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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솔 Jul 14. 2022

업적과의 작별

산공 일기 열 번째

“무엇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다 사라졌어요. 

그냥 한 순간을 피었다 지는 들꽃 송이여도 좋겠어요. 남보다 앞서려 하기보다 그냥 소박한 삶이었으면 해요.”     

청운의 꿈을 내려놓은 그 친구는 눈물 그렁한 눈빛으로 제 마음을 토해 놓았다. 

세상의 전쟁터에는 순수한 영혼의 사람이 비집고 들어갈 작은 틈 하나가 없었다. 

작은 틈 하나도 놓치지 않는 영민하고 빈틈없는 사람들의 무대였다. 

그가 그 야차 같은 세상을 버려두고 이곳 전원으로 내려온 다음 날에 

하늘은 두 팔 벌려 환영인사라도 하듯 흰 눈송이를 흩뿌려 주었다. 

나는 자그마한 눈사람 하나를 만들었다. 

이내 개인 하늘에는 눈사람을 꼭 닮은 구름이 흘러간다. 

내가 만든 눈사람도 하늘의 눈구름도 잠시 후면 모두 흘러 없어지리라. 

나는 젊은 나이에 세상의 덧없음을 알아버린 그 친구를 안아 주고 싶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위로해 주고 싶었다.       


세상은 ‘boys be ambitious(소년이여 야망을 품어라)’라는 말로 젊은이들을 채근한다. 

꿈을 품어야 하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진정한 미덕인 것처럼 말한다. 

그리고 삶의 유산, 즉 업적을 남기라고 말한다. 

나는 이 말에 조금도 딴지를 걸고 싶지 않다. 

틀린 말도 잘못된 말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젊음의 날들에는 그렇게 꿈을 품고 꿈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하며 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역설적으로 꿈이 망쳐 놓은 인생을 참 많이도 보아왔다. 

직장에서는 단지 임원이 되겠다는 덧없는 꿈 때문에 

비인격적인 실적 주의자로 전락한 인간들을 숱하게 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소망한 꿈은 그들의 삶을 역겹게 만들었다. 

야망으로 포장된 꿈 때문에 비인격적인 사람이 되고, 

이득을 탐하여 사람의 고귀한 미덕을 모두 상실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세월이 한참이나 흐르고 난 다음에야 아~ 헛된 욕망의 날들이었어!라고 

자신의 삶을 회한하는 사람들도 참 많이 보았다. 

지나고 나서야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는 것이 인간의 한계인가 보다.   

     

어쩌면 우리가 꿈이라는 속성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꿈이라는 개념을 전부 진보적인 것, 이기는 것, 앞서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지 않은가! 

진짜 그런 차원이라면 알렉산더 대왕에게 햇볕을 쬘 수 있게 당신의 그림자 좀 비켜 달라고 요청했던 

디오게네스에게는 아무런 꿈이 없었다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가만히 있는 것, 소박한 것, 평범한 것, 보통의 것들을 우리는 꿈이라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업적을 포기하는 것. 가만히 내려서는 것에도 진정한 꿈이 담겨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친구야! 한 떨기 들꽃이어도 좋겠다고 자신을 내려놓은 것 자체가 이미 위대한 삶이라고 나는 믿어.”      

나는 결국 그 친구에게 위로의 말 같지 않은 말을 뱉어내고 말았다. 

그냥 아무 말 없이 그저 어깨를 토닥여 주면 그만이었을 텐데.


나이 들어 전원에 들어오고 나서 가장 좋은 것은 모든 업적과의 분명한 이별이었다. 

여기서는 이름을 낼 일도, 남보다 앞서갈 일도, 누군가보다 우위에 서야 할 일이 없다. 

경쟁할 대상도 없다. 밟고 일어서야 할 그 누구도 없다. 

그냥 하루하루를 산울에 심긴 나무처럼 살아내면 될 일이다. 

자연의 존재 방식이 그렇고 그것을 가꾸는 농사의 일이 모두 그랬다. 

이곳에서는 업적을 내고 실적을 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것들이 전혀 없다. 

업적 따위는 개나 줘 버릴 무익한 것일 뿐.           


여기서는 어떤 꿈도 없다. 

하루하루가 평화롭고 하루하루가 은혜롭기를 바랄 뿐이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평화하며 내게 줄 것이 남아있다면 나누어 주면 그만이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라는 말처럼 올라간 모든 자리는 언젠가 반드시 내려올 날이 있게 마련이다. 

영원히 보장된 높이는 없으니까 말이다. 

굳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제왕의 몰락 이야기를 꺼낼 필요도 없다. 

나는 시골에 내려와서 올라가지 않아도 되는 현실이 너무 행복하다. 

무엇을 꿈꾸지 않고도 때를 따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조용히 저물어갈 수도 있는 

그런 삶의 오솔길을 걷는 것이 참 좋다.     


한 때는 인생의 훈장이라 여겼던 업적들을 새삼 뒤돌아보면 

그 영광의 광휘라는 것이 얼마나 형편없는 초라한 빛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겨우 그까짓 허망한 명예를 위해, 

겨우 그까짓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그토록 귀한 날들을 허비하며 노심초사했었단 말인가! 

아~ 이 덧없는 것들을 왜 그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을까? 

꿈이라 이름 붙이기도 부끄러운 욕심들이 끌고 온 내 인생을 이제는 제자리로 돌려놓고 싶다.     

 

그것이 무엇이든 나는 이제 모든 업적들과 적 별을 고한다. 

업적을 위해 달려가던 모든 시간들과도 작별을 고한다. 

나는 그냥 살아갈 거다. 

소박한 땅에 뿌리박은 푸른 나무처럼 

그저 주어진 한 생을 하루하루가 전부인 것처럼 그렇게 살아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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