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가는 글쓰기 습관#30

인복人福

by Lovely Kay

내 어린 시절은 회색과 불안으로 만들어져 있다.

폭력적이고 밖으로 도는 아빠와 그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안고 산 엄마의 불안을 먹고 자란 어린이.

그로 인해 지금까지 고통받고 있는 몇 가지가 있지만 그럼에도 사람구실을 하며 살아가는 데는 내 주변 사람들의 영향이 아주 컸다.

다시 말해 인복이 좀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아빠대신 외삼촌과 외숙모의 사랑이 있었다. 외갓집에서 난 첫 손주이자 조카였다. 그래서 사랑을 독식할 수 있었다. 희한하게도 외숙모도 날 예뻐라 해주시고 지금도 내 생일을 챙겨주시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나를 처음 빕스와 아웃백에 데려간 것도 첫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기회를 준 것도 막내 삼촌부부였다.


큰삼촌의 소개로 과외를 한 적이 있는데 이 선생님을 통해 성적이 역변하는 경험을 해보았다. 내 노력이 부족해 중도에 포기하긴 했지만 어떻게 공부하는 것인지 알려주신 분.


고등학교 2학년때부터 공부를 지지리도 못해 고3 때는 수능도 미리 포기하고 수시 하향지원을 해서 덜컥 붙어버렸을 때 재수를 권한 것도 삼촌들이었다. 물론 난 나를 너무 잘 알아서 그냥 현역으로 입학했다.

어떤 삼촌이, 자기 가정을 꾸리고 사는 삼촌이 조카의 재수까지 챙기겠는가.


그리고 첫 회사의 '박 대리님'. 이 분덕에 어떤 태도로 일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너무 능력이 부족하고 성실함도 부족한 나였는데 이분이었기에 끝까지 나를 붙잡고 일해주셨다고 생각한다. 실수투성이 후배임에도 송별회에서 자신이 회사를 차리면 너를 꼭 부르겠다고 그때는 꼭 오라고 말해주셨던 분. 엉망진창이었던 내 회사생활을 그래도 아름답게 마무리해 주신 분.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의 대표님. 이분을 통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분노, 배신, 야비함 등 이게 진짜 사회인가 싶게 호되게 당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일을 할 수 있게 다리가 되어주었기에 나쁜 인연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특히 2년 전 배신사건?으로 인해 내가 더 이를 악물고 내 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를 만들어주셨기에 여러모로 고마운 분이다.

그리고 감정만을 앞세워서는 안 되고 내 실리를 찾아 행동하는 것이 이기는 것임을 깨닫게 해 준 장본인이기에 얼마나 복된 인연인지.


첫째 아이의 친구 엄마를 통해서는 베푸는 삶을 배우게 되었다.

음식을 대접하는 것, 좋은 것을 나누는 것, 집에 초대를 하는 것.

자신이 훨씬 더 베풀면서도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분인데 항상 태도에 여유가 있다. 그리고 자신이 베푸는 것을 생색내거나 되받으려 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을 나는 처음 겪어보았기에 처음엔 너무 많은 친절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나도 저분처럼 살고 싶다. 내가 해준만큼 받으려고 전전긍긍하지 않고 내 것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삶이 부러웠다. 실제로 그런 마인드 때문이 남편의 사업도 승승장구하는 듯도 했다.

종교도 같아서 신앙의 측면에도 긍정적 영향을 많이 미치신 분이다.


교회의 집사님을 통해서도 베푸는 삶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그리 친분이 깊지 않은데 내가 둘째 아들을 가졌을 때 집으로 초대해 주시고 이것저것 장난감을 챙겨주시더니 계속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아름씩 옷과 장난감을 주신다.

그냥 막 쌓아둔 것을 처리하는 느낌이 아니다. 모든 옷과 신발은 새로 세탁을 하고 옷을 일일이 예쁘게 개어서 비닐에 켜켜이 쌓아 주신다. 어떻게 옷을 이렇게 깔끔히 입히지 싶을 만큼 옷의 상태도 좋다.

중고거래에 익숙지 않다며 유모차도 그냥 주시고 다 쓰고 나면 중고로 팔아도 좋다며 마음의 부담까지 덜어주셨다. 이렇게 베풂을 받으니 내가 어찌 그분의 물건을 돈을 받고 팔까. 자연히 나도 내 지인에게 아낌없이 주게 된다. 선순환의 출발점에 서계신 분. 나누는 것이 얼마나 그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지. 나눔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제대로 된 본보기가 되어주신 분이다.


재택근무를 주로 하긴 하지만 내 주업 이외에 내 사업을 따로 키워가려고 하고 계속 이것저것 배워보려는 욕심이 있는 터라 집에 있어도 온전히 쉬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둘째를 낳고 나서 신생아 도우미로 오신 분께 2년째 아이와 집안일 일부를 맡기고 있다. 내가 인복이 있구나를 확실히 느끼게 해 주신 분.

사실 말도 못 하는 아이를 맡긴다는 것은 굉장히 두렵고 우려되는 부분이 많다. 쉽게 신뢰하기도 어렵고 신뢰를 했던 사람이 아동학대를 하는 경우가 공공연하게 뉴스에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 아이 도우미분을 만난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내 목숨보다도 소중한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행운이 있다니. 우리 집과도 가까워서 연장근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하시고 지각 한번 하신 적이 없다. 내가 가끔 아이를 맡기고 서울에 출근하는 날이면 아이에게 이 옷 저 옷 입혀서 사진 찍어 보내주시는데 그 사진에도 애정이 뚝뚝 묻어나 있다.

아이도 할미 할미 하며 얼마나 잘 따르는지 모른다. 아이를 예뻐하시면서도 그러면 안 된다면서 아이에게 뽀뽀한 번 함부로 하지 않으시고 감기 걸린 날에는 마스크를 쓰고 일하신다.(내가 요구한 것이 아니다. 난 생각보다 이런 데에 관대하다.) 어느 날 퇴근시간이 되셔서 둘째에게 할미 안녕하고 인사하라고 하자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는 할미 뽀뽀하며 볼에 뽀뽀를 쪽 하고 한 적이 있는데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감동이라며 나가다 말고 아이를 안아주고 가셨다.

심지어 첫째도 예뻐라 하신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딸에게 예쁘게 물든 단풍잎을 주워다가 주시며 한 번 그림 그려보라고 잘 그릴 것 같아서 할머니가 한 바퀴 돌며 주어오셨다고 말하시는 소녀 같은 분.

사람마음이 같지 않고 가족은 아니다 보니 불만이 쌓이는 부분도 물론 있다. 그렇지만 본질은 내가 믿고 맡길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인데 이 부분에 있어서는 의심에 여지가 없다.

이분덕에 맘 편히 출근도 하고 내 일을 볼 수 있다.

이분 덕에 집안일을 하는 법을 배우고 정리하며 사는 삶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게 무슨 인복이냐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불안으로 점철된 내 어린 시절에서 누군가를 신뢰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큰 위안이자 자랑거리이다.

그리고 그 분들에게 혹은 나를 만나는 인연들에게 내가 그 인복의 인연 중 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늦게나마 나라는 사람을 다듬어 가고 있다. 이 분들에게 받은 선물을 나도 나눠 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