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운명이다.
숙명이기도 하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
나는 외국작가 중 헤르만 헤세를 참 좋아했다. 지금은 그 문장이나 글이 다 기억나진 않아도,
중고등학교 때, 그가 쓴 책은 모조리 읽었다.
데미안은 열 살 소년 싱클레어가 청년이 되기까지의 성장기다.
데미안은 데몬에서 유래된 악마에 홀린 것이라는 뜻이다.
친구 데미안을 만난 후 무의식과 내면을 꺠우치는 과정을 그렸다.
러시아 전쟁이 일어나고, 싱클레어와 데미안은 이 전쟁에 참전
싱클레어는 부상을 당하고, 야전병원에 입원한다.
거기에서 데미안을 만나게 된다.
침대에 누워있는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이 말한다.
"너는 네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해"
그리고 데미안은 사라진다.
"아아, 나는 이제야 느꼈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저항을 느끼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도 가는 일이라는 걸"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자신이 닮아있음을 알게 된다.
"나는 열쇠를 발견했고, 때때로 어두운 거울 속에
운명의 형상이 졸고 있는 그곳,
내 자신의 내부에 완전히 들어가기만 하면 되었다.
나는 단지 그 어두운 거울 위에
몸을 굽히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이젠 완전히 데미안과 같은
내 자신의 모습을 거기서 발견할 수 있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아브락사스.
머리는 수탉, 몸은 인간, 다리는 뱀의 모습을 가진 신으로
오른손에는 방패, 왼손에는 채찍을 들고 있다.
그노시스파에서 모든 정령을 관할하는 신이었다.
사악한 물질세계를 탄생시킨 존재로써
정통기독교에서는 악마로 여긴다고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보호를 목적으로 이름이 불린다.
데미안은 싱클레어를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싱클레어는 한정적인 사고방식으로 받아들였던
자신의 세계를 데미안의 도움으로
더 넓은 세계로 날아갈 수 있었다.
"우리는 항상 인격의 경계를 너무 좁게 한정지어요.
자신의 인격을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것
유별난 것으로만 떼어 생각한단 말이오.
하지만 우리는 각자가 온전한 세계예요.
우리 몸 안에 진화의 계보가 들어있어서 물고기였던 때로,
그리고 그보다 더 멀리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 속에는 인간의 영혼이 경험했던 모든 것이 들어 있소.
그리스인에게든 중국인에게든 혹은 줄루족에게든 상관없이
지금껏 존재했던 모든 하느님과 악마는 우리 안에
가능성과 소망, 배출구로서 존재하지.
인류가 멸망하고 교육을 전혀 받아본 적 없는 평범한 아이 하나만 남더라도
그 아이는 세계의 전체 흐름을 다시 찾아내
하느님과 악마, 낙원, 허락된 것과 금지된 것, 구약과 신약,
그 모든 것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소."
"만약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이는 상대의 모습에서
우리 자신 안에 있는 무언가를 보았기 때문이오.
우리 안에 들어있지 않은 것이 우리를 괴롭히는 법은 없으니까"
"누구에게나 과제가 있지만 그 과제는 스스로 선택할 수도,
맘대로 결정해서 행할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신들을 원하는 것도 잘못이었고,
세상에 무언가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도 완전히 잘못됐다.
깨우침을 얻은 인간에게 의무란 자기 본연의 모습을 찾아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길이 이끄는 곳이면 어디든 그 길을 따라
앞으로 더듬어 나아가는 것뿐
그 외에 다른 의무는 절대, 절대, 절대로 없었다.
그 깨달음은 나를 깊이 뒤흔들었다."
"그렇게 하는 꿈을 가끔 꾸었지만 그래도 난 할 수 없소.
생각만 해도 몸이 떨려요. 나 역시 따뜻함과 음식이 필요하고
자기와 같은 부류와 친밀하게 교류하고 싶은 불쌍하고 허약한 개에 지나지 않소.
정말로 자기 운명 외에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은
더 이상 어울릴 사람도 없이 완전히 혼자 남아
차가운 우주로만 둘러싸이게 돼요.
그것이 바로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지.
십자가에 기꺼이 못박힌 순교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영웅도 아니었고
자유로워지지도 못했소.
그들도 자신들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것을 원했고,
본보기로 삼을 대상을 가졌으며
이상을 품고 있었던 거요.
오로지 운명만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본보기로 삼을 대상도 이상도
더는 없고 사랑과 편안함도 없어요
그것이 실제로 우리가 가야하는 길이지.
나나 당신같은 사람들은 아주 고독하지만, 그대로 서로 의지하며
보통 사람과 다르며 반항적이고 특별한 것을 원한다는 것에
은밀한 만족을 느껴요.
허나 누군가 그 길을 끝까지 가고 싶다면
그런 것조차 떨쳐버려야 하겠지.
그는 혁명가나 본받을 대상, 순교자가 되려고 해서도 안 돼요.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오"
"왜냐하면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 중 대다수가
미움과 분노, 살인과 파괴는 그 대상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며 내 옆에서 죽어갔기 때문이다.
그렇다. 전쟁의 대상도 목적처럼 우연의 일치였다.
원초적이면서 몹시 난폭하기까지 한 감정은 적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저지른 학살은 자신 안에서 갈라져 나온 영혼,
즉 내면에서 뿜어져 나온 것일 뿐이었고,
그 영혼은 격분하고 죽이고 파괴하고 소멸함으로써
새로 태어날 수 있기를 원했다.
거대한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하고 있었다.
알은 세계였고, 그 세계는 산산이 부서져야만 했다."
"붕대를 감는 일은 아팠다. 그때 이후로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이 아팠다.
하지만 가끔 열쇠를 찾아내 나 자신 안으로 완전히 기어 내려가면
그곳에 있는 어두운 거울 속에 운명의 영상이 잠들어있었다.
나는 그 어두운 거울 위로 몸을 숙여 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면 되었다.
나 자신의 모습은 이제 그와 똑같아져 있었다.
내 친구이면서 인도자였던 그와"
"누구나 진정으로 해야 하는 일은 오직 하나,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이었다."
타인이 내게 원하고 기대하는 속세의 길이 아니라,
사명을 갖고 걸어가는
자신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