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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심리치유

by 러블리김작가

*괜찮아,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하인츠 페터 뢰어 지음, 배명자 옮김에서 발췌했습니다.


성폭력 사각지대에 혼자 남겨진 이들을 위한 심리치유서

<남성성과 여성성의 조화 이루기>


털북숭이 공주와 왕자 사이에 구원을 위한 결정적인 대면이 동화의 끝부분에서 이루어진다.

마침내 왕자는 털북숭이 공주의 거짓말을 꿰뚫어보았고,

공주가 더는 자신의 정체를 부인하지 못하도록 한다.

그리고 도망치려는 공주를 가벼운 완력으로 붙잡는다. 공주가 자신의 진짜 정체성을 되찾도록

제3자가 압박하는 상황이다.

왕자가 공주를 붙잡고 망토를 풀자, 공주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더는 숨길 수가 없다.

이 부분을 제3자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한다거나,

배우자만이 피해 생존자를 불행한 삶에서 구원해줄 수 있다는 식으로 해석할 위험이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왕자는 털북숭이 공주가 발달시켜야 하는 남성성을 상징하고 왕자와의 결혼은

여성성과 남성성의 결합을 의미한다.

모든 남성에게 여성성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여성도 남성성을 가지고 있다.

남성성과 여성성의 조화로운 균형을 상징하는 동양의 음양 상징을 생각해보라.

남성에게는 여성성이, 여성에게는 남성성이 씨앗처럼 들어 있다.

오로지 남성적인 특징만 선호하는 남자들은 '마초'가 되고, 깊은 관계를 맺는 여성의 능력과

배우자의 희생을 무시하는 한 그들은 미성숙한 상태로 남는다.

한편, 오로지 여성적인 특징만 발달시킨다면, 자립성과 자율성이 부족할 수 있다.

남성성과 여성성이 균형있게 결합할 때, 비로소 성숙하고 자주적인 인격이 완성되는 것이다.

성폭력 피해 생존 여성들의 경우, 그들은 남성성을,

즉 자신을 방어하고, 분노와 화를 표출하고, 자신의 진짜 욕구를 돌보고,

삶을 자주적이고 계획적으로 이끌어가는 능동적 행동 방식을 발달시키지 못한다.

자신이 끌어안고 있는 고통에 분노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희생자 콤플렉스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남성성을 얼마나 발달시키느냐에 따라, 치유과정이 크게 좌우된다.

털북숭이 공주와 왕자의 결혼은,

털북숭이 공주의 남성성이 건강하게 발달해 여성성과 조화롭게 결합했다는 것을 상징한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그릇은 깨지기 쉽거나 너무 얇고 약해서

특정 형태를 유지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자기 방어 능력을 발달시키는 것이 중요한 치료 과제다.

털북숭이 공주가 왕자를 만나듯, 성폭력 피해 생존자가

내면의 왕자를 만났다면 치유의 과정에서 중요한 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내면의 왕자는 인격이라는 그릇이 기본적인 형태를 갖췄음을 상징한다.

'내면의 왕자'는 무너지고 의존적이었던 인격을 자기 결정력과 자의식이 있는 안정된 인격으로 발달시킨다.

오랫동안 의존적이고 순종적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자기 안의 남성성을 발달시키면서

다른 극단에 빠지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공격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치료의 관점에서 볼 때

잠시 내면의 왕자가 강조되어 남성적 특징이 강해진다 해도 의미있는 변화로 여길 수 있다.

털북숭이 공주 같은 사람들은 특히 성적 영역에서 싫다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내면의 왕국에서 왕자, 즉 통치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보다 자신의 진짜 욕구를 발견하고

자신의 의지를 감지하는 감각을 발달시킨다는 뜻이다. 내면의 왕국에서 통치자가 되어 보지 못한 사람들은

어린 아이가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법을 배울 때처럼 계속 도전하고 시험해봐야 한다.

털북숭이 공주같은 사람들은 특히 남성적 감정에 큰 손상을 입는다. 비극적 사건의 트라우마로 인해

분노와 화를 표출하지 못하면 자신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쏘게 된다.

그러므로 이런 감정을 표출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한 치료 과제다.


여성 환자는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저항하고, 분노와 화를 표출하고, 자신을 방어할 용기를 냈다.

그동안 자신을 어떻게 방어해야할지 몰랐던 그녀는 자신을 폭력적인 남자들의 노리개로 만들었다.

남성성을 내면에서 찾지 않고, 만나는 남자들에게서 찾았던 것이다.

