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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다감 Dec 05. 2022

성적 인권유린 회복을 돕고 싶다면

조두순 출소를 돌아보며

2020년 12월 12일 오랜만에 뉴스를 봤다. TV를 잘 켜지 않기도 하고 뻔한 뉴스가 흥미 없어 잘 보지 않지만 코로나 상황이 궁금해 TV를 켰다. '조두순 출소'가 이슈가 되고 있었다. 미성년자 성폭행 범이라는 것과 이름은 들어봤는데 사건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성추행에 관한 글을 써온지 한 달이 다 되어가던 터라 사건에 대한 관심이 갔다.


'조두순 사건 전말'이라 구글링을 하자 연관 검색에서부터 관련 기사가 가득했고 하나의 블로그를 선택해 읽었다. 처음 접하는 사건이었다. 13년 전에도 여전히 TV를 잘 보지 않았고 사건 타이틀에서 오는 두려움과 언짢음과 괴로움이 겹쳐서 기사를 눈여겨보지 않았던 기억이 났다. 이번엔 용기 내어 사건 전말을 확인해 보았다. 읽어 내리는데 혀가 굳어져 숨이 목구멍에 차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글을 쓰지 못하고 한 동안 혼란스러워하는데 아이들 아침을 챙겨주어야 해서 움직여 보지만 몸과 정신이 완전 따로 놀아 혼란스러움이 극에 달했다. 어린 나이였던 과거의 나 그리고 현재 나이 어린 자녀의 모습이 뒤엉켜 감정이 과몰입된 것 같았다. 


이 사건은 성폭력 사건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주정뱅이의 인권 유린 사건이었다. 그가 전과범이건 평범한 가장이었건 상관없이 주정뱅이의 위험성을 알리는 사건이고 피해자가 받은 피해는 성적인 것을 완전히 넘어서서 인권이 유린된 사건이다. 어찌 이런 어마어마한 사건을 인권유린 사건이 아닌 성폭력 사건이라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뉴스에서 그의 출소에 따라 지역 방범, 개인 감시 시스템 강화 등 많은 예산을 투입한 상황을 보며 여러 가지로 안타까움을 느꼈다. 어떤 사건도 마찬가지지만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회복과 가해자로써 피해자의 회복을 돕는 책임 수행일 터인데 한 명의 노인을 감시하는데 감시 카메라에 수많은 병력까지 이렇게까지 예산을 쓰는 것이 피해자에게 어떤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주정뱅이들과 인권의식이 천박한 특히 여성 인권의식이 천박한 이들을 통제하고 지도하는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경각심을 일으켜 유사 사건이 발생하지 않길 기도할 뿐이다.


피해 학생은 최대한 그 사건과 멀어져서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함에도 아무 방어벽 없이 그 이름과 사건을 수 없이 많은 매스컴에서 접해야 하는 고난의 시간을 겪고 있을 수 있어 응원해주고 싶었다. 이미 긴 시간이 지나 나름의 치유 방법을 찾았을 수 있지만 그래도 나름으로 살아주어 고맙다고 안아주고 싶었다. 


내 어린날 아무에게도 성추행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이런저런 괴로운 상상을 이어가던 날에는 내가 더 큰 고통을 겪고 죽을뻔한 경험을 했어야 누군가 내 힘듦을 알고 함께 감당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한 적이 있었다. 내 어려움을 아무에게도 말 못 하고 외롭게 감당해야 했던 이유는 내가 겪은 정도의 일은 있을 수 있는 뻔한 일이라 별것 아니라고 밀쳐내 질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사건이 얼마나 충격적이건 아니건 간에 그 일이 내 잘못이 아니라고 나로서 많이 힘들 수 있다고 누군가에게 인정과 이해를 받고 싶었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피해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험이 더해질까 두려워 차라리 혼자 감당하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접하며 알게 됐다. 내가 위로받기 위해 더 큰 상처와 괴로움이 있을 필요는 없다. 절대 그래서는 안된다. 상처가 큰 것은 큰 괴로움을 감당해야 할 뿐이다. 어린 날 내 피해가 더 크지 않아서 혼자 앓고 있다고 생각하던 어리석음을 되새기며 생각을 정리했다.




우리 사회는 인권유린에 있어서 피해가 커야 피해를 인정하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힘들어해야 혹은 힘들어할수록 피해를 인정하는 태도도 버려야 한다. 인권유린을 경험해 힘들었다면 그 이유만으로 피해를 인정받아야 한다. 그 일에서 지나와서 웃고 행복해도 당시의 피해를 인정받고 응원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상처가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대로 그날의 괴로움을 뚜벅뚜벅 걸아나와 행복한 삶을 당당히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건이 크면 큰대로 감당해야 할 괴로움이 크고 사건이 작으면 작은대로 피해를 인정받지 못하고 불필요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자신을 업신여기고 스스로 말려 죽이는 어려움에 쳐하게 된다. 때문에 인권유린 사실이 아닌 인권유린의 경악성에 집중하는 것은 그 어떤 피해자의 회복에도 도움 주지 못한다.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구체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은 피해자의 마음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피해 사실이 있음을 호소할 때는 타인에게 발설함으로써 치유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피해자의 호소가 있을 때 그 정도를 파악하려 하기보다 피해로 인해 힘들다는 것을 인정해 주어야 피해자의 회복에 도움이 된다. 


만약 피해자를 돕고 싶다면 듣는이의 태도가 중요하다. 피해자는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나서 힘든게 아니라 피해받았다는 사실이 힘기 때문에 듣는이가 전달 받은 그대로 인정하는 그 경계에 머물러 줄 때 위로받을 수 있다. 사건의 경악성을 듣는 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없는지는 피해자의 회복에 전혀 도움 되지 않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감당할만한 일인지 아닌지 듣는이가 판단하고자 상세히 묻고 들어온다면 피해자에게 2차 피해만 발생할 것이다. 피해자가 말하는 그만큼에서 인정하고 자기 궁금증을 해소하려 들지 않을 때 회복의 발판이 마련된다.




크고 작은 성적 인권 유린 경험을 가지고 억울함과 수치심을 깊이 숨기고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응원을 전하고 싶다.


두렵고 불쾌헀던 경험에 온전히 지배당하지 않고 오늘을 경험하고 있음을 축하합니다. 믿을 수 없는 고난을 경험했던 것처럼 믿을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 게 삶이니 주어진 삶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과 만족과 행복을 마음껏 누리고 세상에 좋은 가치를 맘껏 뿌리다 늙어 죽읍시다. 남은 기회들을 행복하게 누리는데 온 힘을 다 합시다. 그리고 차츰 결이 다른 어려움 속에 사는 이들도 돌보면서 크나 큰 세상 속의 나를 느끼고 경험하며 가득한 삶을 삽시다. 그래도 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다른 시련에 나를 도전시키며 더 넓게 성장하는 우리가 됩시다. 정말 그래도 됩니다. 정말 그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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