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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 하인츠, 페터 뢰어 지음, 배명자 옮김에서 발췌했습니다.
2부 가정에서 일어나는 또 다른 폭력
부모의 잘못된 기대와 요구보다 언제나
아이 자신의 고유한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죄책감을 극복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동안 겪은 고통에 대해 충분히 슬퍼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고 풀어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정서적 학대>
'가정 폭력'에 대해 논하려면 성폭력과 더불어 정서적 학대라는 주제를 빼놓을 수 없다.
정서적 학대의 뿌리는 다양하고, 여러 형태가 동시에 나타나기도 한다. 가정에서의 정서적 학대는
언제나 막대한 성격 장애를 불러오고 성폭력과 유사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이러한 정서적 학대는 오로지 아버지나 어머니 혹은 둘의 욕구를 채우려 들 뿐 아이의 욕구는 철저하게
등한시하면서 발생한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종속 관계가 생기고, 이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희생자 콤플렉스를 싹 틔운다. 이러한 관계 손상은 '사회 유전'의 형태로 다음 세대로 대물림된다. 부모는 아이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본받고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유지하게 될 행동 방식의 본보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부모 자식 관계의 손상은 깊게 각인되는 성격 장애, 심신 상관 질환, 중독 질환을 일으키기 쉽다.
<불행의 위협>
불행한 가정 환경은 아이의 심리적 균형에 큰 균열을 가져온다. 일반적으로 이런 환경에서 자라다 보면 어려서부터 자기는 없고 오로지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 되기 쉽다. 그리고 이 역할이 평생 고착될 수도 있다.
보통의 경우라면 아이는 가정의 불화를 없애고 부모의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아프면 아이는 어머니를 잃을까 두려워 그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려고 한다. 어머니를 보살피고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동생을 돌본다. 아이는 이렇게 하면서 특별한 존재감을 느낀다.
'엄마에게는 내가 꼭 있어야 해. 난 중요한 사람이야'
그래서 아이에게는 부모의 건강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된다.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참고 모든 것을 아픈 사람에게 맞춘다. 그러다 보면 아이의 본능적인 욕구, 이를테면 시끄럽게 웃고 떠들고 뛰고, 부모에게 응석을 부리고, 부모의 한계를 시험하고, 자신의 욕구를 가장 우선시하는 행위 등등 건강한 발달을 위해 꼭 필요한 모든 행동 방식이 억눌리게 된다.
아이가 부모에게 투정을 부리고 반항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부모가 아프면 아이의 이런 자연스러운 불만들은 표현을 억제당한다.
'불운에 시달리는' 부모를 공격할 순 없기 때문에 마음에 공격성이 생기면 아이는 죄책감을 느낀다. 결국 화, 적개심, 공격성이 표출되지 못하고 억눌린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순간 양심이 즉시 신랄하게 비판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심장병을 앓는 어머니를 속상하게 해선 안 된다. 어머니가 죽을지도 모르니까
감정을 억누르는 것은 자신의 고유한 인격과 정당한 욕구를 무시하는 행위로, 건강한 자존감의 발달을 방해한다.
아프거나 장애가 있는 부모를 특별히 배려해야 하는 가정은 집안 분위기가 무겁고 우울하고 침울하고 부정적이기 쉽다. 이런 분위기가 아이의 정서와 자아상에 각인된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기쁘고 행복한 감정이 들면 죄책감을 느낀다.
'아빠(엄마)가 그렇게 힘들어하는데 어떻게 너는 행복할 수 있니'
이렇게 아이의 양심이 즉시 스스로를 비난한다.
부모의 질병과 고통이 아이 때문이라고 무의식적으로, 혹은 공공연히 누군가 책임을 전가하면 문제는 훨씬 더 악화된다. 예를 들면 부모가 아이에게 "너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 아이였다"거나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거나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아이"라고 얘기할 때가 있다. 이 말 속에는 "이제부터 부모의 행복을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해라"는 요구가 담겨 있다. 이때 부모의 속마음은 대략 이렇다.
'내가 이렇게 힘든 건 모두 너 때문이야. 그러니 적어도 내가 괴롭지 않게 네가 더 노력해야지. 부모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어야지'
물론 부모가 아프지 않아도 이런 태도를 가질 수 있다. 아이의 존재 자체가 힘겨운 삶을 강요하고 재정적, 직업적, 개인적으로 제약을 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모든 건 다 너 때문이야. 그러니 나는 너에게 화풀이하고 벌을 줄 권리가 있어. 어쩜 너는 내가 가장 증요하는 네 아버지(어머니)랑 아주 똑같니?'
