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러시아 브랜디 지음
진정한 독창성은
새로운 방법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에서 나온다
-이디스 워턴-
가짜 작가와 진짜 작가
어쨌든 우리 가운데 작가의 기질을 보여주는 본보기라할 만한 집안에서
태어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게다가 작가의 삶은 보통 사람과 다른 양상을 띠기 때문에
밖에서 바라볼 때 작가의 행동과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오해하기가 아주 쉽다.
작가를 한편으로는 버르장머리 없는 어린아이로,
다른 한편으로는 고통받는 순교자로,
또 다른 한편으로는 건달의 모습을 한 괴물로 바라보는 시각은
지난 세기가 물려준 유산이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유산이 아닐 수 없다.
그 이전에는 작가를 바라보는 시각이 훨씬 건전했다.
즉 작가는 보통 사람보다 마음이 더 여리고, 공감을 더 잘하고
더 진지하고 취미가 더욱 다양하고, 군중 심리에 덜 좌우된다는 생각이
주를 이루었다.
작가는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자발성과 아이처럼 예민한 감수성과
화가 못지않게 순수한 시각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참신하고 신속하게 반응할 뿐만 아니라
기존의 환경도 마치 처음 대하는 환경처럼 대한다.
그러한 특징과 개성은 그 즉시 케케묵은 범주 안에 분류되어
먼지를 뒤집어쓴 채 구석에 처박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신의 손을 통해 나날이 새롭게 주조되는 듯하다.
작가의 두 가지 면
하지만 작가가 성공을 거두려면 위에서 말한 특징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가 또 있다.
다름 아니라 어른스러움과 분별력과 절제와 공평함이다.
이런 특징은 예술가보다는 장인과 비평가의 모습에 가깝다.
예민한 감수성과 어린아이처럼 천진한 구석도 중요하지만
예술가가 방금 지적한 면모를 가주지 못한다면
예술 작품은 탄생하지 못한다.
예술가가 이 두 가지 요소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놓친다면
작품의 질이 떨어지거나 영영 작품을 내놓지 못하기 쉽다.
따라서 작가의 첫 번째 임무는
성격의 이러한 두 가지 요소를 균형 있게 발전시켜 하나의 통합된 성격으로
녹아들도록 그 둘을 결합하는 것이다.
그런 바람직한 결과에 이르려면 우선 그 둘을 분리해
따로따로 훈련해야 한다.
'인격의 분열'이 늘 정신병 증세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심리 구조에 대한 섣부른 이론을 섭렵한 독자에게 이중인격자란
정신병동에 있어야 할 불쌍한 사람을 뜻한다.
아니면 백 번을 양보해서 아무리 좋게 보아도
변덕이 말도 못하게 심한 히스테리 환자로 비춰진다.
작가는 모두 후자에 속한다.
스스로를 정상이라고 자부하는 보통 사람의 눈에 작가가 당혹스럽고
짜증스러운 사람으로 비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성격에 한 가지 이상의 측면이 있다고 해서
무슨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니다.
천재들의 일기와 편지를 보면 스스로 이중 인격이나 다중 인격을
인정하는 내용이 수두룩하다. 거기에 보면 걸어다니는 보통 사람과
날아다니는 천재가 늘 공존한다. 천재를 둘러싼 이런 일화마다 또 다른 자아,
또는 더 높은 자아를 뜻하는 알터에고 개념이 어김없이 따라다닌다.
우리는 천재의 그러한 증언을 대대손손에 걸쳐 듣는다.
일상에서 접하는 이중 인격의 사례
사실 이중 인격은 천재의 공통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고 보면 우리 모두 어느 정도 그런 경향을 보인다.
누구나 한 번쯤은 다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나중에 돌이켜보면
기적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과감하게 행동했던 경험이 있다.
영국의 심리학자 프레더릭 윌리엄 헨리 마이어스가 천재의 행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면서 예로 든 특징이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원기 회복으로도 불리는 이러한 순간에는
오랫동안 힘들게 노력한 끝에 피로가 갑자기 씻은 듯 사라지면서
녹초가 된 몸과 마음에서 새로운 성격이 마치 불사조처럼 생겨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때부터 지지부진하기만 했던 작업이 술술 풀리기 시작한다.
