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이문열 작가님

by 러블리김작가

누구든지 고향에 돌아갔을 때

"아 드디어 고향에 돌아왔구나" 싶은 사물이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고향의 가장 높은 봉우리일 수도

협곡의 거친 암벽, 동구밖 노송일 수도 있다.

그리워하던 이들의 무심한 얼굴, 지서 뒤 미류나무 위의 까치집이나

솔잎 때는 연기의 매케한 내음일 수도.


"자 한 잔 받아"

"장래의 검사님을 위해"

내가 그들의 허구와 정면으로 대결해야 할 때가

더 이상 그들의 공허한 갈채에 도취해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 나는 과연 당신들의 모든 실패를 훌륭히 피했다.

당신들과 똑같은 상황에서도 나는 열심히 공부했고

비록 한두 번의 방황은 있었지만, 지금은 당신들이 성공이라고 여기는

마지막 단계에 와 있다.

그렇지만 그게 어쨌단 말인가. 결국 당신들의 삶은 당신들이, 나의 삶은

내가 채워가게 되어 있다.

거기다가 나는 또 알고 있다. 당신들의 갈채는 어쩌다 다시 들리게 된 선술집의

작부가 흘리는 미소보다 더 허망하다는 것을.

그런데도 그 갈채소리에 귀먹은 나는 그렇게도 열심히 달렸던 것이다.

"어린 놈 간은 고만 키우는 거다. 다만 우리는 믿자,

그가 결코 고향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으리란 것만을"

아아, 형이시여. 당신은 애써 벗어 던진 그 굴레를 다시 제게 씌우시려는 겁니까.

동생의 가슴 속에서 오래오래 은밀히 타오른 그 치열한 불꽃을 끝내

외면하시려는 겁니까.

그러나 저는 지쳤습니다. 제 젊음과 재능도 더 이상은 나를 기다려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끝내 말하지 못했다.


(중략)

"다 알고 있다. 네가 작가로 인정받았다는 거.

두 달 전부터 법학 연구소를 나왔다는 거"

"너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겠지? 아무말 말고 서울로 올라가거라. 지금 당장 가서

한 번만 더 해봐라"



"아무래도 무서운 저주가 우리와 함께 출발하는 것 같애.

길고 검은 그림자를 한...어쩌면 죽음과도 흡사한 것이"

"그래. 우리는 어디로 간다는 거야?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거지?"


우리를 기다리는 전혀 미지의 세계와 그러기에 힘들여 헤쳐나가야할 앞 날이

생생한 불안으로 덮쳐왔다. 고향의 분노와 저주,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갈 추문 같은 것들이

몇 날이고 몇 밤이고 내 장한 결심을 여지없이 흔들었다.


"역시 이대로가 좋아. 아무래도 난 돌아가겠어. 괴롭지만 혼자 가 줘.

나는 네 슬픈 사랑의 연인으로...그것으로 만족하겠어. 잘 가. 정말로 사랑했던, 사랑했던"

나는 달렸다. 이제야말로 그 애로부터, 운명의 오랜 저주로부터

영원히 도망할 때라고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이 그 애와의 마지막이었다.

그 애는 울고 있었다. 나도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고 서둘러 나머지 술을 비웠다.


"그만해둬. 운명이 제 갈길을 간 건데 뭘"

"우울한 대로 아름다운 인생의 삽화였어. 이제 그만 돌아가봐.

너의 도시로, 그리고 고향이고, 이곳이고, 다시 오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이튿날 아침 일찍 나는 고향을 떠났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갔나

그 뒤 나는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진정으로 사랑했던 고향에로의 통로는 오직 기억으로만 존재할 뿐

이 세상의 지도로는 돌아갈 수 없다.

아무도 사라져 아름다운 시간 속으로

그 자랑스러우면서도 음울한 전설과 장려한 낙일도 없이

무너져 내린 영광 속으로 돌아갈 수 없고

현란하여 몽롱한 유년과 구름처럼 허망히 흘러가버린

젊은 날의 꿈 속으로 돌아갈 수 없으므로.

한때는 열병 같은 희비의 원인이었으되, 이제는 똑같은 빛깔로만 떠오르는

지난 날의 애증과 낭비된 열정으로는 누구도 돌아갈 수 없으며,

강풍에 실이 끊겨 가뭇없이 날려가 버린 연처럼

그리운 날의 옛 노래도 두 번 다시 찾을 길 없으므로.

우리들이야말로 진정한 고향을 가졌던 마지막 세대였지만

미처 우리가 늙어 죽기도 전에 그 고향은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일찌기 무지개의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난 우리들,

한둘은 운좋게도 엘리트 관료로 진출하고 있고

몇몇은 수익 좋은 현대 기업의 경영진에 참가하였지만

대부분은 전망없는 봉급생활자의 무리로 전락하고만

우리들은 생활에 지치고 번잡한 도회가 성가실 때면

쓸쓸히 웃으며 중얼거렸다.

"아아, 다 버리고 돌아가 도평 노인의 데릴사위나 될거나"


"나는 무슨 망령된 싸움을 해왔더란 말인가.

중에게는 법도가 있으며

임금에게는 왕도가 있고

심지어 도둑과 백정에게도 그 도가 있다고.

그런데 나는 이 무슨 못나빠진 짓인가.

걸핏하면 세상 사람들에 대한 분노로 정신을 잃고

세월과 무분별한 싸움을 벌였다.

분을 넘은 짓이며 장인의 도를 잊은 짓이었다.

이제 나는 내 본래의 길로 돌아가겠다.

문 밖의 시비에 관여하지 않고

전심하여 나의 길이나 가겠다.

그리하여 일찌기 어떤 사립장이 만들었던 것보다

훌륭한 진품을 만들어 명장의 후예로 부끄럽지 않은 생을 마침질하겠다"

도평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길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인성이 지극하면 천명도 이르는 법,

하늘은 나를 위해 삼남 어디에 한 그루의 석파청죽을

기르고 있으리라.


"아이고 이젠 이 고을도 다 망했구나.

사람이 다 죽었구나"

그러다가 도평 노인은 죽었다.


아내의 쓸쓸한 뒷모습을 바라보던 백보선생은

돌연 형언할 수 없는 연민에 젖었다.

"살아있다는 것은 고독하다는 것.

그대도 나도 혼자여라"


그러나, 그것은 가끔씩 대면하게 되는

우리 모두의 진실인 것이다.

아, 당신들은 빼고, 고독이 무슨 독랄한 채찍 같은 것이라서,

그리고 그것이 끊임없이 당신들의 그 대단한 실존을 후려쳐

아파 죽겠다고 떠드는 당신들과

반대로 그런 것은 전혀 감정의 사치며 애초에 그런 것은 없노라고

단언하는 철판 같은 둔감의 당신들은 빼고


그 허망의 도시에 연연해 할 무엇이 더 있단 말인가.

<아아, 돌아왔노라. 내 돌아왔노라.

요컨대 남과의 사귐을 그만두고 즐기며 노는 것을 그치리라.

세상과 나는 서로 잊어버리는 것이다.

친척들과의 정다운 이야기를 즐기고

거문고와 책으로 시름을 끄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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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삶을 덧없는 꿈과 같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작품을 읽노라면 불꽃같이 타오르는

꿈이 바로 삶인 것 같아 보인다.








세상은 벌써 자네들이 겪고 있는 경우를

문제 삼지 않은지 오래야.

이곳만 떠나면 자네도 모든 걸 잊을 수 있을 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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