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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심리치유

by 러블리김작가


*괜찮아,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하인츠 페터 뢰어 지음, 배명자 옮김에서 발췌했습니다.


동화 속 영웅들은 수많은 시험을 통과하고 장애를 극복하며

극심한 고통을 견뎌내야만 비로소 구원을 얻는다.

동화 속의 모든 고난과 역경은 좋은 결말을 위해 거쳐야 할 발달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동화는 언제나 헤피엔드고, 영혼이 인정하는 좋은 해결책을 반드시 찾아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동화는 정신과 의사인 내게 중독 환자를 치료하는 아주 유용한 도구다.


치료의 한 방법으로 환자의 상황과 일치하는 동화를 반복해서 읽으라고 권한다.

동화는 꿈이나 상상과 같은 무의식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에

동화를 읽다 보면 무의식을 자극하여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우리의 일상에 변화를 반들어 내기 위해서는 무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이것이 모든 심리 치료가 추구하는 목표다.


성폭력을 당한 사람의 심적 고통은 감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들은 평생을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고통 속에 산다.

어쩌면 겉으로 드러난 성폭력 피해 생존자 수는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성폭력 피해 사실을 숨기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고, 그들은

자신의 몸과 마음과 영혼에 무슨 일이 자행되었는지 결코 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가 주로 여성이긴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남성도 많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

특히 남성 피해 생존자들은 극심한 수치심 때문에 성폭력 피해 사실을 더더욱 숨기려 하는 경향이 있다.


성폭력은 한 사람의 인격을 짓밟는 심각한 공격이다.

피해 생존자는 거의 예외 없이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고 심한 경우에는 정신병까지 앓게 된다.

이런 범행을 당하고 홀로 견뎌야만 했던 사람들은 자존감에 상처를 입고

스스로를 미워하며 자주 비극적 인간관계를 맺는다.


떠올리기조차 힘들 만큼 감당하기 버거운 일을 겪는 사람이 그 일에서 벗어나려면

그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 일에 대해 계속 이야기함으로써 자신을 짓누르는 것에서 서서히 벗어나야

조금씩 문제를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극복할 수 있다.

그래서 고통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것은 정신 건강에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된다"는 위협적 금지는 수년간 성폭력 사실을 침묵하게 하고

더 나아가 영구적인 효력을 낸다.

피해 생존자는 평생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고민과 고통을 털어놓는 것을 포기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문제를 극복할 기회를 잃는다.

그들은 또한 평범한 일상을 살기가 힘들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상처를 홀로 견뎌야만 한다.

성폭력은 세상에 대한 아이의 신뢰를 뿌리채 흔들어놓는다.

아이는 압도적인 가해자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어떤 저항도 할 수가 없다.

성폭력은 흔히 잔혹한 신체적 폭력을 동반하기 때문에

아이는 아무 것도 느끼지 않는 절대적 무감각 상태에 스스로 빠지기도 한다.


구원과 치유는 스스로에게 달려 있따.

황금 반지, 황금 물레, 황금 실패 역시 공주의 존재를 얕잡아보지 못하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세 개의 물건은 긴 여정의 끝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은 문제 해결에 필요한 모든 능력이 이미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래서 동화는 구원과 치유를 얻기까지 공주가 아주 멀고 험한 길을 걸어야 한다는 걸 보여준다.

치유의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긍정적인 방향, 즉 치유될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래야 치유의 기적이 실현될 수 있다.


끔찍한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 공주는 인간의 첫 발단 단계인 태아 상태로 퇴행하여

아무 갈등 없이 오로지 안정과 보호만 있던 세계인 자궁으로 돌아간다.

모든 인간의 무의식 속에는 태아 시절의 완전한 보살핌과 평온함이 내재되어 있다.

감당하기 힘든 위협이 고통과 공포, 죽음의 위협과 연결될 때

극단적인 퇴행을 불러온다.

아이는 완전한 보살핌이 있는 곳, 모든 것이 마련되어 자신은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는 곳으로 돌아가

치유받고자 하는 것이다.

이제 그곳이 가혹한 학대와 감당하기 힘든 고난을 피하는 피난처가 된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보이는 기이한 퇴행 현상.