이것보다 눈에는 덜 띄지만 비슷한 경험이 있다.
잠을 자면서 우리는 결정을 내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등 훌륭한 결정과 확실한 해결책을 찾아낸다.
이러한 일상의 기적은 모두 천재와 관련이 있다. 그런 순간이면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 협력해
최대한의 효과를 발휘한다. 즉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를 격려하고 지원하고 보완하면서
완전하게 하나로 통합된 인격으로부터 바람직한 행동을 끌어낸다.
천재는 한결같이 이렇게 행동하는데 비해 보통사람은 그 횟수가 아주 드물다.
천재는 기회가 왔을 때는 물론이고 스스로 기회를 만들면서 종이나 화폭이나 돌에
그 순간의 경험을 기록한다.
말하자면 천재는 스스로 비상 상황을 만들어 그 안에서 행동한다. 스스로 상황을 만들어
실천하는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천재와 게으르고 겁 많은 그의 동료들을 구분하는 특징이다.
낙담의 수렁
작가의 삶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한다.
꿈을 현실로 바꾸려면 그저 꿈을 꾸는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꿈을 현실로 바꾸려면 그 꿈이 지니는 매력이 무색할 정도로
눈물겨운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작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무작정 받아들여선 안 된다.
모름지기 작가라면 자신만의 이야기를 찾아내 완결지어야 한다.
문체나 정확성만 가지고 겨우 글 몇 쪽 쓴다고 해서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문체, 내용 설득력을 두루 갖춘 글을 분량에 상관없이 쓸 수 있어야 한다.
초보 작가일수록 이 모두가 그저 어렵게만 보인다.
자신의 미숙함을 생각하면 걱정부터 앞서고
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말을 과연 한 마디라도 제대로 한 적이 있기나 한지
의심스럽다.
작가라면 누구나 이러한 낙담의 기간을 경험한다.
많은 경우 초보 작가들은 자신을 괴롭히는 불안의 원인을 파악하지 못한다.
심지어는 불안의 원인을 엉뚱한 곳에서 찾아 대화를 쓰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또는 줄거리 구성이 약하기 때문에
또는 등장인물에 자연스러움을 불어넣지 못하기 때문에 좋은 글을 쓰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약점을 극복하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어려움이 해결되지 않으면
또 다른 형태의 솎아내기가 이루어진다.
이 지점에 이르면 몇몇은 대열에서 이탈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끈덕지게 대열에 남아 있는 사람들도 있다.
작가의 의식, 다시 말해 작가 안의 장인과 비평가를 훈련하는 방법은
대게 무의식, 즉 예술가에게 유리한 장점에 적대적이다.
물론 이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하지만 의식과 무의식이라는 성격의 두 가지 측면이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얼마든지 훈련할 수 있으며,
그러한 훈련의 첫 번째 단계는 한 사람이 아니라 마치 두 사람을 교육하듯
자신을 교육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타고난 작가
천재 또는 타고난 작가 안에서는 이러한 과정이 너무나 평온하고 신속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제 아무리 압축된 개요라고 해도
우리 눈에는 이야기의 역사를 잘못 전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
즉 천재는 남다른 기질이나 훈련을 통해 자신의 무의식을 의식 작용과 상관없이
자신의 합리적인 의도에 완전히 이바지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말은 나중에야 입증된다.
왜냐하면 작가를 양성하는 과정은 타고난 작가가 저절로 하는 일을
숙련을 통해 초보자도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작가 안의 두 사람
자신을 의식의 힘을 빌려서라도 한 사람 안에 있는 두 사람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일상의 문제들에 정면으로 맞서는 고리타분하고 현실적인 인물이 있을 것이다.
이 인물은 무신경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 인물의 경우 이지적인 비평 능력, 공평함, 끈기를 배워야 한다.