성폭력 같은 피해로 인해 트라우마가 생긴 사람은 분노와 화를 잘 표출하지 못한다. 많은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이 자신의 깊은 분노와 증오에 도달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그들은 이런 감정을 단 한 번도 온전한 강도로 인식하지 못한다.

감정 표출을 가로막는 방어벽을 없애기 위해서는 두려움부터 극복해야 한다.

간혹 가해자가 이미 늙고 약해졌거나 죽어서 실질적 위협이 사라진지 오래라고 해도

피해자는 여전히 두려움에 지배되고, 치료하는 안전한 틀에서조차 과거의 사건과 마주하기를 꺼린다.


<가해자와 대면하기>

치유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가해자와의대면(때에 따라 간접적 대면)이다.

비극이 낳은 역경에 대해 분노와 화를 표출해야 한다.

가로막혀 있던 감정을 쏟아내야 희생자 콤플렉스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해자가 분노를 표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치료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피해자는 그동안 가해자와 자신을 동일시해야만 했고, 특정한 관점을 강요 받았던 탓에

대개 가해자에게 아무런 분노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 자신이 겪는 비극이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일이라고 상상하는 것이 좋다.


치료 모임에서는 그녀 안에 갇혀 있던 분노와 화, 증오를 찾도록 도왔다.

특히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다른 참가자들은 그녀가 사건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도록 격려했다.

또한, 가해자에게 편지를 쓰라는 숙제를 받았다.

역할극을 통해 가해자에게 대항해 보는 것 역시 가로막힌 분노와 증오를 표출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자신의 분노와 화를 마음껏 표출하고 기운이 다 빠질 때까지

욕을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완전히 녹초가 되었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듯 밝은 얼굴이었다.

피해자가 가해자와 직접 마주하는 것이 가능한 단계가 되면,

아주 신중하고 철저하게 만남을 계획해야 한다.

예를 들면, 가해자가 죽었거나 더는 찾을 수 없을 수도 있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최악의 결과를 예상해야 할 때도 있다.

실제로 위험한 가해자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이 단계는 큰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할 만큼의 큰 용기가 필요하다.


N의 목표는 부모를 마주하고 이해함으로써 잃었던 부모를 되찾는 것이었다.

비록 이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N은 자립성을 확립하고, 남성성을 발달시키기 위한 첫걸음을 떼었다.

우선 부모와 연락을 끊고, 자립하는 길을 찾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을 방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녀의 자존감은 눈에 띄게 높아졌다.

가해자가 피해 생존자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비는 일은 드물다.

N의 부모는 적어도 성폭력 사실을 시인했다.

꽤 많은 피해자들이 거짓말쟁이라든가, 가족을 불행에 빠트린 장본인이라는 비난의 화살을 받는다. 말하자면

그들은 결국 가족에게 거부당하고 더 나아가 보복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가해자와 직접 마주하기 전에 다음의 내용을 명확히 따져봐야한다.


-가족의 거부를 견뎌낼 수 있는가

-의지할 만한 든든한 관계(친구, 자조 집단, 치료 공동체)가 있는가

-가해자를 직접 마주한다면 신체적 폭력 같은 위험 요소가 있는가

-당사자 외에 다른 희생자(형제자매, 그 밖 친척)가 생길 가능성이 있는가

-법의 보호가 필요한가


가해자와 대면할 때 비로소 명확한 진상 규명이 이뤄진다.

따라서 대면은 피해자에게 용감한 첫걸음을 내딪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그 행위는 격려받아 마땅하다.

희생자 콤플렉스가 생길 수 밖에 없었던 곳, 억압과 멸시가 있었던 바로 그곳에서

피해자는 자기를 방어하고 의사를 표현해야 한다.

피해자는 내적 노예 생활의 시작점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가해자를 대면해야 한다. 그래야 과거의 종속적 패턴이 깨지고

새로운 공간이 생기게 된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은 너무 오랫동안 좌절했고 늘 희생자 역할을 자처했다.

가해자에 대한 분노는 치유의 시작이다. 거기에서부터, 동화 속 왕자가 상징하는

자기 방어를 할 줄 아는 남성성이 발달하고, 결혼식이 상징하는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면 희생자 콤플렉스는 어느 새 사라지고

자존감을 새롭게 키울 수 있다.

가해자와의 대면은 많은 피해자에게 마침내 정의를 경험하는 기회로 인식된다.

그들은 잘못을 뉘우치는 가해자의 모습에서, 보상을 받고자 한다.

