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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라 Aug 30. 2022

말씀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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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생 문학을 해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문학을 하는 사람은,

인간과 삶, 자연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과 성찰을 하는 사람이다. 

수없이 관찰하고, 목격하고 경험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끊임없는 사유를 통해

통찰력과 깨달음을 얻는다. 


내가 방송사에 취업하자,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셨던 나의 교수님의 말씀.

"이용당하지 말라"

그 말의 의미를 나는 마흔이 된 이제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전국에서 1등을 했을 때는 

청소년 지도자 리더로 뽑혔던 거였다. 

그것은 사람에 대한 연민,

약자에 대한 배려 덕분이었다. 


나는 내가 쌓은 벽을 무너뜨리고,

세상의 편견을 스스로 깨고,

내가 가진 아픔을 치유하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되찾고,

사랑, 우정, 가족애의 소중함을 느끼며,

하루 하루를 행복하게 쌓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을 좋은 쪽으로 이끌어주고, 

잘 되게 도와줘야지가 늘 머릿 속에 박혀있었다.


그러나, 내 안의 빛을 보고 다가와,

그 빛을 빼앗고, 어둠을 주고 간 사람들로 인해

나는 고통받았다. 


교수님은, 첫 번째 만남에서, 

이문열작가님에 대해서 나와 40분간 토론을 했다. 

나는 수줍음이 많아서, 말을 잘 안하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당시 제일 좋아하는 작가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40분을 교수님과 대화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수많은 시간동안 책을 읽으며

알아온 세계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첫 번째 사람을 만난다는 것.

그 시간이 정말 행복했다. 

조영복교수님은, 제2의 엄마였다. 

우리 엄마는 내가 어릴 때부터 일하느냐 바쁘셨고,

엄마의 힘든 일이 더 많았기 때문에 

나는 엄마에게 내 힘든 얘기를 한 번도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내게 참 잘해주셨지만, 힘들어하는 엄마에게

나는 힘들어도, 힘든 내색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런 나에게 조영복 교수님은, 엄마보다 더 엄마같은 모습으로,

나를 살뜰히 챙겨주셨다. 

당시 연극 연습을 하고, 집이 멀어서 지하철을 타고 왔다갔다 하느냐고

수업에 늦는 것 때문에 성적표를 A를 맞자,

나를 따로 불러서 "다른 학생들 중에서 네가 제일 글을 잘 썼다. 

글만 보면 네가 A+인데, 지각 때문에 A를 주었다"고 말씀을 해주셨고,

졸업 논문 발표를 할 때도

중간에 신경숙작가님 논문을 썼다가, 교수님이 시 전공이시라

이상의 시로 변경해야 해서 두 번을 썼는데,

논문 발표 후에, 나를 불러서, "소박한 글이 참 좋았다"고 칭찬해주셨다. 

워낙 조용하신 분이라, 나에게는 특급 칭찬이었다. 

단 한 번도 나에게 비난하거나 혼내신 적이 없었다. 

그리고, 졸업하기 전에도, 서양문학을 가르쳐주시며, 

토론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셔서, 

치열하게 공부하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그 시간이 나에게는,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는 교수님께 따뜻하고 애정어린 사랑을 받았고,

내가 세상을 살아나갈 때, 어떤 신념과 가치관으로 살아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 


나는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

방송원고를 쓰면서도 내 신념과 가치관을 지키기 위해

싸워왔고, 노력했다. 

방송은 한계가 있었다.

언론사라는 한계, 정부의 압박이라는 한계

나는 그곳에서, 언론을 검열하고 통제하는 정부를 보았다.


그리고, 방송원고를 쓰는 사람으로서

내 신념과 부조리한 사회가 부딪힐 때,

얼마나 괴롭고, 가슴 아팠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렇게 사랑하던 방송작가 메인작가에서,

드라마를 써야겠다고 결심을 굳혔다. 


겸열받지 않고, 통제 받지 않고,

내 생각을 쓸 수 있으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드라마라는 장르도 분명 한계가 있다. 

문학보다, 내면의 성찰을 더 잘 보여줄 수는 없지만,

영상 작업을 오래 해온 사람이기에

드라마의 꿈을 꾸게 되었다. 


그러나, 정말로 내가 어릴 때부터 쓰고 싶던 건, 소설이다.

이십 대 초반에 쓰던 내 문체는 더 정갈하다. 

지금은 말하듯 글을 쓴다. 

너무 오래, 방송작가로 살아온지라,

소설문체가 아니라, 언어로 글을 쓰는 게 습관이 되었다. 

이십 대 초반에 쓴 내 글이 지금보다 훨씬 잘 쓴다. 

방송언어에서 중요한 건,

얼마나 읽기 쉽고, 듣기 쉽게 쓰느냐다. 

읽기 쉽게 전달하는 바를 전달할 수 있으면 된다.


그러나, 소설 문체는 방송언어와 다르다. 

소설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도,

방송보다 더 무겁다.


드라마는 나의 종착지가 아니다. 

나의 종착지는 소설이 될 것이다. 

삶의 고통은, 사람을 더 성숙하게 한다. 


이제는 수많은 사람들이 글을 읽고,

글을 쓴다. 


어디 가나, 책이 넘쳐난다. 


그러나, '가난'은 여전하고,

힘든 사람들은 여전하다.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건,

책과 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누군가 구원해주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자신이 구원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 구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문학이라고, 나는 감히 생각한다. 


드라마는, 사람을 꿈꾸게 하고,

상상의 세계로 데려가고

판타지를 이루게 해주고,

현실의 부조리, 잊고 싶은 것들을 잊게 하고,

결말은 행복한 세상을 보여주지만,


소설은 다르다. 

소설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것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내 내면을 들여다 보고 싶고

내 감정과 생각을 정확하게 알고 싶다면,

소설을 읽어야 한다.

그것도 아주 좋은 소설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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