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필사
막내작가 때부터 제 사수 선배님이신,
이용규작가님께서 언젠가,
외국 촬영을 다녀오시면서
인도 갠지스강에서
죽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메일로 보내주셨던 적이 있었어요.
어린이날 태어난 선배님은 아이들을 사랑하십니다.
인도 갠지스강에서는 시체를 불태우잖아요.
그 옆에서 아이들이,
죽고 싶다고 하는 말을 들으며
굉장히 가슴이 아프셨다고...그런 말씀을 해주셨던 기억이 나서
메일을 뒤져보다가,
선배님께서 만든 한국기행 바다를 사랑한 섬 가거도 방송 필사한 자료를 발견했어요.
방송작가들은 기본적으로 뉴스, 방송자료 모니터를 많이 합니다.
방송대본들도 많이 읽고,
밤새워서 하는 일이 자료조사, 아이템 찾기, 원고쓰기 기타 등등이라고 보시면 돼요.
선배님께서 공부하라고 직접 보내주신 기획안과 대본도 있지만,
저작권 문제로 올리기가 어렵겠어요.
글이 너무 아름다워서,
제가 필사한 내용을 복사해 올려봅니다.
(선배님은 이 원고처럼 선한 마음을 지닌 분이시랍니다)
원고 공부하느냐고 방송 보면서, 그대로 타이핑한 거라,
중간 중간 빠진 단어가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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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행- 바다를 사랑한 섬 가거도 / 이용규 작가
국토의 서쪽 끝에 한 섬이 있습니다.
남쪽 끝 나라도 동쪽 끝 독도와 함께 국토의 경계를 이루는 섬.
가히 살만한 섬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이 아름다운 섬을 사람들은 가거도라 부릅니다.
가장 늦게 해지는 섬 가거도
목포항을 벗어나자 섬들의 풍경이 이어집니다.
크고 작은 섬, 1004개가 모여있어 섬들의 고향이라 불리는 전라남도 신안 앞바다.
2초 보고 목포를 출발한 배는 신안군도의 여러섬들을 거쳐 무려 240km를 달린 가운데 마지막 섬 가거도에 닿습니다.
비로소 외딴 섬인을 실감나게 해주는 필리핀, 중국, 제주도 방향 표지판.
호젓하기만 한 섬의 주민은 모두 530명. 이 중 80%는 폭우가 있는 대리에 살고 대리 사람들은 고기잡이로 살아갑니다.
자투리 전답도 이곳에선 귀하기만 하죠.
사람들은 높은 담장을 쌓아 바람을 막고 거친 바다와 맞서며 살아왔습니다.
int 가난하게 살았어요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미역이 잘되면 조금 살고 안되면 너무 못 살았지요
우리 클 때만 해도 너무 못 살았어요.
고달픈 기억도 오래 되면 새롭습니다.
가난했지만 한 때 이 골목 가득 풍기던 그리운 호시절.
int 게시판이 중고가 돼버렸어요. 옛날엔 사용을 많이 했는데.
(흑백과거사진)
마을의 전성기. 그러니까 50,60년대만 해도 마을 인구는 1600명에 달했습니다.
가거도 앞바다는 소문난 어장이었고, 파씨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25초
산 하나가 섬 전체라 할 만큼 가거도 둘레는 가파른 벼랑으로 이어져있습니다.
신안군에서 가장 높은 해발 639m에 독실산을 중심으로 세 개의 마을이 있죠.
9초
섬의 서쪽 끝에 있는 항리 마을
아름다운 선등반도를 배경으로 모두 쉰 세 명의 주민들이 돌담 골목길을 오르며 사는 곳입니다.
바람많고 돌많은 이곳, 주민들은 바다를 정원 삼고, 산을 뒤안 삼아 고추, 콩 심고 가꾸며 살아왔습니다.
서해의 만류와 동해의 한류가 만나는 지점이기에 늘 거칠기만 한 동해의 앞바다.
바다 따뜻해지는 음력 5월 단오에서 7월 초석까지 이곳 바다는 불골락(?)의 시작입니다.
int 작업 들어가면.
작업 들어간지 2시간, 어느 새 갑판 위는 꽃핀 듯 불골락으로 채워집니다.
가거도 바닷 속은 어류 4500종이 살아가는 수중 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하죠.
