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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라 Aug 16. 2022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원작 르포 작가의 취재법

기자명 고나무 팩트스토리 대표


편집자주: SBS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이 지난 12일 종영했다. 고나무 팩트스토리(실화 모티프 웹툰웹소설 기획사) 대표는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의 원작 르포작가다. 미디어오늘은 드라마 종영을 맞아 고나무 대표의 르포 취재 후기를 싣는다.



출처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


2007년 1월 중순 화성시 A동은 추웠다. 기상청 과거날씨 자료를 보면 1월 중순 낮 최고기온은 섭씨 0~5도였으나 체감온도는 더 낮았다. 이달 초부터 연쇄적으로 여성이 실종되었다. 경찰은 A동 지역주민들에게 ‘모르는 차에 타지 말라’고 알렸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왜 일까.



프로파일러는 추운 날 버스정류장에서 서 보았다. 정류장 주변은 썰렁했다. 야산과 밭 사이사이에 금속부품 제조 공장이 있었다. 영세 공장들 사이로 바람이 불었다. 프로파일러 앞에 트럭이 섰다. “어디까지 가셔요?” 황량한 정류장에 혼자 선 사람에게 지역 주민들은 자연스레 동승을 제안했다. 그건 호의였다. 경찰 권고에 따르지 않는 주민 심리의 실마리는 현장에 있었다. 아직 포털 거리뷰 서비스는 시작 전이었다. 범인은 이런 ‘호의동승’ 분위기를 이용했다.



프로파일러에게는 악의 마음을 읽는 것이 일이고, 르포 작가와 기자에게는 프로파일러의 마음을 읽는 것이 일이다. 르포 작가는 2018년 3월초 ‘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 동국대 겸임교수(전 경정)이 섰던 버스정류장에, 그대로 똑같이 섰다. 3월인데 진눈깨비가 내렸다.




▲ SBS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포스터. 사진출처=SBS. 


권 교수는 프로파일링에 대해 내게 ‘그화되기’(그처럼 되기)라는 비유법을 썼다. 범인의 시각과 심리에 서봐야 그를 추적할 수 있다는 취지다. 나는 ‘권일용되기’를 해보려 애썼다. 미국 내러티브 논픽션∙탐사보도 작법책에 나왔던 몰입형 취재(immersion reporting)방식을 적용해보려했다. 내 머릿속에서 이 작법책의 구절은 ‘스토리텔러의 눈, 탐사보도 기자의 손’이라고 번역되었다. 이렇게 권 교수와 2018년 공저한 르포논픽션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드라마로 제작되었고 최근 종영했다.



매주 밤 불 꺼진 방에서 드라마를 보며 ‘무엇이 드라마틱한 논픽션인가’라는 우리 두 저자의 애초의 질문을 되새겨봤다. 이 질문을 미디어오늘 독자들은 ‘스토리업이 팩트를 대하는 방식에서 보통 언론 기사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로 바꿔도 무방하다.




▲ SBS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스틸컷. 사진출처=SBS. 


송하영의 차 백미러에는 왜 묵주가 걸려있었을까



첫번째는 단연 캐릭터 취재다. ‘창작작가는 캐릭터∙행동∙장면을 상상하고, 르포 작가는 캐릭터∙행동∙장면을 취재한다.’ 미국언론 ‘오레고니언’의 탐사보도 에디터 잭 하트의 논픽션 작법 책 ‘스토리의 기술-내러티브 논픽션 창작 완벽 가이드’(번역 제목: 소설보다 더 재밌는 논픽션쓰기)에 담긴 취지다.



굳이 ‘인물’이 아니라 ‘캐릭터’ 취재라는 용어를 쓴 이유가 있다. 웹툰 작가 등의 스토리텔러의 관점에서 이 문제의식을 표현하고 싶어서다. 캐릭터 취재는 사법연수원 기수를 확인하거나 출신학교 학과학번을 확인하는 일을 크게 넘어선다. 가족관계, 취미, 종교, 말투, 선호하는 옷차림과 모는 차종, 인간관계까지 가능한 한 많이 ‘캐릭터 디테일’을 취재해야한다.



드라마 전반부에 송하영(김남길 분)이 운전하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스치듯 백미러에 달린 작은 카톨릭 묵주를 비추고 지나간다. 권 교수의 종교와 세례명까지 르포논픽션 원작에 적시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일부러 취재하고 적었다.




▲고나무 대표가 취재차 2018년 3월초 방문한 연쇄살인범 강호순 납치범죄 현장. 사진제공=고나무 대표.