그러나, 가해자가 뉘우치고 용서를 비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게다가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영혼이 상처 입었던 일이 사라지거나, 희생자 콤플렉스나 심신 상관 질환 같은 피해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설령 가해자가 자신의 행위를 후회한다 하더라도 가해자와는 최대한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

그래야 동화에서처럼 다른 왕국에서 손상된 인격을 치유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폭력 피해 생존자에게 공감하고 그들이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동화 속 왕자처럼 부드럽지만 확도한 태도로, 피해자가 자신의 진짜 정체성을 살도록 격려해야 한다.


<치료 공동체>

희생자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은, 구강기 발달 단계로 돌아가는 퇴행을 보인다. 구강기는 인격 발달의

초기 단계로 다른 사람의 도움이 있어야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시기다.

구강기에 머무는 사람들은 자기를 대신해서 다른 사람이 결정하기를 기대하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돌보고 보호하고 달래고 도와주기를 바란다.

타인에게 의존하고 집착하는 경향은 치료 공동체를 통해 치료했을 때 가장 효과적이다.

공동체 안에서 다른 환자들과 지내다 보면 평소 생활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이 불거질 수 밖에 없다.

그러면 비로소 자신의 자학적인 태도를 알아차리고 건설적인 대안을 마련할 기회가 생긴다.

지금 여기가 치료 공동체의 원리다.

치료 공동체의 또 다른 원리는 애정이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가 진정한 자신을 만나고 마음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걸 잘 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가 좋은 마음으로 대하고 서로 이해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공동체에서 치유의 힘을 기대하기 힘들고, 특히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은 공동체와 동료를 믿지 못하고 마음을 열지 않을 것이다.

극단적 학대, 위협, 가학은 탕니의 결정을 따라야 하는 극단적 형태의 순응에 해당한다. 그래서 치료 공동체에서 지켜야만 하는 규칙, 다른 회원들의 기대, 수치심과 스트레스를 주는 토론의 주제, 운동 요법 때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신체 접촉의 두려움, 상상을 통한 트라우마 반복 공포 등은 타인의 결정에 순응해야 하는 강요나 압박으로 느껴질 수 있다.

타인과 경계를 두지 못하고 자기 결정력이 없는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은 조력자, 치료사, 동료 환자 등 다른 사람들이 해결책을 찾아 강제로 그들 손에 쥐여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렇게 얻은 해결책은 치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 치료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금세 파괴적인 행동방식이 재발한다.

변화는 오직 두려움을 극복했을 때 일어난다. 자조 집단이나 치료 공동체에서 두려움을 느끼게 되면 과거의 부정적 경험이 힘을 얻게 된다. 이런 두려움은 심지어 정신병으로 변질될 위험도 있다.

치료 공동체는 안전한 장소여야 하고, 몸과 마음을 회복해 사회로 돌아갈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처참하게 인격이 짓밟힌 사람들은 서로 신뢰하는 분위기 속에서만 진정한 자아를 찾는 걸음마를 시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심리 치료사들은 이런 파괴적인 과정이 반복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특히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경우 반복 경향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그만큼 집중적 주의가 요구된다.


<관계 욕구>

관계를 맺는 능력은 더 이상 죄책감과 수치심에 가로막히지 않는다.

남성성의 발달을 통해 자립적이고 자의식이 있는 인격이 형성되면서

성숙한 성과 사랑이 이뤄진 것이다. 검댕이 칠해지지 않은, 반지가 끼워진 하얀 손가락이 이것을 상징한다.


<가해자의 잃어버린 여성성 회복>

가해자들도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었고, 그런 경험이 없더라도, 자신을 죄많고 더러운 사람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이때 가해자는 잃어버린 순결을 되찾으려 필사적으로 애쓴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그것을 되찾지 못한다. 그의 삶은 고난에 짓눌려 점점 더 힘들고 견디기 어려워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해결책을 발견한다. 순결한 사람과 결합함으로써 간절히 그리워하던 것을 다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강행 이후 인격은 더 피폐해지고, 결국 내적 평화에 대한 갈망만 더 커진다. 자신은 죄많고 더러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깊게 뿌리내리며 순결에 대한 갈증만 깊어지는 것이다.

공주의 아버지는 자신이 문제의 해결책을 갖고 있다는 걸 알지 못한다. 이 해결책을 외부에서만 찾으려 하기 때문에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만다. 당연히 마음의 상처를 없애는 직접적이고 확실한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치유는 오직 내면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자기 안에 있는 여성성을 발달시켜야 한다 .

피해자가 남성성을 발달시켜야 하는 것처럼 가해자는 여성성을 발달시켜야 균형 잡힌 성숙한 인격이 발달할 수 있다.

결코 피해자에게 넓은 아량으로 가해자를 이해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는 틀림없는 범죄자이고, 순진한 사람을 괴롭히고, 학대하고, 상상도 못할 해를 입힌 파렴치한 어른이다.

