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부모인 내가 티끌이나 약자를 대하는 태도를 그대로 배우고 있어요.
거울을 보는게 싫다는 건, 내가 나를 보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이 하는 꼴이 보기 싫다는 건, 내가 아이에게 하는 행동들이 꼴사납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격었을 일이 있다.
아이 앞에서 화내고 신경질 부리거나 배우자와 다투면 며칠 지나지 않아 아이들 노는 방에서 내 목소로 의심되는 까칠한 소리가 들려와 마음이 덜컹했던 경험. 아니면 아이가 내가 딱 싫어하는 배우자의 언어습관과 말투로 나에게 응수해서 화가 두 배로 치밀었던 기억 말이다.
흔히 '어디서 못된 것 만 배워가지고!'라며 아이를 나무라지만 아이는 거울이다. 어디서 배우긴.. 부모에게서 배운다. 아이는 못된 것 좋은 것 가리지 않고 모두 배워 따라 한다.
따라 한다는 건 바로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낯선 세상에 태어나 무엇이 위험한지, 무엇이 나를 살리는지 알지 못한 채로 부모, 형제, 사회를 보고 똑같이 행동해야 살아남는다는 생존 본능을 작동시키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아이의 본능적 태도를 보고 '못된 것 따라 한다'며 혼내는 것은 사실 잠재적 본능을 거스르라는 불가능한 요구와도 같다.
아이는 당연히 좋은 점도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 다만 '좋은 행동'은 편안한 감정이고 '나쁜 행동'은 불편하고 자극이 강해 배움의 동기가 강해져 더 쉽게 배울 수 있다는 점과 부모 입장에서도 아이의 좋은 행동은 자연스럽지만 나쁜 행동은 자극이 강해 눈에 더 잘 띌 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별 생각 없이 숨만 쉬고 살면 부정적인 것이 더 두드러져 보이기 때문에 '부모가 의도적으로 아이의 좋은 점을 더 크게 인식 하고 작은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말 것이다.
아이 태도를 볼 때 의도적으로 부정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한 시야를 유지하려고 노력 하다보면 아이에게 비춰진 나의 장점도 알아볼 수 있게 된다. 또한 아이를 바르게 양육하겠다는 부모로써의 의지력이 발동되어 아이에게 비춰진 나의 단점을 차분히 바라보고 타이르고 인정 하는 과정을 겪을 수도 있게 된다. 있는 그대로 바라 볼 수 있는 어른스러움. 이것은 육아 최고의 특혜이다. 육아 성찰을 경험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고 성찰하지 못하는 부모라면 제 얼굴에 티끌을 묻힌 채 거울 같은 존재인 아이에게 말 안 듣는다, 더럽다, 왜 그러냐 타박하는 모양새를 이어갈 것이고 당하는 아이도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할 수 없어 벽에 부딪힌 듯 막막하고 변화하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부모는 눈에 거슬리는 아이의 티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아이는 부모 얼굴에 붙은 티끌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티끌에 주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티끌을 대하는 태도, 약한 자에게 행사하는 권력자의 행동'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티끌을 나의 것으로 먼저 인식 하고 자기 먼저 티끌을 해결하는 태도를 갖아야한다. 내 아이가 행복하고 가치롭고 성공한 인간으로 성장하길 바래서만이 아니다. 부모에게 더욱 직접적인 이유는 바로 지금 나의 무자비한 언행은 아이가 부모보다 힘과 돈의 권력이 커지는 미래 어느날 권력을 잃은 부모, 바로 나에게 되 값아줄, 내가 당하게 될 폭력이기 때문이다.
만약 아이에게 폭력적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면 아이를 가르치거나 혼내는 상황에서 잠깐 마음을 내어 그 상황 그대로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 입장이 바뀐 상황에서 아이에게 들어도 울컥하지 않을지 비춰보면 된다.
예를 들면 이런것이다. '흘리지 말고 먹으라 그랬지!' '해도 해도 끝이 없내. 지겨워 죽겠어' '내가 누구때문에 이렇게 고생하고 돈 버는데' '또 까먹었어? 몇번을 말해 줬잖아. 정신 안차려!' 내가 하는 말인데 내가 듣자하니 울컥한다면 지금 나는 부모라는 권력을 가차없이 휘두르는 중이고 아이는 권력이 없는 자 혹은 가족간에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배우고 있는 중이다.
젊음을 바쳐 아이를 키워놓고 미래에 화풀이 대상, 원방의 대상이 된다는 시나리오를 떠올리면 지금 아이에게 하고 있는 폄훼, 한계 지음, 낙인, 강압, 죄의식 심기 등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써먹는 과오를 저지르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아이의 티끌을 통해 나를 바라보고 개선하며 더 나은 내가 되어간다. 내 아이도 더 나아진 나와 티끌을 대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보고 배우며 인성을 만들어 간다. 부모 자식 간에 시간이 흘러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위로가 되어 준다.
아직은 가족문화의 부정적인 면에 있어 아이들에게 십자가를 지우고 '너는 나를 닮은 것이 아니다. 너는 이세상, 우리와 다르고 이상하다.' 내치려는 배려깊지 못한 마음이 남아있다. 그렇더라도 지금의 인식과 노력들이 지속 된다면 결국은 아이들에게 안정감과 자신감이라는 돈 보다 값진 최고의 유산이 될 것이다.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가문을 내가 만들수 있다는 기회를 쥐고 있다는 것이 뿌듯하고 행복하다.
아이 티끌을 나의 것으로 인정하고 겸허히 바꿔 갈 힘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