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두세 권의 책을 동시에 읽고 있다. 시간이 여유는 많지 않아서 책의 우선순위를 두고 읽고 있는데
그중 <사람을 안다는 것>은 이번 주말부터 천천히 읽는 중이다. 어찌 보면 나의 우선순위에선 밀려난 책이라 5-10분 정도의 잠깐의 짬을 내어 읽고 있다.
제목이 너무 매력적이라, 그리고 브랜딩 관련책을 읽어보려고 이것저것 주워 담다가 발견한 책이라 구입할 때까지만 해도 제목의 사람이 내게는 고객으로 다가와서 구매를 했었다. 한 마디로 돈을 더 버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사 왔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게으른 삶 속에서 책장에 꽂힌 채로 한 두 달을 보내다가 지난주부터 아주 느리게 읽기 시작했다.
생각과는 다른 목적으로 쓰인 글이었다. 하지만 내게 꼭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책꽂이에 모셔둘 수 없었다. 아직 도입부만을 읽고 있는데 책을 구입할 당시만 해도 <사람을 안다는 것>에서 사람을 '내 고객'으로 생각했다면 단 몇 장만에 대상이 '남편', '엄마', '친구'로 변화하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다.
나는 상대방을 공감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람이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지?' '어떻게 저런 말을 하지?'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하는 애어른이다. 바뀌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바뀌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오늘 읽은 짧은 일화를 통해 변화의 실마리를 찾은 듯하다.
여행지에서 만난 세 가족이 쓰나미라는 재해 속에서 어떻게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에 대해 나왔다.
한 순간에 딸을 잃은 아내와 남편의 태도, 멀어져 감을 느끼면서 몸만 같이 있던 헤어짐을 앞둔 커플, 남편을 잃은 줄 알고 절망했다가 이후 남편의 생사를 확인하게 된 어느 부인을 통해 동일한 사건임에도 사람에 따라 얼마나 다른 경험을 하는지 생생히 담겨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서는 온갖 일들이 일어나지만 각 개인은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사건을 처리하고 경험한다.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올더스 헉슬리는 경험은 당신에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당신에게 일어난 사건에 대한 당신의 행위다.
현실에는 두 개의 층이 있다고 한다. 실제 일어난 객관적 사실과 그 일어난 일을 각 개인이 해석하는 주관적 사실이라는 두 개의 층. 그리고 때로는 객관적 사실보다 주관적 사실이 훨씬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고 타인을 탐구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주관적 현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옳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따라서 타인을 이해하려면 '상대는 이 일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상대는 자기의 현실을 어떻게 구성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실제로 남편과의 사소한 다툼 중에는 원인을 누가 제공했냐, 누구의 말이 맞느냐, 누구의 기억이 맞느냐 하는 것이 주된 싸움거리가 될 때가 종종 있다. 사실 이러한 종류의 싸움은 맞냐 틀리냐(객관적 현실)보다 '빈정'이 상한 것(주관적 현실)을 겉으로 표현하면 쪼잔해 보이기도 하고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갑자기 확 와닿았다.
때로는 자존심이고 뭐고 상대의 행동에 대한 내 주관적 해석을 곁들여 서운함을 토로하면 남편이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도 믿어주지 않고 계속 내 주장만을 하는 때가 얼마나 많은가.
이해받고 싶어 했지만 이해하려고는 한 적이 없었던 지난 9년간의 결혼생활을 돌아보게 한 부분이었다.
책에는 또 이러한 구절도 있다.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자기 모습대로 바라본다.
이런 통찰을 가지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이런 혜안이 있다면 적어도 남편의 말을 믿지 않고 완고한 태도를 고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배우는 역지사지를 40대를 앞두고 돈을 주고 구입한 책에서 다시 배우게 될 줄이야.
책 한번 읽는다고 다른 사람을 모두 포용하고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해가 정말 되지 않는 상대의 행동을 '비난만'하지는 않을 것 같다. 왜 그런 거지?라고 한 번쯤 반문해 볼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