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괜찮아,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하인츠 페터 뢰어 지음, 배명자 옮김에서 발췌했습니다.
부모의 꿈을 대신 이뤄야 하는 아이
삶의 목표가 있어도 그것을 이루기 힘들 때가 있다. 그러면 이루지 못한 목표는 마음에 남아 늘 어딘가 불만족스러운 상태가 된다. 돈이 없어서 혹은 여건이 안 되서 포기해야 했던 학업이나 직업, 도저히 이룰 수 없어 보이는 부, 명예, 권력, 사회적 지위, 삶을 행복으로 이끌어줄 동화 속 왕자나 공주같은 꿈의 배우자 등.
어떤 부모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이런저런 꿈과 목표를 자식이 대신 이루도록 폭력적으로 강요하기도 한다.
부모의 야망은 아이가 태어난지 일주일도 안 됐을 때부터 시작될 수 있다. 신생아가 가질 수 없는 능력을 아기에게 기대한다. 가장 흔히 나타나는 것이 아기에게 배변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아직 괄약근을 제어할 수 없는데도 가혹하게 배변 훈련을 시킨다. 게다가 이런 잘못된 기대에 아기가 부응하지 못하면 부모는 경멸하는 태도로 큰 상처를 남긴다.
이런 식의 과도한 요구는 다른 성장 단계에서도 계속된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기는 얻지 못한 부, 명예, 영광 등을 얻기 위해 아이에게 운동이나 예술 분야에서 가혹한 훈련을 시킨다. 이런 부모가 소위 아이를 위해 세운 인생 계획의 목표는 오로지 채워지지 않은 자신의 갈망을 채우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부모가 자식에 대해 어느 정도 자부심을 갖고 자식을 통해 특별한 행복을 누릴 수는 있다. 그러나 자식이 부모의 결핍을 채워야 한다면 그 안에는 언제나 학대가 포함되어 있다. 이런 경우 아이는 존재 자체로 사랑받는 게 아니라 부모의 과도한 야망이나 마음의 불만을 채우기 위한 존재로 전락한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이것을 학대로 인식한다. 그러나 아이는 홀로 견뎌야만 한다. 오로지 최고만 원하는 부모와 의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는 자신의 생존권을 쥐고 있는 부모의 압도적인 힘 앞에서 무기력한 자신을 본다.
이런 정서적 학대 속에서 아이가 부모의 목표를 실현할 수 없거나 실현하려 하지 않으면 부모는 특히 더 모질고 혹독하게 반응한다.
"제가 아버지의 꿈을 이뤄드릴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진 후로 아버지는 저를 철저히 무시했어요. 저와는 말도 하지 않았고 저를 투명 인간 취급했어요"
아버지의 기대를 채우는데 실패했던 어느 환자의 말이다. 이런 부모들은 자기 정당화에 능숙하다. 그들은 오로지 자식을 위해,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랬다고 주장한다. 부모가 요구한 능력을 자식이 발휘하지 못하면, 그것은 모두 자식이 너무 게으르거나 너무 나태하거나 너무 멍청하거나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의 욕구를 채우지 못한 자식이 받아야 하는 가혹한 멸시나 무시를 보면, 그건 결코 자식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명확해진다. 자식의 행복을 위한 것이었다면 부모의 태도는 이해와 인정, 자상함과 애정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아이들은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거나 선택하지 않을 역할을 강요받는다. 그리고 이런 역할을 맡는 것이 자신의 소망이라고 믿도록 세뇌된다. 그렇게 아이의 진짜 욕구는 억압되고 무시된다.
아이의 의지가 완전히 꺾이면 아이는 말 잘 듣는 인형이 된다. 그러나 고유한 인격 없이 자신의 목표도 타인의 목표도 이룰 수 없는 아이의 순종이야말로 부모가 가장 싫어하고 경멸하는 것이다.
순종밖에 모르는 아이는 부모가 세운 높은 목표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아이는 부모로부터 신랄한 질책과 멸시를 받는다. 이때 아이는 절망감과 무력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렇게 끝없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폭력적인 부모가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아이는 철저한 실패자가 되는 방식으로 부모에게 복수하기도 한다. 이것은 부서진 영혼이 방어에 나서는 것과 같다. 부서진 영혼은 폭력적인 가해자가 목표를 이루지 못하게 나름의 방식으로 앙갚음을 한다. 일부로 복수 형식을 택하는 아이들도 드물지 않다. 실패도 폭력에 대한 저항이다. 불행과 파멸에서 승리의 맛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아이의 피학과 파멸 욕구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폭력적으로 착취하려는 부모보다 스스로 파멸을 선택해 착취를 막은 아이가 더 강한 것이다.