우리의 에너지는 오직 삶을 위해 써야 한다. 그런데 성폭력을 당한 사람들은 끔찍한 경험을 떠올리지 않기 위해

혹은 부정했던 감정이 되살아나는 걸 막기 위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그 때문에 일상이 무너지고 무기력해지는 것이다.


<감정 분리>

아이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부정이라는 방어 기제를 쓴다.

그러나 방어 기제는 늘 현실을 왜곡하게 한다.

부정은 성폭력이라는 상처의 깊이를 감지하지 못하게 막는다. 생존을 위해 진실을 덮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진실이 억눌리고 가로막혀 더는 감지되지 않기 때문에 현실 왜곡은 결국

현실 붕괴로 이어진다.

몸과 마음과 정신이 두려움과 공포, 고통에 압도되었을 때 탈출구를 찾지 못하면 인체는 쇼크 상태에 돌입하여

현실세계로부터 자신을 분리한다. 뱀을 만난 쥐가 갑자기 그 자리에 굳어 꼼짝도 못하는 것처럼 인체는 죽은 듯 굳어버린다. 그 상황이 끝나더라도 이런 쇼크 상태는 지속된다.

성폭력을 당한 아이는 그냥 자신과 현실을 분리한다. 그들은 몸에서 완전히 떠나 환상 속을 떠돈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가 심적 고통과 공포, 두려움에서 분리될 뿐 아니라

신체적 통증과 혐오감에서도 분리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우리 인간은 정신을 심신에서 완전히 분리해야 한다.

모든 끔찍한 일을 당한 몸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혐오하고, 결국엔 버린다.

분리의 결과는 심각하다.

감정과 감각이 트라우마에서 분리되어 제멋대로의 길을 걷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갑자기 공포를 느끼거나 구역질이 나고 심각한 불면증이 생긴다.

우울증을 비롯해 자살 충동을 느끼거나 더 나아가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반대로 과거의 비극적 사건을 무감각하고 또렷하게 되새기는 경우도 있다.

트라우마는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다양한 버튼, 소위 방아쇠를 통해

현재의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삶이 극단적으로 흔들리고 앞날을 예측할 수 없게 된다.

아이는 가해자의 압도적인 힘 앞에 무너져 기계적으로 복종하는 존재가 된다.

아이는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잃고 오로지 즉각적인 욕구만 채우려 든다.


피해자의 몸을 짓밟은 가해자는 피해자의 존엄성까지 짓밟았다.

그러나 희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고슴도치 한스>는 상체는 고슴도치이고 하체는 사람인 사내아이가 태어난다.

도슴도치 한스의 인격은 동물적이고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반쪽과

결핍되고 나약하고 인간적인 반쪽으로 분리된다.

이런 기이한 외형은 심리적 장애를 표현한다.

어린 나이에 부모에게 버려져 깊은 상처를 받은 아이의 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고슴도치 한스>는 경계선 성격 장애를 그대로 보여준다.

경계선 성격 장애를 가진 환자들은 고슴도치 한스처럼 세계과 흑과 백,

두 극단으로 분리되는 고난을 겪는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과도하게 이상화하거나, 반대로 철저하게 무시한다.

극단적으로 밀착된 공생 관계를 갈망하는 동시에 친밀함이 두려워 가까워진 관계를

스스로 다시 파괴하는 것이다.


<몸에 대한 혐오감>

몸은 성폭력 피해 생존자에게 약점이자 적이다.

몸으로 인해 여러 가지 고통스러운 일을 당했고 삶을 큰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뜨렸으니까.

몸의 장벽에 부딪힌 성폭력 피해 생존자는 언제나 생각 속으로 도망치려고 한다.

몸과 달리 생각은 구속받지 않고, 그 무엇도 생각을 해치거나 파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생각은 보호와 안정을 주는 유일한 장소가 된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것은 충돌과 갈등이다. 정신이 몸과의 사투를 시작한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는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한 몸을 혐오하고 경멸한다.

자기 비하를 멈추고 인격을 구하기 위해 정신이 몸을 버리는 것이다.

결국 몸은 증오를 받으며 인격에서 분리된다.

몸을 버리고 얻은 자부심에 모욕감이 깊은 상처를 낸다.

몸과 마음과 정신이 더는 일치를 이루지 못한다.

성폭력의 비극은 몸 뿐 아니라, 마음과 정신에도 흔적을 남긴다.