부모의 이런 극단적인 멸시는 온갖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망토가 비유하는 부정적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이때도 아이는 심리적 장애가 있는 어른이 자신의 증오를 풀 수 있는 만만한 대상으로 악용된다. 모든 불행의 책임이 아이에게 전가된다. 불행, 고통, 질병, 불의 등 모든 게 아이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 무조건 아이를 탓하는 것이 쉽고 정당해 보인다. 이것은 공공연히 벌어지기도 하지만 대개는 무의식적으로 발생한다. 그 결과 아이는 깊은 죄책감에 빠진다.
아이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지 못하고 어른의 지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아이의 고유한 자아는 무시당하기 쉽다. 이때 아이의 진짜 욕구와 권리는 철저히 등한시되고 아이의 영혼은 살해된다. 아이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고 가장 깊게 연결되었다고 느끼는 사람이 열등감을 안겨주고 복종을 강요하기 때문에 파괴력은 더 클 수 밖에 없다.
불행의 위협은 평생 지속되는 의존성을 만들어낸다. 이런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권위적인 아버지나 어머니와 적절한 거리를 두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도 그 이유를 알지는 못하고 자주 양가감정을 느낀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화를 억눌러서 생긴 감정이다. 그들은 부모에게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살고 싶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떨어지지 않는 거머리처럼 부모에게 밀착해서 산다. 자립적이고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할 때마다 죄책감을 느낀다. 죄책감은 그 어떤 것보다 막강해서 거대한 악마처럼 떨쳐낼 수 없는 공포를 자아낸다. 순응, 아픈 사람과의 동일시, 이해가 필요하고 이해를 요구하는 안쓰러운 부모에 대한 복종, 그것만이 마음을 진정시키고 죄책감을 약화시킬 수 있다. 견디기 힘든 죄책감에 대한 반응은 언제나 똑같다. 반복적인 순응과 굴복이다.
자신의 불행을 구실삼아 폭력과 학대를 자행하는 사람에게 화를 낼 수 없다면 이 분노는 어디로 갈까? 점점 더 강한 분노가 내면에 쌓이면서 압력 밥솥처럼 폭발력이 높아진다. 분노 제공자를 향해 분출되지 못한 에너지는 결국 다른 분출구를 찾게 된다. 이때 간혹 교대로 선택되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 번째는 분노가 피뢰침 구실을 하는 다른 사람에게 향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당한 방법은 아니지만 당사자는 순간적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그러나 곧 제3자와 추가적인 갈등을 겪게 된다. 이떼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해명과 정당성을 찾으려 노력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죄책감을 발달시킨다. 제3자에게 터트리는 분노는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며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다. 아주 잠시 마음의 위안을 얻을 뿐 금세 분노가 다시 쌓인다. 근본적인 갈등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압력이 높아지고 다시금 증기 분출이 필요해진다.
두 번째는 분노를 자신에게 분출하는 것으로, 훨씬 빈번하게 일어나는 반응이다. 이것은 우울감, 무력감, 두려움, 공황장애, 자기 멸시, 긴장감 그리고 장기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심신 상관 질환을 일으킨다. 술이나 다른 약물로 내적 갈등을 마비시키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러나 이 방법 역시 잠깐의 효력만 있기 때문에 부정적 감정에 저항하기 위한 중독 행위가 반복되면 결국 중독 질환이 생길 위험이 높다.
불행의 위협 속에서 자란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감정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기 쉽다. 또한 아이의 마음 속에 깊이 자리한 심리적 장애는 결국 중독 질환으로 이어진다. 이런 연관성을 알아야 중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부모에 대한 근본적인 의존성이 해결되지 않으면 중독 치료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
환자들은 근본적인 원인을 모른 채 자신의 의존성을 감지한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자신의 지각 능력을 믿지 못한다. 그래서 '부모의 요구를 거부하고 부모와 거리를 두고 자립하고자 하는 욕구가 과연 정당한가? 나보다는 힘들어하는 부모의 기대와 요구를 더 중시해야 하는 게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한 여성 환자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어머니 집에 다녀오면 언제나 기분이 나빠요. 어머니는 사사건건 저를 비난하고 모든 잘못을 제 탓으로 돌려요. 어머니가 그렇게 모진 말을 내뱉고 나면 저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요.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해요. 평정심을 유지하며 어머니에게 친절하게 대하든 화를 내고 공격을 퍼붓든 결과는 똑같아요. 저는 늘 공허감, 모멸감, 분노를 번갈아가며 느껴요. 이런 감정은 저를 너무나도 힘들게 해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는데 여러 날이 걸리기도 해요. 다시는 어머니 집에 가지 않겠다고 결심하지만 저도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계속해서 저를 그쪽으로 떠미는 것 같아요.