"당신 안에 있는 상처받은 아이를 제가 사랑할 수 있게 된다면, 저는 당신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치료사의 대답은 전체적인 치료의 방향을 제시한다. 어쩌면 피해자였을지도 모를 가해자가 수행해야 할 과제가 바로 이것이다. 내 안에 있는 상처받은 아이 사랑하기. 내적 치유의 과정으로 자신의 순결함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내적 성장을 위한 과제:의미 찾기>

모든 인간은 자신에게 닥친 불운과 고난에 직면할 때 인생의 중요한 한걸음을 뗀다.

어린 시절 가혹한 비극에 직면했던 사람들이나 잘못한 것도 없이 부당하게 깊은 죄책감에 빠져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거기에서 벗어나는 한걸음은 특히 중요하다.


살면서 만나는 고난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의미 있는 자세일까. 그것은 고난을 성장의 과제로 받아들이는 것 뿐이다. 운명에 저항하는 한 치유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운명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그 운명에서 벗어나게 된다.

'왜 하필 내게 이런 힘든 일이 닥쳤을까?' 이런 물음에는 대답이 없다.

이 질문에는 출구가 없다. 피해자들은 지금도 잘못한 게 없고,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의미를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공주와 왕자의 결혼식에서 드러난다.

둘의 결합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능력을 되찾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런 문답이 가능하다.

삶의 진짜 의미는 무엇인가?

아픈 상처와 고난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고 사랑받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사랑을 줄 수 있고,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다.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사랑을 받아도, 그것이 순전히 자기만을 위한 사랑이라고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 마음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랑의 파괴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랑을 다시 찾는 것이다.

<털북숭이 공주>가 전하는 메시지도 바로 그것이다.

삶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답할 사람은 오로지 자기 자신 뿐이다.

자신의 고통스러운 트라우마와 직접 대면할 때, 그 의미도 찾을 수 있다. 고난은 의미를 발견하라는 무의식의 간절한 요청이다.


<가해자를 용서해야 할까?>

대답은 명확하게, 그렇다여야 한다. 그러나, 정말로 용서가 가능할 때 해야 한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이 분노, 증오, 화를 제대로 표출하지 못한다. 이런 감정들은 너무

철저히 외면되어 아예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희생자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치유와 인격 발달을 위해서는 반드시 분노, 증오, 화 같은 감정을 건설적으로 다뤄야 한다. 성폭력으로 손상된 이런 중요한 영역을 회복할 때 비로소 치유가 가능하다.

증오심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마땅한 유용하고, 정당한 감정이다. 내면의 거칠고 불편한 진짜 감정을 대면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감정이다.

털북숭이 공주가 왕자와 결혼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정체를 가렸던 검댕을 모두 씻어내야만 한다.

자신과 타인에 대한 어두운 감정에 가려진 '사랑할 줄 알고 사랑받아 마땅한 인격'을 화와 분노로부터 해방해야 한다. 증오하는 것과 증오에 사로잡혀 사는 것은 다르다. 증오에 사로잡힌 사람은 용서도 할 수 없다. 제대로 증오할 줄 아는 사람만이 용서도 할 수 있는 것이다.

피해자들 대부분은 가해자를 결코 용서하지 앟겠다고 말한다. 이때 그들이 느끼는 증오심은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복수심이다. 가해자에 대한 용서를 자신에 대한 배신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못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봤을 때 문제가 된다.

증오는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를 악화시킨다.

증오심에 사로잡힌 사람은 가혹해지고, 신랄해지고 병들어간다. 그들은 결국 자신에게 몹쓸 짓을 저질렀던 가해자에게 계속 종속된 채로 살아가고, 이것은 깊은 증오와 분노의 창끝을 다시 자기자신에게 겨누는 꼴이 된다.

이런 격한 감정을 허락하려면, 강한 내적 저항을 이겨내야 한다. 이때, 성폭력 피해 경험과 같은 강도의 고통과 두려움을 느끼고, 당시의 분리된 감정에 다시 휩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분명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직면해야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앞에서 확인했듯, 내면의 왕국에 도달한다는 뜻이다.

심리 치료는 증오심을,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경우에는 강한 혐오감을 허락할 수 있도록 돕는다. 바로 이런 감정 안에 변화의 열쇠가 숨어있기 때문에 감정을 허락하는 것은 마음을 치유하는데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는 여러 치유 기법과 다양한 과정을 통해 안전한 공간에서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게 된다.

트라우마 환자들은 매우 예민해서, 치료를 받는 도중 또 다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을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트라우마를 직면하는 과정은 조심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 중증일 경우에는 입원 치료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어떤 형태의 치료든 고통이 따를 수밖에 ㅇ벗다.

