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내 모습에 자신감이 사라질 때
오늘 저는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볼까 합니다.
외모에 있어서도 격변의 시기가 많았던 저로서는 이와 관련하여 꽤 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국민학교 때까지 긴 생머리였던 저는 어느 날 갑자기 중학생이 되더니 곱슬머리가 되고, 살이 찌기 시작했습니다. 여드름이 군데군데 올라오고 덧니도 여러 개 생기고 있던 터라 중학교 반 친구들은 국민학교 6학년 때의 제 사진을 보며 도대체 이 아이는 누구냐고 놀라워했습니다. 사실 제가 봐도 다른 아이처럼 보였으니까요. 아마 그때부터 전에는 잘 느끼지 못했던 '외모'에 대한 심각한 고민과 번뇌에 빠져 깊게 깊게 가라앉았던 것 같습니다.
외적으로는 발랄하고 호탕하게 굴었지만, 내적으로는 심각하게 매일 이것저것 고민으로 머리가 아팠던 시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민과 고민은 결국 과연 딱 하나만 외모에서 고칠 수 있다면 무엇이 가장 드라마틱한 효과로 이어질까 라는 질문으로 이어졌고 램프의 요정 지니가 물어보면 바로 답해줘야 하는데... 라며 어제는 머릿결, 오늘은 덧니, 그러다가 오후 하굣길에는 살이 왜 안 빠질까..라는 뒤죽박죽의 마음으로 나름 심각하게 자문하고 친구와 얘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설상가상으로 특별반 수업으로 시작한 발레 무용으로 인해서 다리에 알까지 생겨서 교복을 입은 제 모습은 점점 이상하게 느껴지고 자꾸 자신감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또 그와는 별도로 저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꾀나 리더십이 있고, 밝으며 강단 있는 사람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은 정말 함정입니다.
사실 저는 점점 목소리도 작아지고 위축되고 하더니 중3 때가 되어서는 정말 가라앉다 못해 축 늘어진 솜과 같은 마음이 되어 아무것에도 의지가 안 생기는 내면의 또 다른 '내'가 생기고 있었거든요.
(*이렇게 다른 두 개의 자아가 공존한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꺼내도록 할게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애처롭게 혹은 치열하게 그 상황을 이해하고 벗어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외모의 변화가 있었지만 그 자체만으로 질 수는 없다고 나름 이겨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친구들 덕분이었겠죠.
그러나 고등학교 반 배정에서 친구들과는 전혀 다른 학교로 가게 되면서 저는 크게 좌절하게 되었고, 뭔가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위안의 대상이 사라짐과 동시에 제 두 개의 자아에서 결국, 말수가 없고, 용기가 없는 조용한 아이 쪽이 서서히 저를 잠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살은 알 수 없이 점점 더 쪘고... 제 인생에서 가장 몸집이 커진 때가 아마도 그때 같습니다. 지금 제 몸무게보다 15kg 더 나갔으니까요.
그 상태는 대입 실패와 함께 의지 없이 차선책으로 간 대학교 1학년 때까지 이어졌고, 정서적으로 가장 불안정한 19세와 20세 사이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같은 과의 어떤 친구가 제 단짝 동기에게 따로 저와 다니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옆에서 들을 정도로 저는 무기력하고 존재감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한 그 친구는 저의 어둡고 서늘하고 힘없는 아우라가 제 단짝을 망칠 것으로 생각한 것일까 짐작할 뿐입니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와 다르게 오히려 제 단짝 동기는 저에게 많이 의지하고 용기를 얻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단순히 같은 과 동기(저보다는 1살 많았던) 오빠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아주 간단하고도 명백한 이유로 1학년 첫 방학에 살을 빼기 시작합니다. 식단을 조절해서 하루에 두 끼만 단백질 위주로 식사하는 방식을 택했도, 저녁 6시 이후에는 금식을 하고 매일 1시간씩 혼자 방에서 음악을 틀고 춤을 추거나 운동을 했습니다. (그런 제 모습에 놀란 남동생의 표정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그렇게 서서히 살을 빼서 7~8kg를 한 달 만에 빼고 방학이 끝나 학교에 갔더니... 그 동기 오빠는 군대에 갔더군요. 그걸 알았을 때의 허탈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두 단 높이의 계단에서 위의 계단이 쿵... 하고 무너져 평행으로 높이 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고 하면 이해될까요. 그 무너짐의 무게와 충격이 머리와 가슴에 온전히 퍼져나갔던 순간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금방 그 일도 잊을 수 있었던 것은 주변 사람들의 달라진 시선 때문이었습니다. 존재감이 없던 저는 살을 뺀 독한 아이로서 그 존재가 갑자기 드러났고, 저에게 말을 걸지 않던 사람들이 매일 말을 걸더군요. 저는 결국 이대로 더 살을 빼자는 마음을 먹었고, 요요 현상을 거듭하다가 제가 생각하는 적정 수준의 몸무게를 계속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살을 빼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의 달라진 시선을 뭐라고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사람의 외적인 부분은 굉장히 본인에게나 상대방에게 스스로를 전할 수 있는 많은 메시지 중의 하나로서 의미가 크다고 생각하며, 외적으로 전달하려는 이미지를 통해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인상이 달라진다는 것을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확실하게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저는 그때의 제가 조금 안쓰럽습니다.