그래서 이것을 '영혼 살해'라고 부르기도 한다.


<죄책감>

죄책감은 몸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성폭력 가해자가 주입하고 피해 생존자가 받아들인 것이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잘못을 미룸으로써 마음의 짐을 벗는다.

그래서 성폭력 피해 생존자는 자신이 나쁘고, 방탕하고, 잘못을 저질렀고, 더럽다고 느낀다.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자존감은 성폭력에 의해 파괴되었기 때문에

몸을 괴롭히고 자해하는 것은 무거운 죄책감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 보려는 안간힘일 수 있다.


가해자인 고문관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대부분 부인한다.

그들은 나치당 당원으로서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계속해서 주장한다.

그들에게서 진심 어린 후회는 전혀 혹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피해자인 수감자들은 사정이 다르다. 그들은 자신이 죄책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끊임없이 찾아낸다.

가령 그들은 비밀을 폭로했고, 자신의 가치관을 저버렸고,

자기 대신 다른 사람들이 가스실로 끌려갔다는데 죄책감을 느낀다.


죄책감을 가질 이유가 전혀 없어라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는 죄책감을 극복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해주는 것이 죄책감이라는 짐을 더는데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완벽한 치유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피해자의 깊은 상처를 아물게 하고, 조각난 몸과 마음과 정신을 다시 하나로

봉합하는 치료가 더해져야 한다.


<모든 고통을 혼자 짊어지는 아이>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런 끔찍한 일을 당한 걸까?'

가해자의 잘못이 폭로되면 그 후의 삶 역시 고통일 거라는 두려움에

아이는 모든 잘못의 책임을 스스로에게 돌리려는 비합리적인 시도를 하는 것이다.


<자기 증오>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린 털북숭이 공주는 끔찍한 경험을 외면하려 애쓴다.

공주의 왕국 탈출은 심리적 탈출이다.

자기 멸시라도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은 더 견디기 힘들고 더 위험해질 것이다.

"사람들은 내 말을 안 믿어줄 거야. 나는 그런 사람이 못 돼.

나의 행복은 중요하지 않아"

여기에서도 자기 멸시가 명확히 드러난다.


<자해>

극심한 폭력과 침범을 당한 사람은 비록 철저하게 부정해 인식조차 못한다 하더라도

가해자에 대한 깊은 분노와 증오를 갖고 있다. 존재를 외면당한 이런 감정들은 뿔뿔이 흩어져 버리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힘들다.


<트라우마>

- 떨쳐낼 수 없는 기억, 사건에 대한 괴로운 생각

- 불면증, 악몽, 과민증, 집중력 장애

- 퇴행, 무관심

- 세계가 더는 안전하지 않고 예측 불가의 적으로 느껴짐. 사는 게 의미 없다고 생각

- 성적 장애: 혐오감, 신체적 접근과 접촉에 대한 두려움, 자기 증오

- 죄책감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은 비극적인 사건들이 정신적으로 통합되지 못하고

스트레스가 남는 경우가 많다.

특히 아이들은 비극적 경험을 계속해서 재현하는 경향을 보인다.

의학 용어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한다.

심리 치료의 과제는 트라우마로 인한 결과를 최소화하거나 완전히 없애는 것이다.

정신적 외상을 잘 극복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나아가 정신적 영적으로 성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희생자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삶은 고달픈 것이라 확신한다.

그러나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은 자신의 고난을 오히려 더 편안하게 느낀다.

그들은 소위 희생자 운명을 타고 났기 때문에 굳이 상황을 바꾸려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불행의 책임은 언제나 타인에게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늘 책임을 전가할 대상이 있고

그들에게서 행복을 앗아가는 장본인이 있다.

이런 책임 전가는 그들 내면 깊은 곳에 내재된, 씻을 수 없는 모욕감과 관련이 있다.

도움을 받아들이고 자기 회피와 자기 파괴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는 것보다 희생자 콤플렉스에 머무는 것이

그들에게는 더 쉬워보인다.