바다가 좋아 남들 다 떠나는 배처 마다하고 이곳에 남기로 했다는 20년 어부 삼형제.
비록 고단하긴 하지만, 땀 흘리고 만든 점심시간은 달콤하기만 합니다.
수만년 바람에 씻기고 파도에 깎이면서 바위는 조금씩 제 아름다움을 갖춰왔습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생명들을 품 안에 불러들이기도 했죠.
홍합,
삿갓 조개, 바다 고동,
거북의 손을 닮았다 해서 거북산과 따개비. 군부.
모두 섬 사람들에게 귀한 먹거리입니다.
int 잠수했어요. 자연히 그렇게 됐어요.
살기 위해 남자들은 배 위에서 싸우고
여자들은 갯바위에서 싸워야만 하죠
그것이 섬 사람들의 일상이 된지 오래입니다.
int 시집가면 키워야 되니까
int 우린 떠나가도 괜찮아요.
해녀 노래 sov
어머니들에게 바다는 살아온 여정,
말 그대로 인생이었습니다.
int 대풍리는 600m고지.
배풍리가는 길,
어선으로나 하나될 수 있는 외진 곳입니다.
sov 갖고 가요.
int 머리에 올리고 다녔죠.
보이는 것이라곤 오로지 바다 뿐인 마을.
이 가파른 벼랑 위에도 어김없이 어머니가 살고
땅을 일궈냈습니다.
경사가 급해 갯바위조차 나갈 수 없는 어머니들에게
전답은 생명줄이었습니다.
int 옛날에는 풀이 많아. 밭을 일궈.
예쁜 깨꽃하나 돌담장에 걸린 더덕꽃 하나.
그저 피는 것이 아닙니다.
그곳엔 평생 허리 굽혀 돌을 주워낸 어머니의 삶이 있습니다.
sov 토끼 밥을 먹어라. 밥 준다. 많이 먹고 많이 커
이곳에서 태어나고 이곳에서 결혼
5남 1녀를 낳았지만 혼자 남았다는 어머니.
int 아들, 딸들이 험하게 살다가 갔어요
전화, 매일 배가 다녔지만
내가 살아가는 것이 너무 가슴이 아파요
아픈 자식을 가슴에 뭍고 이제 자신도 섬이 되고 말았다는 어머니.
그 어깨 너머로 해가 집니다.
한국에서 가장 늦게 지는 가거도의 해입니다.
가히 살만한 섬 가거도
독실산
2. 바람과 안개의 숲
5. 섬의 아이들은 꿈꾼다.
(흑백사진 1960)
그리운 것들은 쉽게 잊혀지지도 또한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흑백 사진 속에 모여있는 부스럼많던 어린 시절,
우리의 꿈은 거기서부터 시작됐습니다.
int 꿈이 뭐야? 공무원? 가수? 선생님도 해보고 싶은데...
힘들긴 하겠지. 그런데 하고 싶다.
많은 아이들은 각자의 꿈을 안고 섬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 남아있는 몇몇의 아이들.
섬의 아이들은 지금 어떤 꿈을 꾸는 것일까요?
타이틀: 섬의 아이들은 꿈꾼다.
바닷가 외딴 집,
매일 새벽 4시면 임건중씨의 하루가 시작됩니다.
잠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내와 외동딸 다희의 모습을 뒤로 하고 집을 나서는 건중씨.
건중씨가 도착한 곳은 차로 10분 거리의 가거도항.
그가 이렇게 새벽잠을 설치고 포구에 나온 것은
어제 설치해두었던 고기그물을 거두러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건중씨의 딸인 다희의 집은 우리나라 최서남단에 위치한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리 항리마을입니다.
sov 일어나 씻고
이곳에서 엄마와 아빠,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열한살 다희
int 혼자라서 마냥 귀여워하니까 그래요.
집에 오면 항상 애기같아요
새벽 바다로 나갔던 건중씨가 돌아왔습니다.
오늘 잡아올린 고기는 씨알 좋은 넙치 이십여수.
이 정도면 새벽 바람 쐰 댓가는 충분한 것 같습니다.