충분히 저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여러 가지로 많았음에도... 저는 제 자신을 사랑하며 아껴야 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충분히 예의 바르고 착했지만 제 자신에게는 무례했던 저입니다.
늘 남들과 비교했고, 몸무게와 곱슬머리, 무다리 이 세 가지로만 제 가치를 단순히 정의했습니다. 혹은 자만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세가지만 달랐다면 나는 지금처럼 살지 않았겠다고요.
제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고 앞으로 달라질 수 있다고 믿었다면, 그 많은 시간에 저는 더 다른 곳을 살펴보고 시도해보고, 냉소적인 태도로 제 인생을 관망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조금 더 많이 웃고 누군가를 덜 원망했을 것 같습니다. 더 치열하게 무언가를 시도하고 알아가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때의 저는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여전히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고 충분히 멋진 사람이었는데 "내가 그렇지 뭐.", "내 모습이 이렇잖아."라는 태도가 기본이 되어 다른 사람의 애정 어린 관심과 충고도 다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를 사랑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사랑하고는 있지만, 어느 날은 너무 못생겨 보이고 또 어떤 날은 너무 비겁해 보이고, 그렇습니다. 어깨가 여전히 굽어 있습니다.
지금이라고 그때와 같은 마음이 없을까요.
그렇지만 이겨내려고 늘 애쓰고 있습니다. 당당한 태도를 위해 말끝을 흐리지 않으려고 하고, 어깨를 다시 피고 허리에 힘을 줍니다. 제가 정한 규칙에서 단정한 모습을 위해 1년에 두세 번은 정기적으로 미용실에서 가꾸고, 여러 옷을 시도한 끝에 제일 잘 어울리는 스타일링으로 매일매일 출근합니다. 간혹 안 어울리는 옷을 입고 나갈 때도 있지만 그런 날은 좋은 경험 중의 하나라도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지금 내 모습도 충분히 멋지고 아름답다고 여기려고 합니다.
'아름답다'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만약 누군가가 아닌 것 같다고 해도 그건 그 사람의 생각이라고 여깁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난 달라. 난 괜찮아."의 마인드로 흔들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람의 시간, 한 사람의 인생을 주로 강물과 비유하는데요.
강물은 내 모습이기도 하고, 내 마음속 또 다른 나를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늘 그렇게 흘러가듯
내 모습은 변화가 있고 흘러가고 여러 모습을 비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21세기 미의 기준에 아랑곳없이 당당한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어떤 가치 판단에도 굴복하지 않고 미소를 짓고 대화를 나누고, 자신의 생각을 여유 있게 나눌 수 있는 사람들에게서 좋은 에너지를 받습니다.
지금 누군가의 비교로 혹은 자신만의 잣대로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며 어두운 곳으로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이 있다면 말해 주고 싶습니다. 지금의 모습이 앞으로의 내 모습으로 평생 정해진 것이 아니며, 변할 수 있고. 그 변화는 내가 정하는 것이라고요. 내가 원하는 대로 그대로 흐를 수 있다고... 흘러가게 자연스럽게 두자고 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햇빛에 반짝반짝 빛나고,
달빛에 그 물결 아름답게 은은히... 출렁이고 있습니다.
그 안에, 당신만의 세계가 있습니다.
다음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행복한 오늘 보내세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