희생자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특히 감정이 억눌리고 때때로 분노나 슬픔, 두려움, 기쁨을 표현하는 것을 힘들어한다. 원한이 영혼을 갉아먹지만

무엇에 대한 원한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들은 쉽게 상처받고 자신을 방어할 줄 모른다. 그래서 종종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낸다. 어쩌다 자기방어를 할 때는 과잉 방어를 해서 오히려 상대에게 자신을 공격할 여지를 준다. 그러다 보면, 또 다시 스스로 희생자가 된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구원과 치유를 기다리지만, 깊은 분노가 얼어붙은 듯 갇혀 있어서 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구원과 치유의 과정은 매우 힘겹고 두려운 일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도망치거나 문제를 회피하기 쉽다.

희생자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은 도움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들은 모든 걸 혼자 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희생자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게 될 단계에서 그들은 나아가지 못하고 놀라 뒷걸음질 친다. 위협이 느껴지고 죄책감이 들기 때문이다.

털북숭이 공주에서, 온갖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망토, 검댕을 바른 얼굴, 계단 아래 벽장 생활,

혼자 도맡아서 하는 온갖 궂은 일, 그리고 무엇보다 부엌데기 말고는 아무 쓸모 없는 계집이란느 공주의 말

그녀의 진짜 정체성은 금발의 공주이자 사랑받아 마땅한 아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희생자 콤플렉스로 똘똘 뭉쳐있다.

희생자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불행과 자아를 동일시한다. 자신의 진짜 정체성에 대해 전혀 모르기 때문에 희망을 갖지 못하고, 그래서 치유가 힘들어진다. 이때 동화가 특별한 방식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

희생자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려면 자기 내면 깊은 곳에 고유한 인격이 살아있다는 걸 아는 것이 중요하다. 감춰진 진짜 정체성을 발견할 때, 비로소 자신의 상처로부터 해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진 에너지 가운데 하나가 믿음이다. 긍정적인 믿음은 우리를 성장시키지만, 부정적인 믿음은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들어 희생자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조차 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환자의 긍정적인 자아상이 힘을 얻고 우위를 점할 때, 비로소 치유가 가능하다.

"굳게 믿으면 현실이 된다"

'내 안에 고유한 존재가 아름답고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다는 긍정적 자아상을 회복하여, 그 믿음을 현실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는 늘 남편을 그리워했어요. 그렇지만 막상 남편을 만날 날이 가까워지니 두려움이 커져요.

제가 잠자리를 거부하면 남편이 얼마나 괴로워할지 잘 아니까요.

남편을 잃고 싶지 않고 그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고 싶은데 만약 그게 안 되면

저는 또 스스로를 얼마나 원망할까요? 이제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털북숭이 공주가 상반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녀의 영혼이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엇보다는 상대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동등한 관계를 맺지 못하게 막는다.

왕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결국 도망치고 마는 공주라는 비유는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의 현실과 정확히 일치한다.

영혼 살해를 당한 사람들은 생존 전략을 마련해야만 했다.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망토를 두르고, 고목 속에 몸을 숨기고, 계단 아래 벽장에 살면서 부엌데기 말고는 아무 쓸모도 없는 하녀로 살아간다.

털북숭이 공주의 탈출은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이 겪는 고난의 길과도 같다.

깊은 절망에 빠진 공주는 자신의 진짜 인격을 포기하고 다른 인격(희생자 인격)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 과정이 곧 탈출이다.

압도적인 힘과 잔혹함에서 도망치는 것 말고 과연 뭘 할 수 있겠는가

마음에 상처를 입은 이들에게서 희생자 인격은 쉽게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안정감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를 계속 불행하게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제3자가 보기에 이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어째서 불행을 자초할까? 어째서 자신을 해치고 스스로를 괴롭힐까?

털북숭이 공주의 치유 과정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려는 시도로 처음 시작된다.

공주는 마침내 굴욕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낼 용기를 낸다. 공주는 계단 아래 벽장으로

급히 가서 검댕을 지우고 해와 같은 금빛 드레스로 갈아입는다.

왕자가 공주의 미모에 감탄하며 마음 속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어디서 왔을까?' 생각했으니 이제 남은 건 행복한 결말 뿐이다.

두 사람의 행복을 막을 게 뭐란 말인가.

이렇듯 모두가 행복을 기대하지만 왕자를 연인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털북숭이 공주의 부정할 수 없는 내적 현실이다.

공주는 두려움에 떨며 왕자로부터 도망쳐야 했다. 구원이나 치유까지는 아직 먼 길이 남은 것이다.

