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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심리 치유

by 러블리김작가

*괜찮아,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하인츠 페터 뢰어 지음, 배명자 옮김에서 발췌했습니다.


대체 배우자가 되어야 하는 아이


부부 관계가 좋지 못하면 아이가 배우자를 대신해야 하는 관계 패턴이 언제든 형성될 수 있다.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실패한 부부의 절반만이 이혼을 한다. 수많은 가정에서 배우자가 채워주지 못하는 감정적 결핍을 아이가 메워야 한다. 편부모 역시 자신의 애정 욕구를 자식에게 채우게 할 위험이 있다.

아이가 배우자를 대신하게 되면 관련된 사람들 모두가 예기치 못한 불운한 발달을 겪게 된다. 딸과 아버지, 혹은 아들과 어머니의 관계가 과도하게 밀착되면 부모 자식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경계가 사라진다. 부모의 사랑과 부부의 사랑은 반드시 구별되어야 한다.

부부는 공동의 인생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속적인 연결을 지향한다. 그러나 부모 자식 관계는 언제나 자립하도록 놓아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사랑하기에 보내주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을 놓아주어야 하기 때문에 배우자 대신 자식에게 의지했던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대체 배우자를 잃게 된다. 이것에 대해 거의 모든 부모가 이론적으로는 동의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자식의 권리는 결코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자식에게 예속과 절대복종을 요구하는 부모도 있다.


배우자가 채워주지 못하는 감정적 결핍을 자식에게서 채우려는 것 역시 똑같은 폭력이다. 폭력의 대상이 신체가 아닌 정서라는 것만 다를 뿐이다.

이런 부모 자식 관계에서는 특히 아이의 인격이 착취된다. 아이는 오로지 부모의 친밀감과 스킨쉽 욕구를 채우기 위한 존재로 전락한다. 이런 부모는 부모 자식 간에 관계가 과도하게 밀착될 때만 아이의 고유한 인격 발달을 허락한다. 아이에게 응석을 허락하지만 경계를 만들고, 관계를 위협하는 행동을 할 때는 가혹한 벌을 내리며 아이를 엄격하게 조종한다. 아버지(어머니)는 자신의 목표를 관철시키기 위해 막대한 권력을 이용해 은근히 혹은 노골적으로 아이의 진짜 욕구를 막는다.

이때 아버지(어머니)는 모든 게 다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아이는 심리적으로 혼란에 빠진다. 부모가 최선을 다해 자식을 돌보는 증거처럼 표현하는 자식에 대한 과도한 우려나 걱정은, 사실 자식을 의존적이고 순종적이고 기꺼이 희생하는 아이로 만들기 위한 위장이다. 부모는 희생이라는 가면을 쓰고, 관계 상실에 대한 자신의 두려움과 싸운다. 이런 위장은 결국 아이에게 깊은 불안감을 심어주고, 아이는 부모가 암시한 것과 자신의 감정이나 지각이 일치하는지 계속해서 살피게 된다.

부모와의 과도한 밀착 관계는 아이의 중요한 발달 과정을 방해한다. 특히 자립에 대한 자신감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하게 한다. 감정적 결핍을 겪는 부모는 오랫동안 아이 곁에 머물기 위해 아이의 내면 깊은 곳에 대략 이런 내용을 주입한다.

'너는 나 없이 못 살아. 넌 내가 필요해. 너는 절대 혼자서 살 수 없어'

이런 식으로 내적 제동 장치가 생기면 어른이 되어서도 극복하기 어렵다. 교묘한 폭력과 함께 오랜 세월에 걸쳐 각인된 암시가 결국 현실이 될 수 있다. 아이는 암시된 것을 믿을 수 밖에 없고, 점점 저항력을 잃어가며 부모에게 의존하게 된다.

교묘한 협박과 제한, 구속이 동반된 부모의 압박이 완벽하게 가능하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의 품을 벗어나지 못해서 연애나 결혼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부모와 같이 살고, 심지어 부모와 같이 자고, 미래에 대한 전망도 부모를 중심으로 그리게 된다. 그 결과 심신 상관 질환이 나타나기 쉽고, 알코올 의존증이나 다른 중독 질환, 더 나아가 암도 발병할 수 있다.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것은 알코올 의존증이다.

환자의 중독이 재발하면, 그 부모가 더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숱하게 봐 왔다. 심지어 그들은 배우자 노릇을 대신해주는 자식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공공연하게 혹은 은밀하게 중독의 재발을 독려하기도 한다. 치료를 통해 문제가 드러나고 환자들이 자립을 독려받기 때문에 그들은 지금껏 지켜온 관계가 깨질까봐 위협을 느끼는 것이다.

이런 부모를 둔 사람이 '부모라는 감옥'에서 벗어나고자 찾는 거의 유일한 탈출구는 결혼이다. 이들 대부분이 집착하는 부모에게서 혼자 힘으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을 구원해줄 사람을 찾는다. 그러나 이런 식의 탈출은 근원적 문제인 의존성을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의존의 대상만 바꾸는 셈이 된다.

