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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왁킴 Oct 25. 2021

시가 좋아지는 가을

시어머니의 코스모스




움직이지 않는 풍경이,

풍경만큼 더딘 것만 같은 시간이

답답하고 건조했던 오늘-




시어머니로부터 카톡이  하나 왔다.

보내드린 양배추즙이 효과가 별로 없었는지

속이 내내 불편해

결국 내시경 예약을 잡았단 말씀에

우선 마음이 좋지 않았다.

염려를 담아 검사 후에 꼭 결과를 알려달란 이야기로 대화를 마무리하려던 때에,

어머니께서 사진을 하나 보내셨다.



종종 보내시는 축복과 사랑의 메시지일까 싶었는데,

가만 들여다보니

'시'였다.

어머니의 이름을 눈썹쯤에 달고 있는

하나의 '작품'이었다.





복지관에서 '시 창작반' 수업을 듣기 시작하셨다고,

처음 숙제를 받았는데 전문가가 보기엔 어떠냐며

전문가가 되기엔 한참 부족한 며느리를 부끄럽게 하셨다.



주제가 '가을'이었냐는 나의 아둔한 질문에,

'코스모스'가 주제여서 빗대어 표현한 것이라는 분명한 답변 속에서,

코스모스는

꼬까옷 입은 아기가 되었다가,

꽃단장한 소녀가 되었다가,

결혼을 앞둔 설레는 노처녀도 되었다.



어머니가 불어넣어 준 숨결이

어느샌가 청량한 바람을 타고 내게로 와서,

나도 그만 가슴 한 폭에 코스모스를 안고

가을의 한 복판을 거니는 기분이 되었다.



어쩌면 무심히 지나쳤을지 모를 가을인데,

단숨에 커지고 풍요로워진 오늘.

그리고

새삼 반가워진 하늘과,

단풍과,

바람

-



이런

작은 이벤트로

나는 그만

'시'라는 노래가 다시금 좋아져서,

이걸 어찌 부르면 좋을지 모르겠다.



아직은 그저

쭈뼛쭈뼛-

뜸 들이고, 망설여도 되겠지.



두고두고

눈에 담으며 곱씹다 보면,

새로운 악상 하나가

불현듯,

도도한 키보드 위에 내려앉는 날이 오겠지.



사진이 못나게 나와 속이 상하다는 어머니의 투정이 한없이 귀여웠던

10월의 어느 오후를 떠올리며



이곳에 남기는

쑥스러운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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