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서프버디)
서프버디(SURFBUDDY)란 서핑을 뜻하는 SURF와 친구를 의미하는 BUDDY를 합친 합성어이다. 그냥 서핑을 같이 하는 친구나 동료를 말한다. 나에게는 친구가 있는가? 바다와 햇살을 보고 있다 보면 예전에 빅파이 때문에 갈라서게 된 중학교 친구가 생각난다. 나는 운동장에 내리 쬐는 여름햇살보다, 축구를 하면서 일어나는 마른 먼지보다 더 많이 모가 나 있는 중학교 2학년생이었다. 모가 나 있지만, 수줍음이 많고 운동신경이 없던 나는 사각형 테두리처럼 친구들을 부러워하면서 겉을 맴돌 뿐이었다. 튀어나온 못을 온전히 두드려줄 친구도, 부모도 가까지 있지 않았다. 아니, 가까운 상대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는게 맞는 말 아닐까 싶다. 그런 나에게 가다와 주는 크가 큰 친구 한 명이 있었다. 나보다 머리하나는 더 있었다. 늘 올려다 봤지만 다정한 눈빛을 가진 그 친구는 나에게 매점을 같이 가자고 말해주는 몇 안되는 친구였다. 나는 그 친구가 이상했다. '왜 나에게 친한 척을 할까?' 그런 생각을 자주 했다. 일진도 아니었고 불량한 친구도 아니었다. 나와 비슷한 친구였다. 아니다. 비슷하다고 말할 순 없다. 나와 달리 타인에게 먼저 손을 내밀줄 아는 사람이니까. 그 시절 내가 가지고 있던 어리석음. 어리석다보다는 옹졸함에 더 가까운. 옹졸함보다는 자격지심이나 막연한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는. 자존감을 낮추기에는 또 너무 마음이 아픈 그런 상태. 외롭기를 바라지 않지만, 언제나 외로울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 그런 상태의 나는 그 친구를 떠나 보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사건은 그 친구와 같이 매점을 드나들기 시작한 지 한달도 채 되지 않아 발생했다.
쉬는 시간, 빅파이가 내 손에 있었다. 파이는 한입에 넣기 딱 좋았고, 달았고, 동그랬다. 동그라미를 보며 한 번쯤 내 모가 난 마음을 둥글게 접을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그저 입에 넣기 바빴다. 입에 들어가기 전 직경 1cm도 남지 않았을 때, 그 친구의 손이 내 팔을 쳤다. 입에만 힘을 주고, 손에는 힘을 빼고 있던 타이밍인지라, 빅파이는 자연스럽게 내 손을 떠나 바닥에 떨어져 뒹굴었다. 내 마음의 불필요한 감정들이 내 배 속을 휘젓고 있는 것처럼, 빅파이를 둥글게 감싸는 초콜릿 부스러기들이 굴러가는 길마다 흔적을 남겼다. 이미 쓰레기가 되어 버린 감정의 부스러기들은 원망할 대상을 찾았고, 나는 친구에게 이 빅파이 어떡할 거냐고, 당장 사 오라고, 무안해하는 친구의 눈빛을 피하며, 강한 척, 소리큰 척 모기 같은 목소리를 내질렀다. 친구는 나를 한참 바라보다가 다른 친구와 함께 그 순간을 벗어났다. 벗어나면서 다른 친구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저런 놈 한 대 쳐버려."
나는 다시 혼자 지내게 되었다. 매점을 혼자 다니고, 혼자 집으로 걸어갔다. 다 커버린 지금도 외로움은 아직도 남아 있고, 친구를 사귀는 건 어색하다. 이제는 다른 감정은 희미해지고, 하나가 크게 남았다. 어색하다. 어색함은 외로움을 늘 지니고 있는 사람에게 해당하는 단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아마 서핑을 하면서 서프버디를 만들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며 막연히 자연만 즐기고 있었다. 자연도 좋은 친구지만 말을 할 수 없는 자연이란, 짝사랑과 같다. 파도에 뚜들겨 맞는 것보다 가슴 아픈 일이다.
나는 서핑샵을 다니게 되면서 서핑강사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서핑강습 말고도 내가 더 즐겁고 오래도록 서핑을 할 수 있도록 서프버디를 만들어주려고 하였다. 일정한 시간에 회원들 몇을 나오라고 하여 같이 서핑을 하게 해주었다. 나는 그런 강사를 보며 바닷속보다 깊이 감사해하였다. 자연이 주는 힘이란 어색함보다 강대했다. 마치고 나와 파도가 어떻고, 햇살이 어떻고, 서핑자세가 어떻고 이야기하다 보니 나를 포함한 3명이 어느새 서프버디가 되어 있었다. 파도가 오는 날이면 우리는 시간을 맞춰 보았고 할 수 있다면 같이 서핑하였다.
나는 스스로 서프버디를 사귀지는 못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사귀었지만, 사람 사는 세상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그저 이렇게 다시 친구를 사귀고, 서핑을 계속 하는 원동력이 주어졌다는게 감사하다. 너무 오래 상처를 마주보며 사는 것도 힘든 일이다. 과거의 어색함을 지우려고 노력해보는 게 좋다는 것을 서핑을 하면서 또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