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안 그래도 차가운 부둣가의 바람이 저녁이 되니 더욱더 매섭게 밀려오는 거 같다. 성냥팔이 소년은 오늘도 154번지 철물점 옆 작은 가로등 아래에 할머니의 남색 보자기를 펼치고 성냥갑 3개를 펼쳤다. 바닷바람의 소금기 때문인지 성냥에 살얼음이 언 듯 희뿌연 것들이 은은한 불빛에 반짝거리기까지 한다.
'오늘은 몇 개나 팔릴까?'
소년은 저 멀리 서서히 높아지는 파도를 보며 일 년 전에 돌아가신 엄마의 얼굴을 떠올린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이렇게 추운 날 하늘로 가시기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하니 소년의 또다시 속상한 마음이 가득 차오른다.
점점 눈발이 거세진다. 소년은 귀를 겨우 덮는 털모자를 조금 더 깊게 눌러쓰고, 목도리를 다시 동여맨다. 소년의 얼굴이 가로등의 그늘처럼 어둡다. 옆집 철물점은 평소보다 일찍 문을 닫았다. 주인집 아저씨는 사실 6시도 되기 전에 셔터 문을 내리고 황급히 집으로 뛰어갔다. 산통을 겪고 있는 아내의 출산 소식에 무슨 정신인지 열쇠마저 잠그지 못하고 떠났다. 한해의 마지막 날 어김없이 아이가 태어나고 있었다.
이곳 부둣가 한쪽은 몇몇 횟집이 문을 열었다. 삼삼오오 모여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새해를 맞이하려는 사람들이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휘황찬란한 전구들 사이로 호탕하게 웃으며 음식을 먹고 있는 어른들의 얼굴을 성냥팔이 소년이 맞은편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둥근 성냥갑. 이제 이런 성냥은 사람들이 잘 쓰지 않는다는 것을 소년도 알고 있다. 이유도 없이 성냥갑 두 상자를 사두고 아빠는 서울로 떠났다.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았다. 시름시름 몇 년을 앓고 있는 엄마를 잘 부탁한다는 그 어떤 말도 없었다. 소년은 엄마가 하늘로 떠나신 후, 함께 성냥도 모조리 불태우려 했으나 물건은 죄가 없다는 할머니의 말에 그대로 들고 거리로 나왔다. 그게 벌써 세 달 전이다. 한 박스는 다 팔았고, 이제 한 박스 남은 것이다.
할머니는 소년이 성냥을 팔러 다니는 것이 가슴 아팠다. 성냥을 핑계로 손자를 거리로 내몰고 있다는 소문마저 돌아 이웃들은 이제 할머니에게 인사도 잘하지 않는다. 소년은 마지막 한 박스만 다 팔면 꼭 공부에 전념하겠다고 할머니와 약속했다. 사실 돈이 되는 물건은 전혀 아니다. 그냥 소년은 학교가 끝난 후 이곳에 앉아 성냥갑을 보자기에 몇 개 두고, 바로 옆 엄마의 유골을 뿌린 바다의 파도 소리를 듣는 것이 마음 편했을 뿐이다. 운 좋게도 하루에 3~4개씩 팔릴 때는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막걸리 한 병이라도 사갈 수 있어서... 그게 정말 좋았을 뿐이다.
9시가 다 되어간다. 횟집은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사실 횟집 안에서도 맞은편에 우두커니 박스 한쪽을 찢어 바닥에 깔고 앉은 소년의 모습에 잠시 웅성거리기는 했었다. '사내자식이 몸으로 일을 해야지. 성냥 쪼가리 판다고 저게 돈이 되겠나.' 라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었고, '아니, 저녁마다 저기 앉아서 저러는데, 괜스레 기분도 나쁘고 언제까지 저럴 건지. 장사도 안돼. 장사도.'라고 눈을 흘기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서로들의 이야기로 화제가 넘어가고, TV 뉴스에 귀를 기울이고 만다.
소년은 이제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 고스란히 그대로 맞은 눈은 이제 몸에 붙어 보석처럼 박혀 있다.
'이제 그만 들어갈까? 우리 할머니 식당일 다 끝나셨나...'
정말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이쪽 길은 달빛도 얼어서 빛을 잃은 것만 같다. 소년은 잘 펴지지도 않는 손가락으로 아무래도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에 막 보자기를 접었다. 그때였다. 그림자 하나가 살며시 다가왔다. 바로 소년의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노란 봉지에 가래떡을 두 개 구워 왔다. 소년은 노곤함에 지친 할머니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나는 것을 겨우 참아 삼켰다.
"벌써 끝났어요? 여기까지 왜 왔어. 눈도 미끄러운데 힘들게." 반가우면서도 이내 목소리는 심술궂게 나온다.
"우리 손주 오늘은 마중 나왔지. 가래떡 먹으라고 나올 때 따뜻하게 구워왔어."
"할머니, 이거 집에 가서 우리 먹자. 집에 가자 이제."
성냥갑을 보자기에 담는 소년의 손을 할머니가 힘주어 잡는다.
딱 오늘까지만 성냥을 파는 걸로 하자고 할머니가 이야기를 꺼낸다. 안 그래도 아까부터 울음을 참고 있던 소년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한 방울 뚝뚝 떨어진다. 이제 눈은 오지 않는데, 소년의 마음에 눈이 내린다.
할머니는 이제 성냥이 너무 싫다고 말한다.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도 이제 라이터가 더 잘 된다며 성냥은 그만 보고 싶다고 얘기한다. 사실은 방안에 남은 성냥갑 모두 집 근처 사거리 가게에 헐값으로 다 팔고 오는 길이라고... 진작에 태워버리거나 할 걸... '미안하다. 미안하다' 소리만 소년에게 반복하고 있다.
소년은 컴컴한 바다만 조용히 쳐다보고 있다. 언제 그랬냐는 듯 파도가 사라진 바다는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다. 자신을 안고 있는 할머니의 외투에서 흐릿한 엄마 냄새가 나는 것 같다.
"할머니, 이제는 정말 오지 말자."
소년은 천천히 할머니의 몸을 일으켜 드린다. 보자기에서 성냥갑을 치우고, 할머니가 구워오신 가래떡을 단단히 싸서 한 손에 든다. 성냥갑들은 길 한쪽에 조심히 치웠다. 누구든 필요하면 가져가리라.
깊은 밤, 아직 한 해가 끝나지 않았고 집집마다 새해를 알리는 종소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작은 불빛과 소리에 의지하며 성냥팔이 소년과 할머니는 손을 잡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