게 되었다. 그때 남편은 그들이 어리석다고 말했고 나는 10년이나 산 게 얼마나 대단한지 우린 모른다고 말했다. 그런데 살아보니 정말 그렇다. 안 맞는 사람과 10년이나 살다니 정말 대단하다.


결혼 전에는 분명 내 편이었고 내 성향과 맞았고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었는데 결혼하고 살다 보니 내 옆에 내 편은 어디 가고 없다. 네이버 편만 들고(네이버 검색은 믿고 내 말은 안 믿음) 성향도 정 반대에 대화도 통하지 않는다. 대화라도 해보려고 일상을 물으면 시시콜콜한 직장 이야기를 장황하게 나열하면서 내 이야기 좀 할라 치면 딴짓하며 '난 잘 몰라'라며 내동댕이 쳐버리니 이놈을 어찌 대리고 살 란 말인가.


대화의 단절은 육아로부터 시작하는 것 같다.


남편은 아이가 태어나면서 가장으로써 부담감을 크게 안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밖에서 돈 버는 일에 에너지를 집중하다 보니 가정에서 자기 삶을 돌보고 충전하는 방법은 안중에 두지 않게 된다. 더욱이 낯선 아기가 집에서 울어대고 부인은 우울감에 지쳐가다 보니 남편은 어른답게 안아주기보다 그건 당신 역할이라며 아이와 아내를 외면하기 쉽다.


남편도 아직은 나와 같은 어린 애니 자연스러운 선택인 것 같기도 하다. 남편은 아이와 아내를 돌보지 않는 것에 대한 미안함을 돈 벌어오는 것으로 만회하려다 보니 또 다시 집에서 쓸 에너지 1도 남기지 않고 밖에서 다 쓰고 주말이면 집에서 장렬히 전사를 한다. 안 그래도 우울한 아내는 덕분에 죽을 맛이다.


어느덧 부부는 아이에 관한 것, 돈에 관한 것만 대화 하기 시작한다. 아이 키운 경험이 없다 보니 모든 게 생소하고 걱정스럽고 신기하기도 해서 아이를 바라보며 아이가 먹은 이야기, 싼 이야기, 움직인 이야기로 대화를 채운다.


남이 보면 마치 대화 중이라 착각될 수 있지만 사실 대화는 아니고 각자 독백들의 나열이다. 사실 다른 이야기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서운함으로 인해 싸움으로 번지기 십상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오랜만에 연결된 독백 쑈 마저 끝날 세라 아이에게만 집중한다. 사랑했었다 추측되는 두 남 녀는 이제 단 둘이 있을 때 어색하고 할 말이 없다. 각자 휴대폰이 있어 다행이다.


아이가 어린이 집에 다닐 만큼 크니 아이가 우리 집 중심이 되었다. 결정권을 아이에게 주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쉬는 주말에 남편에게 묻는다. '여보, 오늘 어떻게 보낼래요?'남편은 대답하지 않고 아이에게 묻는다. '오늘 뭐할래?'. 난 아이의 생각이 아닌 남편의 생각이 궁금한데 남편은 못 알아듣는 건지, 말하기 싫은 건지 알 수 없게 아이에게 질문을 넘긴다.


'저녁에 뭐 먹을까요?', '이거 살까요?'같은 일상 질문 역시 대부분 아이의 몫으로 돌려버린다. 대답을 기다리다 재촉하면 '애가 답 안 하잖아'라며 자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등을 돌린다. 여기가 어디고 내가 누구인지 뭘 어찌해야 할지 당혹스러움과 저주가 온몸을 감싼다.


'너는 멍충이냐! 그걸 왜 애한테 물어?!'


나를 보지 않고 내 말에 답하지 않고 서로 할 말도 없는 사람에게 어떤 지혜를 발휘해야 화목한 가정으로 가꿔갈 수 있을까? 남편도 가정을 파괴할 의사는 없는 것 같은데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을 지우는 걸까? 새 하얀 머릿속에서 지금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이것밖에 없다. '그걸 왜 애한테 묻나!'




그간 아이 중심으로 대화해 온 것은 사실이다. 요리를 하고 주문을 하고 살림을 늘리는데 거의 다 아이 것이 중심이었다. 결혼 초 가정을 일구면서 커져간 부부 각자의 부담감은 해소시키지 못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아이만 바라보고 살다 보니 아이를 빼고 부부만의 교감과 성장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아이 나이만큼은 함께 했는데 그만큼은 서로를 좀 더 알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늘 물거품이 된다. 우리는 서로를 너무 모른다. 어쩌면 결혼 전 보다도 서로를 모르는 것 같다.