이곳 가거도에서 태어난 권중씨는 목포에 나와 살다가
지난 *일 아내 애란씨와 함께 다시 이곳에 돌아와 살기로 했죠.
sov 방이 몇 개나 필요할까요? 네 개는 써야겠구만
그리곤 고향인 가거도 항리마을에서 작은 민박집을 하기로 했습니다.
sov 일어나시오.
아직 철부지지만 사랑스럽기만 한 딸, 다희.
형제도 없이 혼자 자란다는 생각에 다희의 엄마 아빠는 늘 세심하게 사랑을 표현하곤 하지요.
낳은지가 바로 엊그제같은데 다희는 벌써 11살. 초등학교 4학년이 됐습니다.
무려 한 시간 반을 걸어야만 하는 등굣길.
늘 혼자였는데 오늘은 동네에 놀러온 단짝 은실이언니 때문에 심심하지 않습니다.
집에서 5km. 가거도에서 가장 큰 대리마을에 있는 가거도 초등학교.
한 때는 전교생이 200명도 넘었다지만 지금은 고작 학생수가 17명에 불가한 아주 작은 학교입니다.
더구나 요즘은 방학철. 아이들이 학교를 찾는 이유는 친구들과 놀 수 있는 최고의 놀이터이기 때문입니다.
int 저희 아빠가 선장이기 때문에.
작은 섬인 까닭에 도시아이들처럼 분주하게 뛰어가야할 학원도 특별한 놀이동산도 없습니다. 아이들은 자연을 통해 보고 듣고 배웁니다.
(보고)
바다에서 섬 아이들의 여름은 신나기만 합니다.
누구나 물에 익숙하고 수영엔 선수들이죠.
이렇듯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자연의 모습 하나하나가 아이들에겐 최고의 교과서입니다.
sov 제일 키가 큰 게
가거도 북쪽에 있는 항리마을입니다.
사철 거센 바닷바람이 먼저 찾아오는 곳이지요.
사람들은 높게 돌담장 쌓아 바람을 막고 정겨운 오솔길을 만들어 오갔습니다.
한 때는 많은 아이들로 붐볐다는 길.
하지만 이제 이 길을 오가는 아이는 다희와 가끔 다희 집에 놀러오는 은실이 뿐이지요.
int 80가구 정도 살았지요. 고기도 많이 잡고
미역도 채취하고 멸치도 잡았지라. 빈집이 많아요
이십년 전만 해도 80가구. 6,70명의 아이들이 붐볐다는 마을.
바람과 햇볕에 그을리던 그 많은 아이들은 모두 어디로 떠났을까요?
가거도 초등학교-항리분교
sov 양팔 벌리지. 학생 수가 많았어 70명 정도 돼어서 담을 넘었어
어느 새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마냥 신나있는 *씨.
하지만 지난 1998년, 가거도 초등학교 항리분교는 폐교가 되고 말았습니다.
다희가 1시간 *분 거리의 가거도 초등학교에 다닐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부지런히 초를 칠하고 돌과 빈병으로 마루에 광을 내던 시절.
다희와 은실이에겐 신기하게만 느껴지는 먼 옛날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비록 폐교가 되었지만
이곳에서 아이들은 배우고 싸우고 뛰면서 성장했습니다.
그리곤 때가 되자 졸업장과 함께 자신의 꿈을 품고 하나 둘 섬을 떠나갔습니다.
언젠간 이 아름다운 섬에 다희와 은실이도 이곳을 떠날 것입니다.
그리고 섬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얼마나 바다가 아름다웠는지 더욱 또렷하게 기억될 것입니다.
sov 다희는 꿈이 뭐야? 패션, 코디네이터, 메이크업, 선생님, 영화배우
법에 관련된 일. 공무원, 가수, 선생님, 요리사
sov 은실이도
동네에 학원이 없어 방과 후면 일일이 아이의 숙제와 학교 공부를 가르쳐야 하는 다희의 엄마 노애란씨.
int 다른 건 몰라도 수학, 영어는 가르치지 힘들어요
아이들이 섬을 떠나는 것은 섬이 작아서가 아니라
어쩌면 꿈이 커서일 것입니다.
바다와 마주하고 앉은 다희와 은실이.
이들도 언젠간 꿈을 쫒아 이곳을 떠날 것입니다.
그리고 알게 될 것입니다.
자신들이 그저 섬을 떠난 것이 아니라
가슴에 섬을 품고 떠나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