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왁킴 Nov 27. 2021

또다시 반려인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미처 보내지 못한 아이에 대해



고등학교 시절, 빨간딱지가 붙은 장롱 앞에서도 삼 남매는 웃으며 생일파티를 했습니다. 언니가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초코파이에 초를 꽂고, 빈 페트병을 두드려 박자를 맞추며 불렀던 생일 축하 노래는, 아직도 이따금 마른 입가에 미소를 적셔주곤 합니다. 박수를 치고 깔깔대는 우리의 웃음 곁엔 하얀색 몰티즈 한 마리가 함께하고 있었죠. 모두의 얼굴이 또렷한데 혼자서만 한겨울의 성에처럼 잔뜩 뿌얘 그 아이에 대한 기억이 가슴 한쪽을 자꾸만 시리게 합니다.


늦은 밤, 강아지를 키우자며 아이가 울었다는 카톡에 언니가 보낸 짧은 대답이, 여전히 우리 모두에겐 그 아이가 참 아프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했습니다.

 


아이 셋 낳더니, 감성을 잃었냐는 우스갯소리에도 강아지에 대한 생각은 그저 아픔으로 끝이 나서 힘들단 언니의 말은 제 맘과도 꼭 같습니다.


빚쟁이가 들이닥칠까 새벽 다섯 시에 집을 나섰던 교복을 입은 동생의 모습이 울컥, 눈물과 함께 스치면, 그 끝엔 혼자서 그 소란 속에 주인을 기다렸을 아이-


훨씬 작고 빳빳한 새 교복 안주머니에서 2개월 된 젖먹이로 우리 앞에 등장했던 뽀얗고 보드라운 그 아이의 모습이 함께 떠오르네요.



저희 엄마는 일주일에 한 번, 날이 선 주변의 눈을 피해 냉랭해진 집에 들러 그 아이의 밥만 챙겨주다가, 때 되면 밥이라도 챙겨줄 이웃 양반에게 보내는 게 낫겠다 해서 힘겹게 보내주고 돌아섰다는데, 알고 보니 술만 마시면 행패 부리기 일쑤인 망나니 손에 애를 맡긴 거였다며 힘줄 솟은 주먹으로 마른 가슴을 두드립니다.



끝을 봐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떤 방식으로든 끝내 한 줌이 되었겠지만, 그 고운 가루를 우리 손으로 담아 기도 한 번에 내내 편안할 그곳으로 보내줄 수 있었다면 그 아이도, 우리도 얼마나 기꺼웠을까. 그 생각에 20년이 지나도록 발목을 잡힌 내게도 한 아이를 다시 들인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2개월 된 복슬한 아이들은 투명한 케이지 안에서 그저 오는 사람이라면 꼬리를 치고 귀여움을 떨었습니다. 그 앞에서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는 어린 꼬마를 비롯한 가족들은 감탄을 연발하며 아이들을 향해 손을 뻗죠. 분양가가 얼마냐는 질문에,


-150입니다. 연예인들도 많이들 키우는 똑똑한 종이예요.

-옆에 있는 요 아이는요?

-걘 250이에요.

-얘는 혈통이 남다른가 보죠?

-아뇨, 얘네는 100퍼센트 외모로 가격이 책정돼요. 그 녀석은 믹스견인데, 머리에 흰 무늬가 독특하고 예뻐서 250이에요.


그래서 제 눈도 그만 숫자를 따라 까만 털이 곧 실버가 된다는 100만 원이 훌쩍 넘는 한 꼽슬이 아이에게 꽂혀버렸는데, 한 구석에 평범한 푸들 한 마리가, 꽤 커진 몸집을 구겨 넣고 있느라, 이마에 털이 눌려버린...


120에서부터 몇 번이나 X에, X를 거듭하며 몸값이 떨어진 아이는 어느 누구보다도 열심히 꼬리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자기랑 생일이 비슷하다며, 4개월이라 너무 작지 않고 좋은 것 같다며 안아봐도 되냐는 아들의 물음에, 직원은 화색을 띄고 강아지를 꺼내 주었습니다.


제 아이의 품에 포옥 안겨 연신 볼을 핥아대던 그 녀석은, 이틀 밤을 울부짖으며,


"또또(?)는 인기 없는 나이라 나보다 더 좋은 주인은 만나기 힘들단 말이에요!"


라고 일리 있는 말을 하는 아들의 입심 덕에 무사히  우리 집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자기가 언젠가 강아지를 키우게 되면, 갈색 푸들에겐 '도토(리)', 자기만 졸졸 따라다니면 '조조', 귀여우면 '또또', 털이 많으면 '복슬이', 꼬리가 길면 '요요'라는 이름을 붙이겠다고 스케치북에 간신히 글자를 끄적이던 제 아들은 결국 그 계획을 실행할 수 있게 되었네요.



이제 남편과 제 몫만 남은 것 같습니다. 남편은 새벽 다섯 시 반에 또또의 아침밥을 챙겨주기 위해 토요일에도 알람을 끄지 않았습니다. 저는 나흘 째, 아침 여덟 시 반에 모든 문을 열고 스팀청소기를 밀고 있습니다. 냄새가 섞이면 배변훈련이 힘들어진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혹여나 뭘 잘못 주워 먹을까 싶기도 하여... '또또'가 젖은 코를 밀고 다니고, 소변 자국을 남겼을 바닥을 최선을 다해 닦고 있습니다.





한창 좋아했던 '도깨비'라는 드라마에서 나온 에피소드 중 '반려견'이 등장했던 회차가 떠오르네요.




주인을 두고 먼저 간 게 마음에 걸렸는지, 진작부터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해피'의 이야기를 보며 꽤나 눈이 시렸던 기억이 나네요. 저는 '김신'같은 멋진 도깨비는 세상에 없더라도, 내가 그의 아내가 될 '도깨비 신부'는 절대 아니어도 괜찮으니, 이 에피소드만큼은 꼭 진짜였으면 좋겠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너를 사랑하고, 기억하고 있노라고.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사정이 있었지만, 가장 아팠을 게 너라서 미안함만 한가득이라고. 결코 네가 잘못해서 우리와 헤어진 게 아니라고. 항상 보고 싶었고, 여전히 너무나 사랑한다고.'




하얗고 포근하고 다정했던, 우리 까불이 '마리롱'에게, 이 얘길 해줄 기회가 꼭 한 번만 다시 왔으면 좋겠습니다. 언제가 됐든 말이죠.










작가의 이전글 창원한달살이_'창원의집'과 '창원시과학체험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