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열등감)
언제나 결론이 정해져 있는 로맨틱코미디 영화를 자주 보던 시기가 있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저스트 프렌즈>,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등등. 내용이 다 기억나지 않지만, 대부분의 줄거리는 우여곡절 끝에 결국 사랑을 이루는 해피엔딩. 결말이 ‘해피’하다는 공통점. 그리고 그 과정이 유쾌하다는 점. 이 점들이 편안했다. 예술영화와는 반대로 오락영화라고도 불리는 재밌는 영화. 이런 해피한 영화를 보다가 결국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끝까지 ‘해피’했을까?
정말로 사랑하는 무언가를 만났을 때 착각을 자주 한다. 이 사랑이 영원할 거라고. 흔한 사랑 이야기 말고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면, 문학을 사랑하고, 글쓰기를 사랑했다. ‘글쓰기를 사랑했다’이다. 처음에는 사랑했지만, 남들과 끊임없는 비교 끝에 나는 글쓰기를 포기했다. 내 글을 몰라주는 세상을 탓하다가, 열심히 하지 않는 나 자신을 탓하다가 글쓰기와 이별했다. 시간이 흘러 다시 미친 듯이 사랑하는 무언가가 나타났는데, 그것이 바로 서핑이다.
서핑을 사랑하게 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알았고 자연을 사랑하게 되었다. 새우깡을 먹던 갈매기가 바다 위에 같이 동동 떠 있는 친구가 되었고, 남이었던 바다가 늘 나와 함께 살을 맞대는 연인이 되었다. 그러면서 같은 즐거움을 나누는 서프버디도 만났다. 즐거움은 바다처럼 계속 존재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게 있으니, 서핑도 스포츠고, 스포츠는 실력이 나뉜다.
어쨌든 서핑. 그러니까 무슨 일이 닥쳐도 서핑을 계속할 것이고, 당연히 서핑은 나에게 즐거움을 준다. 이런 숭고한 믿음이 내 마음을 지배한 시간은 한 1년여 정도였던 것 같다. 바다에서 낯이 익은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들의 서핑을 감상하게 되는데, 감상하다 보면 나는 왜 저렇게 할 수 없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든다. 사이드 라이딩이 언제쯤 자유로울 것인지, 업다운을 언제 할 수 있을 것인지 등등 머리가 어지럽다. 그러다 같이 시작한 버디들이 성공하는 모습을 바라볼 때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사랑과 어울리지 않는 이 감정은 분노라기보다는,
열등감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서핑도 혼자 하는 스포츠이지만 주변 사람들의 라이딩을 눈앞에서 보게 되고 나와 비교하게 된다. 나는 바다 위에서 사랑을 가진 아주 큰 존재였다가, 1년이 지나자 열등감에 사로잡힌 한없이 작은 존재로 바뀌었다. 어서 빨리 남들처럼 하고 싶었다. 하고 싶은 거와는 별도로 나는 왜 빨리, 아주 빨리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을까?
열등감이 내 마음을 집어삼키기 전까지의 시간이 있다. 그 시간에 나는 죽도록 연습했다. 파도가 없는 날에도 혼자 나가서 패들링 연습을 하고, 집에서 테이크오프 연습을 하루에 100번씩 했다. 그런 시간, 즉 내가 노력하면 남들처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시간. 하지만 두 달이 지나도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 실력이 늘지 않았다. 그 좌절감. 좌절감은 열등감의 기폭제가 되어 내 마음을 집어삼켰다. 내 생각에 열등감은 좌절감보다 더 깊은 곳에 있다고 느낀다. 좌절이 자신을 스스로 괴롭힌다면 열등감은 나를 미워하고, 나를 미워하게 만든 친구들을 또 미워하게 만든다. 그 감정은 서핑에 대한 열정 혹은 사랑과는 상관없는 것처럼 여겨져서 어색하다. 어색함은 타인에게 불편함을 주고 나를 고립시킨다. 그것은 사랑했던 바다, 서핑과의 이별을 뜻한다.
내가 변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별을 하는 것이 맞는 건인가?
내 실력이 늘지 않고 남들을 시기한다고 해서 서핑과 이별하는 게 맞는 것일까?
초조했다.
이 초조함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글쓰기를 생각해 보면 아마도... 방법은 없다. 나는 글쓰기를 포기했었으니까. 아주 오랫동안.
내 경험을 돌이켜 본다면 잠시 멀어지는 게 방법일 수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다시 글을 쓰고 있으니까. 하지만 내 마음속에 이제 열등감은 없다. 글을 잘 쓰겠다는 욕심도 없다. 그저 누가 내 글을 보고 한두 명 공감한다면... 그게 만족이고 기쁨이다.
마찬가지로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 스스로 욕심을 부리지 않을 날까지 서핑을 쉰다면 어떨까? 내가 그렇게 한다고 해도 이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주 격정적으로 사랑했던 것에... 완벽한 이별은 없는 거 같다. 시작과 과정은 로맨틱코미디였는데. 결말은 아직 알 수 없다. 사랑이 끝나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