그러나, 공주는 일단 시작했고, 그것만으로 벌써 많은 것을 얻었다.

'도전하는 자가 승리한다'는 털북숭이 공주를 위한 구원의 모토다. 공주의 진짜 정체성을 죽이는 것이

바로 아무 것도 시도하지 않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이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계단 아래벽장에 산다. 그들은 희생자 콤플렉스에 갇힌 채 출구를 찾지 못한다.

부엌데기 털북숭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녀의 극단적 분열을 이해할 수 있다. 낮은 신분으로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왕자와 춤을 추기 위해서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고, 큰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털북숭이는 왕자의 청을 들어주지 않는다. 왕자를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직 누군가와 안정된 관계를 맺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성폭력 트라우마를 충분히 치유하고 극복하지 않는다면 성숙한 연애나 결혼생활도 결코 할 수 없다.


M은 자신의 잘못된 태도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를 깨달았고, 그런 태도로 얼마나 많은 남자들에게 상처를 주었는지 반성하기 시작했다.

M은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고 성찰했다. 그리고 자신이 남자들에게 무례하고 불친절하며 더 나아가 그들을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자들과의 만남 자체를 회피하는 경우도 잦았다. 다행히 M은 자신의 불안감을 치료 모임에서 터놓고 이야기했고 서서히 치유되어 갔다.

M의 사례에서는 이런 에너지가 모든 남자들에게 향했고 그들이 가해자를 대신해 벌을 받아야했다.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의 대부분은 어린 시절에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종종 성매매를 남자를 지배하는 권력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과거의 성폭력 피해 여성이 이제는 가격 결정권자가 되고, 기본적으로 남자들을 멸시하며, 그들의 성욕을 이용해 상대를 제멋대로 조종하려 든다. 그러나 이런 식의 복수는 영혼의 황폐라는 큰 대가를 치르게 한다. 성매매와 성폭력의 밀접한 연관성을 알게 된 이후, 이 여성은 더 이상 성매매를 지속할 수 없었다고 한다.


치유는 혼란으로 시작된다. 설령 첫 시도가 실패하더라도 그것은 변화를 요구하는 내적 에너지라는 매우 중요한 원동력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마음 속 깊은 상처, 즉 정신적 트라우마가 치유와 구원을 기다리고 있다는 증거다.

지금까지 파괴적으로만 이용되었던 에너지를 치유에 도움이 되는 긍정적 에너지로 이용할 수 있다.


<치유의 도구>

황금 반지, 황금 물레, 황금 실패


황금 반지는 공주의 내면 깊은 곳에 안정된 관계를 맺을 능력이 잠재해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안정적인 연인 관계나 부부 관계를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성숙한 자아와 자립성, 자기 결정력이 있어야 한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사람은 배우자를 선택하거나 결혼 생활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도

부모와의 문제를 끌고 간다.

이들은 배우자를 선택할 때 반복 강박이라는 무자비한 심리적 메커니즘을 따르기 때문에 부모와의 문제를 반복할 만한 배우자를 선택한다. 물론 문제를 해결하고 마침내 마음의 안정을 찾고자 하는 무의식적 소망도 함께 가져간다. 그러나 배우자 역시 똑같은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 부부가 각자의 비극을 반복하는데, 무의식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반지'는 일치와 온전함을 상징한다. 털북숭이 공주의 조각난 인격을 위해서는 진짜 정체성, 영혼의 아름다움, 결백을 되찾아야한다.

성폭력으로 인해 관계 맺는 능력에 깊은 상처를 입은 피해자의 내면이 먼저 열려야 한다. 다시 말해 자기 안에 있는 남성적 능력과 결합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남성적 능력이란 우선 자존감이 발달하고 내적으로 만족스러운, 한마디로 안정되고 성숙한 인격을 말한다. 이런 능력이 갖춰졌을 때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능력도 생긴다. 그러나 이것은 스스로 자신의 내적 고난을 알고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할 때만 얻을 수 있다.


물레는 농경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 도구 중 하나로, 옷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실을 잣기 위해서는 굉장한 인내심이 요구된다.