인간관계는 사람을 비추는 다중거울이다. 권 교수와 프로파일링팀 설립자들을 파악하려고, 인터뷰 시도를 모두 32명에게 했다. 권 교수가 적지않은 분들의 연락처를 제공하였으나, 나머지 분들은 직접 파악하고 접촉을 시도했다. 그냥 프로파일링 교과서가 아니라, ‘그 시점에 권 교수가 읽은 프로파일링 교과서’를 일부러 확인하고 따라 읽었다. 판결문은 따로 확보했다.



‘왜 그렇게까지 취재해야하냐’고 묻는다면 ‘취재를 통해 캐릭터를 실화 작가가 이해해야 그의 선택과 행동이 독자에게 이해되고 공감을 사기 때문’이라 답할 수 있다.



드라마 작가는 씬을 창조하고, 기자는 씬을 취재한다



두번째 장면 취재다. 드라마각본의 ‘씬(scene)’이다. ‘공간 취재’로 봐도 된다. ‘어떤 물리적 공간에서 인물들이 대화나 행위를 하는 것’이 씬이다. 드라마 후반회차에 범죄행동분석팀 사무실을 비추는 카메라는 송하영의 책상 위를 스친다.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보인다. 역시 일부러 묻고 르포에 적었다.



드라마 작가는 씬을 창조하고, 르포작가∙기자는 씬을 취재한다. 살인범 면담 당시 입었던 옷이 왜 검은 양복으로 바뀌는지, 첫마디는 존댓말인지, 장소는 경찰서 몇층인지, 그 공간에 있던 다른 사람이 입은 옷까지 가능한 모두 취재하고 알아야한다. 필요하면 사진과 시시티비 영상도. 이미지를 머금은 글이 독자의 공감을 산다. 장면 취재가 중요한 이유다.



구체적 질문이 구체적 취재를 낳는다. ‘한국 1호 프로파일러가 작성한 첫 프로파일링 보고서는 A4 몇장이며 누구에게 언제 제출되었나’, ‘제출은 팩스인가 직접 만나 전달했나’ 등의 구체적 질문의 결과가 르포논픽션 책에 기존 언론기사에 없는 단독 팩트로 담겨있다. 유영철의 폐쇄회로 뒷모습 영상을 수배전단에 사용하기로 한 토론 장면도 언론계 용어로 치면 ‘단독 팩트’다. 이런 단독 팩트가 원작 르포에 적지않다.




▲고나무 대표는 권일용 교수가 프로파일러 시절 정남규 범행현장을 답사한 동선을 그대로 따라 걸었다. 당시 범행현장은 재개발되었다.사진제공=고나무 대표.


아울러 씬은 책 한권 분량의 내러티브 논픽션의 기본 구성단위다. 스트레이트 7매 기사나 상중하 3회 정책제시형 기획기사는 장면 묘사없이 읽힐 수 있으나, 800매(200자 원고지 기준)이상의 범죄 르포논픽션이나 내러티브형 기획기사는 장면으로 구성하지 않으면 독자가 몰입하기 어렵다. 기자출신 작가 톰 울프는 이런 취지로 이미 1970년대에 ‘씬 단위로 기사 구성하기’(scene by scene construction)를 주장했다.



액션, 즉 인물의 행위에 대한 취재는 상업 실화스토리와 언론이 가장 비슷한 점이다. 수습기자 때 반복적으로 훈련하는 바로 그 ‘6하 취재’다.



스토리업의 실화 취재는 5W1H중에 왜(why)에 집중한다. ‘왜’는 결코 몇개의 단어로 설명되지 않는다. 검찰 공소장이나 데일리 법조기사에서 가장 빈약한 서술이 ‘왜’이며, 바로 거기서 스토리가 시작한다고 스토리텔러들은 생각한다.



‘나는 왜 이 글을 쓰는가’로 마무리할 때다. 자기 자랑을 위해 미디어오늘의 소중한 지면을 낭비하고 있지 않다. 팩트는 이야기형 취재기법이라는 다리를 건너 스토리 독자들과 만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드라마∙웹툰의 대중성은 실화 모티프 스토리라는 다리를 통해 공익성과 만난다.



팩트는 때로 드라마가 되며, 드라마가 된 팩트는 큰 공적 영향력을 끼친다. 미국 탐사보도매체 프로푸블리카의 내러티브형 탐사보도 ’믿을 수 없는 강간이야기(An Unbelievable Story of Rape)’는 넷플릭스 드라마가 되었다. 두 섬을 잇는 다리 가운데 선 나는, 양쪽에서 건너려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다. 이 글은 취재후기를 가장한 수신호다.



출처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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