그래도 이제 내 호르몬이 정상화되고 살림도 익숙해지니 이대로 우리 가족들이 서로에게 공기처럼 있는 듯 없는 듯 고마움도 모르고 붕붕 떠다니는 느낌이 싫다.


아이들은 가정 안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는데 엄마 아빠는 서로 바라보지 않고 아이들만 보고 앉아서 아이가 없으면 할 말도 없고 할 수 있는 말도 없는 어색한 관계가 되는 재현 드라마 같은 현실이 싫다. 그 결과는 뻔하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아이에게 우리가 필요하지 않은 순간이 우리 부부의 끝일 것이다. 끝이 뻔하다 보니 막아보고 싶다. 최선을 다해. 내 삶은 내 인생이니까.




우선 남편 대화법의 가장 큰 문제를 떠올렸다.

하나. 들을 때 바라보지 않고 딴짓하며 듣는다.

둘. 물음에 답을 잘하지 않는다.

셋. 불만 있을 때만 화내듯 말한다.

남편 행동이 가부장적인 옛날 어른의 태도라 생각했는데 문제를 정리하고 보니 세상 고난 모두 짊어지고 자기만 아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사춘기 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어른이랑 살고 싶단 말이다. 그래도 어쩌리 '그래. 기대감 버리고 아이라고 생각하고 다가가자'


결혼 선배들 말에 남편을 아들이다 생각하면 결혼생활이 쉬워진다고 했다. 그게 우스개 소리만은 아니구나 깨닫는 순간이다. 그래도 어른이랑 살고 싶은 맘은 쉽게 접어지지 않지만 먼저 살아본 인생 선배들 말씀 따라보자. 내 새끼를 키운다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결국 내 인생을 위해서 출가시키지 않을 자식이니 더 정성껏 키워보련다.




우선 남편 말버릇에 대해 내가 자주 하는 말을 떠올려보았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말이라고 다가 아니다'. 어찌 자기 자식을 키우고 자신을 내조하는 한 인격에게 그리도 말을 무심히 하는지 속상하고 놀랍기 그지 없지만 생각을 바꿔 그런 태도를 이끌어내는 나를 생각해 봤다.


남편이 나의 태도 때문이 아니라 어디라도 누구라도 지금처럼 편한데 가면 그정도인 성품을 보이는 사람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 고치고 살면 내가 죽겠으니 나를 한 번 바꿔보자는 생각이다.


나는 어떻게 한 남자를 부인을 쳐다보기도 불편하고 가벼운 물음에 쉽게 답 할 수 없고 불만 말고는 말할 수 없는 데다가 아이처럼 화내며 자신을 어필하게 만들었을까? 왜 사춘기 아이처럼 뿔난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나는 남편에게 말로 몇 냥을 빚졌을까? 나는 얼마나 다른 아와 어를 말했을까? 말 한마디가 다인 양 말 한마디에 매달려 물고 뜯고 맛 본건 아닌가?


생각해 볼수록 너랑 나랑 다를게 별로 없다. 이래서 우리가 만났구나. 끄덕여본다. 유유상종. 끼리끼리. 슬프지만 사실이다. 서로 잘난것도 모자란 것도 없으니 거침없이 결심해 본다.


냉소적인 남편 태도에 말이 막힌 어느 날 머릿속이 새하예져서 '그걸 왜 애한테 물어?'라고 말하지 말고 '당신은 뭐하고 싶은데?'라고 다시 말할 여유, '말할 때 안 쳐다보고 대답 안 하면 불쾌하고 서운합니다.'라고 담담히 말할 수 있는 자신감. 피곤하다는 대답에 '좀 쉬어요.'라고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건강함을 가지고 싶다. 육아 중심이 아닌 부부 중심의 가정 이루고 싶다.


말을 처음 배운 사람처럼 어색하고 서툴다. 닭살 긁어가며 노력하고 있다. 이 노력이 나를 바라보기 쉬운 사람, 대답해주고 싶은 사람, 화가 났다가도 풀려버리게 되는 사람으로 만들어 건강한 가정 유지하길 간절히 바란다. 만 냥 빚도 갚을 법한 말을 찾아 써야지. 말이 다가 아니라는 걸 잊지 말아야지. 욕구와 감정을 파악할 줄 아는 어른이 되어보자 의지가 꿈틀거린다.


남편은 나를 깨우쳐주러 내게 온 예수님이자 부처님이라는 말이 후광을 비추는 것 같다.


지금 내 노력은 남편 비위에게 맞추기 위해서 이거나 착한 사람되고 싶어서가 아니다. 나의 성장, 나의 미래를 위해서다. 내 노력의 끝은 이혼 없는 결혼 생활이 아니다. 진솔하고 당당한 어른되기. 묵직한 나의 성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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