아이는 부모가 부모 자식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욕구만 챙긴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자식의 행복보다 이웃과 친척의 부러움을 사는 걸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낀다. 이런 부모의 태도 뒤에 감춰진 비정한 이기주의에 맞서 아이는 자신의 인생을 무너뜨리고, 그것으로 부모에게 실패의 벌을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서적 학대를 겪어야했던 사람들은 자신을 방어하는 법과 인생의 목표를 추구하는 법을 가정에서 배울 수 없었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들 역시 분노를 표현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주 열등감을 느끼는데 특히 권위적인 사람 앞에서 불안하고 무기력하다. 자신이 계속 받아왔던 멸시의 창끝을 결국 자기 자신에게 돌리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경계를 침범해 착취하고 억압했음에도 그들은 잘못의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다. 밖으로 표출하지 못한 공격성이 스스로를 향한다. 갈등이 생기면 언제나 뒤로 물러나고 회피하며 모든 고난을 자처한다. 이들에게서도 희생자 콤플렉스가 목격된다.
그 결과 심신 상관 질환과 중독 질환이 생긴다. 특히 술은 처음에는 위안을 주지만 곧 장기 마취제가 된다. 이런 과정을 밟아온 적지 않은 중독 환자들은 전형적인 델타 유형으로 하루 종일 술을 마신다.
부모의 과도한 요구에 자식이 반항을 하거나 고집을 부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반항 역시 순응의 한 방식이다.
부모의 과도한 요구에 무조건 순응하는 것이 싫어서 많은 아이들이 일부러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게 행동하기도 한다. 그들은 공부를 포기하고 학교를 그만두고 일부러 재능을 썩히는 등 쓸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총동원해 거부의 뜻을 전달한다. 그리고 이것이 부모 자식 간에 공공연한 다툼을 일으킨다.
이때 자식을 이해할 수 없는 부모가 가장 자주 하는 비난이 다음과 같은 말이다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데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아이는 부모가 기대하는 것과 정확히 반대로 행동함으로써 부모의 폭력에서 벗어나려 한다. 부모가 A를 하라 하면 아이는 B를 하고 부모가 B를 하라 하면 아이는 다시 A를 한다. 이것 역시 순응의 일종인데 정반대로 하는 순응이다.
있는 그대로 사랑받는 것, 아이가 바라는 것은 오직 이것 뿐이다.
그러나 이것이 이해되지 못한 채 양쪽 모두에게 깊은 상처만 남긴다. 부모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는 차라리 부모와의 모든 관계를 포기하려 한다.
이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강한 적개심과 해소되지 않은 갈등이 늘 따라다니면서 부모와의 부정적 연결 고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부모는 아이의 특정 행동에 관심을 보이고 칭찬하고 기쁨을 표현한다. 아이의 존재 이유가 오직 부모의 목표를 실현하는 것이라면 부모는 그저 자신만을 사랑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런 부모는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위해서라고 늘 주장한다.
이런 아이들은 부모의 요구에 순응할지, 아니면 일부러 실패해서 반항할지 내적으로 갈등하고 분열된다. 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의 요구와 다른 사람의 요구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그러므로 어른이 되어서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행동 방식은 두 가지뿐이다. 다른 사람의 요구에 순응하고 복종하느냐, 아니면 고집스럽게 회피하느냐. 이런 분열은 대부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런 내적 문제를 가진 사람들은 관계에서 실패를 거듭하기 쉽다.
그들은 부정적인 부모상에서 벗어나려고 애쓰지만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른다. 그들은 계속 부모에게 구속되어 있는 기분을 느낀다. 자신이 부모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런 실패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 애쓸수록
그들은 점점 더 부모의 판단에 구속된다. 게다가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도 부모의 높은 기대를 채우는 건 불가능하다.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이 일찍 생길 수록 상처는 더욱 깊다. 어린 나이에 생긴 심리적 상처는 자기실현적 예언이나 저주의 효과를 낸다. 인간은 필사적으로 이런 내면의 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이에 맞서다 보면 내면의 적은 더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이를 악물고 노력하여 좋은 성적으로 학업을 마치고 가정을 이루고 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두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기이하게도 모든 것을 다시 파괴한다. 그들은 실패하고 바닥에 쓰러진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잃은 후 그들은 다시 힘을 내 새로운 에너지로 일을 시작한다. 믿기 어려울 만큼 대단한 에너지를 발휘하여 새로운 것을 이루어 내고, 또 다시 파괴한다. 마치 그들이 행복해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어떤 제동 장치가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