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먼저 한 방송은
다큐멘터리였다
그곳에서 매주 24시 한 달 간 밀착취재하는
피디님의 촬영테입 100개를
두 명이 나누어 50개를 보았다
그렇게 매주 촬영테입을 보면
카메라 이동
현장음
인터뷰
그림
기타 등등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속깊은 이야기
그들의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이야기가 될 만한
방송이 될 만한 인터뷰나 현장음
그림을 매번 뽑는다
나는 다큐멘터리 인물을 찾고
섭외를 하고 취재를 하고
방송으로 만들 때마다
매번 그 인물들로 나의 드라마를 썼다
그게 내 유일한 낙이자 취미였다
그 드라마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렇게까지 방송작가 생활을
오래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틈틈히 쓰던 드라마는
고달픈 내 삶에 단비같은 쉼 같은
꿈같은 숨쉴 수 있게 해주는
생명줄이 되어주었다
나는 책 읽고 글쓰는 걸 참 좋아했다
밥 먹고 책만 읽으라 하면
1년 동안 24시 책만 읽을 수도 있었다
어려서부터 참 수많은 책을 읽었다
이문열 이상 공지영 박완서 이외수
헤르만헤세 헤밍웨이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박경리 조정래 등등
그 중 나는 이문열 작가님과
조정래작가님
그리고 노벨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참 좋아했다
학생 때는
아침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책을 읽는 날도 참 많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책을 읽다 보면
친구들을 만나 좋은 추억을 쌓아가기도 했다
때로 나는 잠수를 잘 탔는데
잠수 타는 날은 집에서 책을 읽거나
강아지를 돌봤다
그런 나를 매번 친구들은 부르고 또 불렀다
그리고, 매번 책읽고 글쓰느랴 안 나가면
무척이나 서운해했다
방송을 하면서 나는
그동안 다독한 책의 영향을
글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미친 듯 썼다
마치 기계처럼 썼다
글쓰는 게 가장 쉬운 사람처럼
아이디어도
대본도
이쪽으로는 머리가 휙휙 잘 돌아갔다
아이템을 찾거나
피디가 낸 아이디어에 살을 붙여
기획안으로 만들면
매번 빵빵 터지곤 했다
마치 시청률 1위의 비밀을 아는 것처럼
나는 매번 시청률 1위를 했다
후배작가들은 매번 시청률이 제일 높다며
말해주기도 했는데
아마 그건 방송을 통해
누군가의 로망을 내가 실현시켜주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의 결핍 아픔을 보는
특수한 감각을 지닌 나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니즈를 잘 알았다
그러나,
정작 내가 좋아하고 꿈꾸고
행복해하는 삶은
헤르만헤세의 조용한 삶이나
내면 성숙 성장 같은 데 있었다
내가 시청률을 높이 낸 데는
그 안에 보편적 정서를 담아냈기 때문일 거다
그러나, 나는 그 삶보다는
내 가정이 언제나 우선이었다
그 모든 걸 다 내려놓아도
내 가족을 지키는 게 더 먼저였다
세상적으로는 아마 나는 다 가져보고
내가 원하는 제안도 다 받아봤기에
결핍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한테 그런 제안이 온 것도
어쩌면 내가 그런 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건 언제나
소박하고 평범했다
평범한 일상.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
적당히 먹고 살 수 있는 돈
이게 내가 원하는 전부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내가 원하고 바라는 건
언제나 늘 늦게 왔다
내가 목이 말라 포기했을 무렵
늘 그 쯤 왔다
그래서 나는, 늘 아쉽고 또 아쉽다
내가 바라는 평범한 행복
소박한 행복.
아직은 내가 더 이루어야할 게 있나보다
아직도.
시간이 갈수록
부모님과의 시간이 애틋하고
자식과의 시간이 애틋하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이 그립다
나에게는 다시 없을 순간들이었기에.
참 좋았다.
모두.
그리고, 잠시나마 다시
평온과 소소한 행복도 누릴 수 있었다
다음에 내가 원하는 것들이 내게 온다면
나는 서툴렀던 지금보다
더 기쁘게 하느님께서 내게 주시는
모든 축복과 선물을 감사하게 받을 것이다
나는 그런 날이 반드시 올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