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낫한
법화경은 왜 이렇게 부처를 설명하고 있을까.
누구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러 성불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파도와 물>
태어났으면 죽게 마련이며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이건 역사적 차원이다.
동시에 모든 존재는 궁극적 차원에 속해있다.
시간과 공간, 탄생과 죽음, 가고 옴 같은
개념에 속박되지 않는 실재의 차원이다.
파도는 파도인 동시에 물이기도 하다.
물은 항상 물이다.
우리는 파도의 삶을 살면서
자신이 물이라는 것을 깨닫고
물의 삶을 사는 것
이것이 수행의 본질이다.
가고 옴
존재 비존재
탄생 죽음도 없는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깨달으면
두려움은 사라지고 궁극적 차원의 열반에 들 수 있게 된다.
진리를 세우는 일에는
만 번의 생이 걸리지만
사랑하는 이여, 보아라
이 일은 만 번의 생 이전에
이미 이루어졌나니
우리는 왜 꼭 부처가 되어야 할까요.
반드시 깨달음을 쫓아야 할까요.
지금 바로 이 순간, 우리는 이미 물이기 때문이다.
파도가 물이 되려고 애쓸 필요가 없는 것
우리는 이미 부처인 것이다.
내가 바라던 존재가 이미 되어 있는 것이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네 가지 방편
타인에게 귀중한 선물을 주고
따뜻한 말을 해주며
항상 남을 이롭게 하고
함께 일하고 협력하라.
첫 번째 보시다.
최고의 보시는 다른 사람을 두려움으로부터
구제해주는 무외시라고 한다.
두 번째 애어다.
따뜻한 말을 해주는 것.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소리지르거나 상대를 깔아뭉갤 필요가 없다.
따뜻한 말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전하는 것.
세 번째 이행이다.
항상 남에게 이로운 행동을 하는 것이다.
네 번째, 동사다.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고 협력하는 것.
부처는 네 가지 방편을 통해 중생을 품고
돕는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