아이들은 가정에서 관계가 작동하는 방식을 배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가정에서 보고 배운 것을 나중에 결혼 생활에서 비슷하게 반복한다. 아이는 모든 것을 통제하고 집착하고 소유하려는 부모의 태도를 정상적인 것으로 여기고 나중에 연인이나 배우자와의 관계에서도 이런 밀착 관계를 유지하려 애쓴다. 안정감과 관계 상실에 대한 두려움으로 다시 과도하게 밀착된 의존적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관계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완전히 무해한 상황에서도 강한 질투심을 느낀다. 이렇듯 부모의 집착과 질투는 자식의 결혼 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부모의 배우자 노릇을 해야 했던 사람은 자존감이 낮다. 그래서 결혼을 한 후에도 자신이 배우자로서 자격이 있는지 늘 불안해한다. 또한 그들은 희생자 콤플렉스를 갖고 있기 때문에 자립성과 자의식, 자기주장을 발달시키지 못한다. 당연한 결과로 결혼 생활에서 동등한 권리를 가진 남편이나 아내가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상대에게 의존하게 된다. 애착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안달할수록 상대방은 방어적으로 반응하고 이러한 반응은 관계 상실의 두려움을 강화시킨다. 소유욕과 집착에 대한 상대방의 방어 반응을 거부로 느끼게 되면 관계 상실의 두려움이 더 커진다. 그러면 더 필사적으로 집착하게 되고 상대방의 방어 반응 또한 더 강해지면서 악순환이 계속된다. 결국 관계는 깨지고 만다. 부모는 속으로 이것을 은근히 반긴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그러게 내가 뭐랬어! 걔는 안 된다고 했잖아. 처음부터 내 말을 들으면 좋았잖아'

앞에서 밝혀졌듯이 이들은 부모의 집착에서 벗어나기위해 대른 사람에게로 탈출한다. 이들은 혼자 힘으로 무모에게서 벗어날 수 없고, 더 강한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느낀다. 이때 연인이나 배우자가 이 임무를 맡게 된다. 이렇게 맺은 관계가 실패하면 다음 의존 대상을 찾게 되고, 이때부터는 같은 행동 방식을 되풀이할 뿐이다. 집착하는 부모라는 근본적 문제는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병적인 집착과 밀착은 자식이 결혼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지속된다. 아직 미성숙한 배우자로서 결혼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어려움에 더해 여전히 자식을 포기하지 못한 부모의 부당한 요구가 추가된다. 부모는 계속해서 자식의 죄책감을 자극하며 밀착된 관계를 강요하려 한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나는 오로지 네가 잘되기만을 바랐다! 네가 나를 모른 척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곧 알게 될 거야"

위협과 질책, 강압 등 순응을 강요하는 여러 압박 수단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투입된다. 어린 시절부터 순응을 강요당하며 내재되어 있던 죄책감이 인격에 파괴적 흔적을 남긴다. 게다가 죄책감에는 극단적으로 흐르기 쉬운 부정적인 에너지가 들어있다. 죄책감이 일으키는 내적 혼란을 극복하는 것은 특히 어렵다. 환자를 치료할 때 막대한 격려와 지지를 주어도 가장 극복하기 힘든 것이 바로 죄책감이다.


집착하는 부모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자세로 살펴보면, 그들이 독립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 만큼 성숙한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이런 사람은 새롭고 낯선 것에 자신이 없고 혼자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차라리 불행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쪽을 택한다. 말하자면 자립성이 없기 때문에 자기 힘만으로는 행ㅂ고한 삶을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삶의 의미를 자식을 보살피는 것에서, 자식이 동의를 하든 안 하든 자식과의 밀착된 관계에서 찾으려 한다.

또한, 이들에게는 이렇다 할 삶의 목표가 없다. 모든 생각이 오로지 도움이 필요한 자식을 보살피거나 자식의 보살핌을 받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자식에 대한 집착과 의존을 버린다는 것은 곧 삶이 무의미해보이는, 견디기 힘든 공허감을 뜻한다. 무슨 의미로, 무슨 기쁨으로 산단 말인가! 이런 미성숙한 부모는 자식이 배우자 뿐 아니라 부모 역할도 맡아 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런 가정에서는 딸이 어머니의 어머니 역할을 해야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특히 어머니들은 이런 밀착된 부모 자식 관계에서 자신의 욕구를 자신이나 다른 사람 앞에서 부정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들은 자신을 희생하는 존재로 만들고 자기애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게 했는데도 애정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그들은 복수심에 불타는 괴물이 되어 배은망덕과 천벌을 운운하며 자식을 비난하고 위협한다. 혹은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병들어 자식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려 한다. 한 여성 환자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휴가를 떠나려 할 때마다 어머니는 아팠어요. 어떨 땐 휴가를 포기하고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가야만 했죠"

사랑(사실은 사랑도 아니지만)도 폭력이 될 수 있다.


어떤 부모는 자식의 의존을 강제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번갈아가며 투입하고, 마치 배우자처럼 장성한 자식의 삶에 관여하고자 한다. 그들은 자식을 배우자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반대로 자식이 부모를 배우자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어머니는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에요. 그 다음이 아내죠"

치료 과정에서 매번 목격되는 이런 가치관이 문제를 만든다. 예를 들어 결혼한 아들이 매일 어머니를 방문하여 모든 문제를 아내가 아닌 오로지 어머니하고만 의논하는 경우다.

가정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형태의 정서적 학대는, 부모가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이 대신 이뤄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기 삶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부모가 이루지 못한 자신의 소망을 자식에게 투사하고, 자식을 통해 그것을 실현하려는 것 역시 정서적 학대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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