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북미 정상회담, 베트남에서 개최 가능성 부상

베트남 역사 이야기

by 러블리김작가

안녕하세요? 방송작가 러블리 김작가입니다^^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지로 베트남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데요.

아직 확정적인 것은 아니나, 양측이 구체적인 사항을 논의하고 있다고 하죠.


제가 베트남을 돌아보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곳이 바로, 이 앞 오문 광장입니다.

빨간 깃발 보이시나요.

금성 홍기(베트남 국기) 게양대인데요.

통일이 되면서 수많은 언론인, 작가, 교육자, 정치인 등 지식인들이 희생도 있었다고 합니다.

베트남도 한국처럼 남북으로 분단된 아픈 역사를 갖고 있어요.

호찌민의 북베트남은 조국의 통일을 원했지만,

남베트남은 분단된 상황을 유지하려 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남베트남에서 공산당 지지가 늘어나자, 미국에서 이를 막기 위해 베트남 전쟁을 시작했는데요.

미국의 요청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필리핀, 태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도 파병하였지만, 전쟁이 장기화되자 미국 내 전쟁에 대한 지지가 떨어졌고,

1973년 파리 협정으로 미군은 철수합니다.

1975년 북베트남의 지원으로 남베트남의 사이공이 점령되며 베트남 전쟁은 막을 내렸고,

다음 해 통일 국회를 구성하는 총선이 실시되어 하노이를 수도로,

사이공의 이름을 호찌민 시로 바꾸면서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탄생하게 되어요.



지금 베트남은 1986년 개혁이라는 의미의 ‘도이 머이’ 정책을 도입하여 경제를 개방하고, 수출에 힘썼죠. 무역 활동이 활발해지고 서구 국가들과의 관계도 정상화되었으며,

1995년에는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ASEAN), 1998년에는 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체(APEC)의 회원이 되어 급속한 발전을 이루고 있죠.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너무너무 가슴 아팠답니다.


전 세계에서 이제 우리나라만 유일한 분단국가죠. 우리는 그 누구도 이 땅에서 피 흘리거나 희생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도했답니다.


지금 베트남 여행을 가면, 물가도 저렴하고, 구경할 곳도 많고, 베트남 분들도 모두 친절하셔서 편안한 여행을 할 수 있는데요.


독립과 통일이라는 과업을 이룩해낸 지도자로 추앙받는 호찌민의 묘소에는 ‘자주와 자유보다 더 귀중한 것은 없다’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고 해요.

베트남에서는 호찌민의 생일과 서거일을 국경일로 정해놓을 정도로, 베트남의 독립과 통일을 쟁취한 최초의 민주공화국 대통령으로 추앙받고 있다고 하는데요.

호찌민은 1890년 응에틴성에서 화교 귀족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가 반프랑스 사건에 관련되어 관직에서 쫓겨나면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죠.

1918년 28세 때 사이공에서 배를 타고 프랑스로 건너가 급진적인 사회주의 운동과 반식민지 운동에 가담했다고 해요. 모스크바로 활동을 옮긴 그는 반식민지 전쟁에서의 농민 역할의 중요성을 역설하였죠. 중국에 파견되어 중국 혁명을 몸소 경험하기도 했고요.

1925년 중국 광둥 지방으로 잠입해 국제공산당 운동을 시작했고,

중국 남부 지방에 망명해 있던 애국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베트남 혁명 청년동지회’를 결성하였다고 합니다.

1930년에는 홍콩에서 베트남 공산당을 정식으로 발족시켰고, 1939년에 중국 국민당 군대에 체포되어 18개월의 옥살이를 했어요.

1941년 초 석방되어 이름을 호찌민으로 바꾸고 베트남 국내로 들어와 공산당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여 베트남 독립동맹인 베트민을 조직하였고,

1945년 8월,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더불어 총 봉기하여, 일본의 허수아비 왕인 응웬 왕조의 바오다이 왕을 폐위시킵니다. 그 해 9월에 자주독립국가를 선언한 후 대통령이 되었죠.


우리도 언젠가는 남북이 서로에게 총을 겨누기보다,

서로 얼싸안고, 형제애로 똘똘 뭉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겠죠?

그러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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