털북숭이 공주같은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의 삶과 내면은 무질서하게 헝클어져 있고, 혼돈에 싸여있기 때문에

헝클어진 원료 더미에서 튼튼한 실을 잣듯 치유를 통해 혼돈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공주는 관계 맺는 능력(황금 반지), '혼돈을 정돈하는 능력(황금 물레)' '내면의 비극에서 벗어나는 능력(황금실패)'도 잘 챙겨 나왔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내면 깊은 곳에는 이런 능력이 존재하는데, 이것은 다른 사람 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망가트릴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사람의 내면 깊은 곳에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을 때, 비로소 우리는 계단 아래 벽장에서 걸어나올 수 있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은 치유되지 않은 자신의 문제를 모든 관계에 투사하려고 한다. 이때 정확한 인과 관계가 드러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그저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고, 희생자 콤플렉스를 심화시키고, 자기애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 이 모든 고통스러운 장애와 증상과 관계 문제가 성폭력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걸 상상하지 못한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의 주요 문제이자, 가장 큰 증상은 자신을 죄 많고 더럽고 파렴치한 사람으로 여기는 것이다.


<성폭력 피해 인지하기>

자신이 성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부정해왔던 여성 환자 E는 홀로트로픽 호흡을 하던 중에 공포와 통증, 끝없는 황량함과 함께 성폭력 피해를 입었던 당시 상황을 떠올리게 되었다.

치유의 첫 걸음인 털어놓기는, 성폭력 경험을 인지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피해 생존자 중에서는 성폭력 경험을 기억하지만 그것을 믿지 않으려 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이들은 정말로 그런 사건이 있었는지 계속 의심하며 자신에게 묻는다.

이렇게 된 이유는 상처 입은 피해자가 홀로 남겨졌고 의지할 만한 누구에게도 이해를 받지 못한 데 있다. 이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홀로 남겨둔 무리에는 의사, 사회 복지사, 심리 치료사 뿐 아니라,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경찰과 법조인들 역시 속해 있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가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의사나 심리 치료사에게 말하려면, 큰 고통을 견뎌야 한다.

오래된 두려움(사람들이 내 말을 믿어줄까?)이나 수치심(이제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이 다시 살아나기 때문이다.


병원이나 자조 집단에서 만난 피해자들 중에는 성폭력을 인지하고 표현하는 것으로 치유가 완성되었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진짜 치유는 그때부터 시작이다.

털북숭이 공주처럼 살아야했던 사람들에게는 쉽게 떼어낼 수 없는 고착된 태도가 있다. 오랜 세월 그들은 죄책감, 자기 멸시, 과잉 순종 등으로 이루어진 희생자 콤플렉스를 안고 살아왔다. 그 콤플렉스는 마치 피와 살처럼 그들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치유를 위해서는 작은 변화가 아닌 극단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계단 아래 벽장에서 복종, 자기 멸시, 자기 부정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던 사람이 이 모든 것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본연의 아름다움을 되찾아야 한다. 동화의 비유를 진지하게 살피면 우리는 진짜 구원을 위한 모든 것이 동화에 담겨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실제 현실에서는 아주 긴 과정이다. 설령 피해자가 심리 치료를 통해 큰 변화를 이룬다 하더라도, 혹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능력을 회복하여 만족스러운 결혼 생활을 하게 된다 하더라도 정신적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은 평생의 과제로 봐야한다. 몸에 밴 희생자 콤플렉스의 잔해가 계속해서 등장하고, 극복을 호소하기 때문이다.


- 성폭력 경험이 삶에 어떤 식으로 드러났는가

- 희생자 콤플렉스는 어떤 식으로 드러났는가

- 섭식 장애, 알코올 의존, 약물 의존이 있는가

- 자학적 태도가 있는가

- 결혼 생활과 부부 관계는 어떤가

- 자존감은 어떤가

- 성폭력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다른 장애가 있는가?


결산 보고서 작성 후, 가장 괴로운 행동 장애가 무엇인지 찾아내야 한다.

자살 충동, 자해, 중독 질환이 우선순위여야 한다.

이런 증상들은 어떤 경우든 전문가의 도움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부단한 노력 끝에 비로소 그 연결 고리를 깨닫게 된다.

처음에 그들은 고난의 책임을 가해자가 아닌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서 찾으려 하며

좀처럼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의 고통을 확대한다.

지금까지 분노와 화, 증오 같은 중요한 감정을 억눌러왔기때문에

가해자를 탓하지 못하고, 모든 잘못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으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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