아울러 그와 동시에 이 인물의 최우선 임무는 예술가 자아에 바람직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반면 이중 인격의 또 다른 반쪽은 민감하고, 열정적이면서,
종잡을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이 인물이 그러한 특징을 일상 세계로 끌고 나가게 해선 안 된다.
점잖은 측면이 이성이 필요한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대처해 고초를 겪게 하거나,
엄격한 관찰자의 눈에 우스꽝스럽게 보이게 해서도 안 된다.
투명 장벽
이중 인격을 통해 얻는 가장 큰 이익은 그대와 세상 사이에 투명한 장벽을 세우게 된다는 점이다.
이 장벽 뒤에서 그대는 자신의 속도에 맞게 예술가로 성숙해 나갈 수 있다.
안타깝게도 상상력이 부족한 시민은 말을 실에 꿰는 일로 이름도 떨치고 생활도 영위하고 싶다고
말하면 코웃음을 친다. 그는 아는 사람이 글로 세상의 인정을 받기로 결심했다고 선언하면
주제넘다고 생각하면서 인정사정없이 놀려댄다.
상상력과 담을 쌓은 사람들의 이러한 사고 방식을 바로잡으려 들 것 같으면
평생 바쁘게 지내야 할 만큼 그럴 기회는 많다. 하지만 엄청난 활력을 지니고 있다면 모를까
그러다 보면 글 쓸 여력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성공한 작가를 보면 아이처럼 호들갑을 떤다.
그의 존재에 압도당하면서도 몹시 불편해한다.
그들이 보기에 마법이 개입하지 않고서야 자기와 똑같은 인간이 그렇게까지 현명할 리가 없다.
그들은 자의식을 발동해 전혀 뜻밖의 행동을 취하거나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만약 그들을 놀라게 한다면 그대는 소재거리 하나를 놓치게 된다.
결심을 지켜라.
작가가 자신의 직업을 밝히지 않는 중요한 심리적 이유 한 가지는
그렇게 할 경우 단순히 그 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쓰려고 마음먹은 것들을 이야기하게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침묵을 현명하게 활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초고를 어지간히 완성하고 나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비평과 충고를 구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너무 일찍 말하게 되면 오히려 부작용을 낳는다.
예술가 기질은 대개 공상 속에서 스스로를 연마하고 고독 속에서 즐길 때
완전하게 발현된다.
그런 가운데 어쩌다 가끔 글을 쓰고 싶다는 충동이 저절로 표면으로 떠오른다.
일과 생활 환경 마련을 자신의 본성 중 좀더 민감한 쪽에 맡길 경우
그대는 자신이 타고난 재능을 보여주지 못한 채 눈을 감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처음부터 자신은 행동의 변덕에 좌우되기 쉽다는 점을 직시하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좋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충동 중에서 일관된 성격을 지니는 부분은 무엇이고,
자신을 타성과 침묵의 늪에 빠뜨리는 부분은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다투지 않는 두 자아
두 자아가 각기 자신의 위치를 찾아 자기한테 맞는 기능을 수행하게 되면
손을 맞잡고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끊임없이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고 다독인다.
그 결과 두 자아는 예전에 비해 몰라보게 균형 잡히고 성숙하고 활기 넘치고
진득한 인격으로 통합된다.
물론 두 자아가 서로 싸울 때면 우리는 불행한 예술가가 될 수 밖에 없다.
자신의 기질이나 말짱한 판단을 거스르거나, 무엇보다 슬프게도 작업을 하지 못하는
예술가는 불행할 수 밖에 없다.
가장 부러움을 많이 받는 작가는 자신의 성격에는 서로 다른 측면이 있다는 점에
자연스럽게 주목하면서 때로는 이런 측면에, 또 때로는 저런 측면에 자신을 내맡기고
생활하며 일할 수 있는 사람이다.
재능의 해방
기적의 가장 놀라운 점은 그것이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작가의 비법
동료나 선배보다 나은 자가 되려고 애쓰지 말라.
자신보다 나은 자가 되려고 노력하라.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이 확실히 바꿀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