환자들은 자신을 압도하는 부모와의 싸움에서 매번 패배감을 느낀다. 그러고 싶지 않아도 부모를 멀리할 수 없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혀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이때는 어린 시절에 나를 늘 두렵게 했던 것이 나의 성장을 방해했고, 그 강한 힘이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불행의 위협은 아주 일찍부터 자립심과 자율성의 발달을 방해한다. 부모의 욕구를 자신의 욕구보다 언제나 앞에 둬야 한다는 의식이 내면화되고, 그에 반할 때는 깊은 죄책감을 갖고 삶을 긍정하는 생명 에너지를 억누른다. 결국 다른 사람 때문에 괴로워하고 스스로를 억압받는 존재로 내몰면서 심한 우울증 속으로 빠져든다. 한마디로 희생자 콤플렉스가 드러난다. 성폭행 피해 생존자들이 주로 겪는 증상이 정서적 학대를 당한 아이들에게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자기 발달을 희생당해야만 했던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똑같은 비극을 반복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이들은 부정적인 관계를 반복하게 하는 상대를 무의식적으로 계속 찾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중독 환자에게만 관심을 두었지만, 최근 들어 중독 환자의 연인이나 배우자, 이른바 공동 의존자에게도 점차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덕분에 공동 의존자의 역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공동 의존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중독 질환을 정당화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중독 환자:
저는 아내를 처음 봤을 때부터 저희가 결혼하게 될 거라는 걸 알았어요. 제가 그녀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녀가 제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잘 알았기 때문이에요. 그녀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여자였지만 저를 위해 모든 걸 할 것이고, 제 방종과 방탕을 이해해줄 것이고, 강자이고자 하는 제 소망을 채워줄 것이고, 무엇보다 저는 그녀 곁에서 늘 안정감을 느낄 거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습니다.
이것은 한 중독 환자가 이기적인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털어놓은 이야기다. 그는 응석받이로 자랐고 그것이 결국 그를 중독 질환과 심한 관계 장애로 이끌었다. 반면 그의 아내 G는 늘 불행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정서적 학대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중독 환자와의 결혼 생활은 그녀가 어릴 때부터 경험해오던 상황의 연장이었다. 그녀에게는 정서적 학대를 가하는 어머니에게서 벗어날 능력도, 폭력적인 남편에게서 벗어날 능력도 없었다.
공동 의존자 아내:
공동 의존자인 G는 혼외 자식으로 태어났고, 걷지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어머니와 살았다. 어머니는 늘 기분이 좋지 않았고 자신의 운명에 괴로워하며 무의식 중에 자신의 불행을 딸의 책임으로 돌리기도 했다. G가 남자 친구를 사귀자 어머니는 격렬히 반대하며 둘을 떼어놓기 위해 ㅂ려의별 수단을 다동우너했다. G는 일종의 반항심에 처음으로 어머니에 맞서 자기 뜻을 관철시켰다. 그들은 그렇게 결혼했지만, 결혼 직후부터 남편은 거의 집에서 빈둥대며 걸핏하면 아내를 때리고 학대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더 나빠졌지만 G는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이혼을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편의 폭력에 대한 공포가 이들 사이에 주종 관계를 발달시켰다. 그녀는 뭐든지 남편이 하라는 대로 했다. 결국 그녀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이내 술에 의존하게 되었다. 그녀는 여러 차례 여성 쉼터로 도망쳤지만 매번 남편에게 설득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이 짧은 사례에서도 잘 나타나듯이 G의 어머니는 딸의 남자 친구가 남편감으로 적합하지 않고 그들의 결혼생활이 결코 순탄치 않으리라는 걸 확신했다. 그러나 딸이 그런 남자를 배우자로 고르게 된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 즉 딸을 무시하고 죄책감을 주입시켰던 자신의 정서적 학대 때문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따. 그러므로 G는 어머니로부터 어떤 도움이나 격려, 지지도 기대할 수 없었다. 여기 또 다른 사례가 있다.
A의 가정은 아버지의 알코올 의존증이 문제였다. 희생자 콤플렉스가 있던 어머니는 알코올 의존자인 남편의 폭력을 감내하며 살았따. 어머니는 폭력적인 남편으로부터 세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이내 맏딸인 A에게 의지하며 모든 근심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맏딸이 남편을 대신한 것이다.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늘 친밀했고 이상할 정도로 갈등이 없었다. 그러나 A가 결혼을 하게 되면서 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심리적 요인으로 심장 발작을 일으켰고, 그것을 무기로 자신에게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려는 딸을 압박했다. A는 결혼 생활 내내 남편에게 이혼을 당하지 않을까 불안해했다. 그리고 결국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무조건 남편의 비위를 맞추기 시작했다.
이 사례에서 앞으로 더 자세히 살펴봐야 할 또 다른 형식의 가정폭력이 명확히 드러난다.
바로 배우자 노릇을 해야 하는 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