치료는 상상 과정으로 시작된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먼저 상상만으로 사건을 그려본다.

감당하기 힘든 사건에서 거리를 두고, 더 나아가 내면의 상을 축소하거나 확대함으로써 비극적 사건과의 거리를 마음대로 조절하는 법을 배운다.

내면의 상을 축소하면 공포도 작아진다. 훈련을 통해 다양한 상상 기술을 익히는 것이다.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의 큰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은 훗날에도 악몽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잠들기를 두려워하고, 불면증이 생기면서 정신에 심각한 해를 입는다.

악몽은 상상 리허설로 치유를 시작해볼 수 있다.

'환생 요법'이라 불리는 홀로트로픽 호흡 요법은 매녕 깊은 곳에 숨어있는 갈등을 의식하게 하는 기술이다.

고통스럽고 힘겨운 과정이지만 많은 환자들이 이 과정 후에, 큰 안도감을 느낀다.

'게슈탈트 심리 치료'를 통해 손상된 인격과 만날 수 있다. 역할극이 큰 도움이 된다.

사이코 드라마도 비슷한 방식으로 치료에 도움이 된다. 치료 공동체에서 다른 환자들이 특정 인물이나 손상된 인격 역을 맡아 내적 갈등을 재현한다. 그러면 환자는 훨씬 수월하게 자신의 문제와 만날 수 있다.

효과적으로 인정받는 의료 최면은 상상과 최면 상태에서 트라우마를 경험하여 분리된 인격 조각들을 다시 하나로 합치는 것이다.

'생체 에너지 요법'은 신체를 통해 영혼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특정한 신체 훈련을 통해 억눌린 감정을 풀어낼 수 있다. 심리 치료에서 신체적 연결은 늘 중요한데, 상담만으로는 트라우마 영역에 충분히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본딩 심리 치료'는 주로, 울부짖음이 동반되는 격렬한 감정 표출을 하도록 유도한다. 환자들은 크게 소리를 지름으로써 분노와 혐오, 증오를 폭발시키고, 마음이 한결 후련해지고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다.

많은 경우 성에 대한 자기 결정력을 키우도록 돕는 '성 치료'가 불가피하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이 도저히 성관계를 할 수 없는 감정 상태면서 스스로 받아들여야만 한다거나,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성치료의 필요성을 인지하게 될 때 약간의 수치심을 느낀다.

일상의 갈등을 해소하고, 만족스러운 성관계를 가지기 위한 치료는 장기적인 과정이 될 수 밖에 없다.

과연, 인간은 언제 충분히 슬퍼했고, 언제 한 주제에 충분히 몰두했을까? 나는 결국 의식이 필요하다고 답하고 싶다.

영국의 심리학자 필리스 크리스탈은 많은 고통과 상처를 준 가해자로부터 영원히 벗어나게 해주는 일종의 백일몽 의식을 개발했다.

성폭력 같은 무거운 트라우마는 기본적으로 한 가지 치료법만으로 치유되기가 힘들다. 다양한 치료법을 적용해야 한다.

치료의 목표는 자기 자신, 그리고 타인과 화해하여 사랑하고 사랑받는 능력을 발달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먼 길이다. 동화에서처럼 어려운 과정을 거쳐 마지막에야 비로소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고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 도달했을 때에야 용서도 가능해진다.

성급한 용서는 고통, 분노, 두려움, 증오, 혐오와 대면하지 않기 위한 위선일 수 있다.

그러면 희생자 콤플렉스는 그대로 남고, 동화 속 상징처럼 털복숭이 공주는 다시 계단 아래 벽장으로 돌아가

계속해서 하찮은 존재로 힘겹게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충격적인 사건, 삶의 위기, 생명을 위협하는 질명은 큰 고통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영적 성장을 위한 기회가 되기도 한다. 동화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합은 인간과 초월적 존재의 결합을 상징하기도 한다.

영적 차원의 이해는 자기 존재에 대한 깊은 이해를 이끌고, 종종 우리 삶을 구언한다.

그러나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알아가는 치유의 과정에서 도망칠 위험도 있다. 잔인하고 비정한 현실에서 형이상학 세계로 도망치는 것은 중독성을 띄기 때문에 새로운 중독이 생길 수도 있다.

희생자 콤플렉스로 도망치는 공주를 붙잡고 삶의 가치를 만든 내면의 왕자가 치유에 반드시 필요한 새로운 결백과 순결의 감정으로 이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용서할 때 비로소 다른 사람도 용서할 수 있다는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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