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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솔 Jul 30. 2022

인생의 무게

산골 일기 열두 번째

성경의 다니엘서에는 신화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바벨론의 두 번째 왕인 벨사살이 어느 날 연회를 베풀었다. 

그는 그 연회를 통해 자기의 힘과 능력을 과시하고 싶었는지 

유대인들의 성전에서 탈취한 금그릇과 은그릇을 가져오게 하여 음식을 먹고 마셨다. 

성스러운 그릇들을 술잔으로 모독한 그들의 연회가 무르익을 즈음 갑자기 연회장의 벽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 이해할 수 없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기이한 장면에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놀랐지만 그 글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벨사살 왕은 그 글자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을 온 왕국을 뒤져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글자를 해석할 수 있다는 다니엘이라는 사람을 찾게 되었다. 

왕궁에 도착한 다니엘은 벽에 쓰인 글자가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고 알려주고 

벨사살에게 그 의미를 해석해 주었다.  

    

“왕이시여 메네라는 뜻은 당신의 나라가 하나님의 뜻에 의해 끝났다는 뜻이고 

데겔이라는 말은 왕을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함을 보였다 라는 것입니다. 

왕의 나라는 분열될 것입니다.”     


역사적 기록은 그 해석을 듣던 날 밤에 벨사살 왕이 죽임을 당하여 

그 예언적 해석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려 준다. 

나는 이 성경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데겔’이라는 말이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 인생의 무게를 다는 저울이 있다면 나의 무게는 가벼울까 무거울까? 

인생의 무게를 가늠하는 신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런 의문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살다 보니 이 나이가 되었고 또 언젠가는 살다 보니 죽음에 이를 날도 올 것인데 

그때 내 인생 전체를 저울에 단다면 내 인생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울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름 남들 하는 만큼 열심히 살아왔다. 

박수갈채를 받는 영광스러운 삶은 아니었지만 

크게 손가락질당하거나 비난을 받는 인생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인생이었다. 

하지만 살다 보니 평범하든 평범치 않던 내 인생의 무게가 ‘데겔‘이라는 평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두려움이 인다. 

우리 인생의 무게를 다는 저울추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내가 이룬 성취일까? 

아니면 지위와 권세와 명예일까? 

한 나라의 왕이었던 벨사살의 무게가 가벼웠다라고 평가된 것을 보면 

지위와 명예와 부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지식의 깊이 일까? 분투하는 정신일까? 

무엇이 우리 인생의 무게를 재는 기준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인생의 무게를 고민하는 사람도 거의 본 적이 없으니 물어볼 곳도 마땅치 않다. 

모두들 크고 작은 삶의 짐을 지고 욕망의 언덕을 기를 쓰며 오를 뿐이다. 

알 수 없는 그 끝을 향하여.      


그런데 벨사살의 궁전 벽에 글자가 나타난 것을 깊이 생각해 보면 어렴풋이나마 

그 글자가 나타나게 된 원인을 조금은 엿볼 수 있을 것도 같다. 

벨사살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성전의 기물을 술잔으로 사용하는 신성모독을 범하였고 

그로 인해 자기의 힘과 능력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그런 행동 속에 그의 가벼움이 담겨 있다. 

첫째는 무례함이다. 신적인 무례함을 차지하고 라도 자신의 만행에 사람들을 동참시키며 

사람들을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여기지 아니하고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존재로 여기는 군림이 

그 인생의 가벼움을 증명한다. 

둘째는 과시욕이다. 지금 용어로는 갑질이다. 

자신이 가진 부와 명예와 권세를 이용하여 약자를 업신여기는 것이다. 

성전의 기물을 술잔으로 전락시키면서 그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였다.

세상에서 가장 천박하고 가벼운 것은 아마도 자신의 힘과 지위를 이용하며 압제하며 과시하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자기가 고용한 운전수나 도우미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 고용주들, 

점원의 인격을 모독하는 자칭 부유한 사람들, 

부하를 자기 출세의 도구로 여기는 비인격적인 상사들, 

작은 이권의 기준으로 이웃도 친구도 헌신짝처럼 버리는 이악스러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천박한 일이다. 인간의 존재가치를 훼손하고 역겹게 하는 악취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의 가치를 무거움으로 채우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내 인생의 무게를 만드는 것일까? 

그 고민 가운데 내 가슴을 울린 한마디 말이 있었다. 이어령 선생이 생전에 남긴 한마디 말.  

   

‘남 위해 흘린 눈물이 인간임을 증명한다’     


아! 그렇구나. 나는 무릎을 치며 이 말을 곱씹어 보았다. 

누군가를 위해 흘린 눈물의 총량이 내 인생의 무게일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시간이 갈수록 뚜렷해져 왔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깊어지고 나니 마음이 괴로웠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용서하고, 

연민하는 눈물을 얼마나 흘렸을까? 그런 눈물이 내게 있기는 했었던가? 하는 깊은 회한이 들었던 것이다. 

눈물까지는 아니어도 부드러운 미소와 따스한 손길로 

누군가의 슬픔과 고통과 아픔을 보듬어 주는 그런 온유함이 얼마나 있었을까? 

나의 덧없는 셈이 한없이 나를 슬프게 하였다.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더 완고해져 가는 마음을 어떻게 부드러운 마음으로 풀어낼까? 

새로운 숙제가 생겼다. 

흔한 세상의 명리로 ‘자기만의 뚜렷한 기준과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라는 말을 숱하게 들어왔다. 

그러나 새삼 나이 들어 보니 그 말이 틀렸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 들어 갈수록 기준도 생각도 모두 내려놓고 그저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랑 하나면 족하지 않을까?

누군가를 위해 흘려줄 눈물 한 방울이면 그만이지 않을까? 

아무런 성취가 없어도 그것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이 아닐까?      

따스한 위로와 격려와 연민이 담긴 눈물 한 방울!

그 무게를 세상 그 어떤 명예와 부와 권세에 비할 수 있으랴!  

    

애써 자애로운 사람. 애써 모두 내어주고 남은 지푸라기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 남은 삶에는.      

어쩌면 가장 가벼운 삶이 가장 무거운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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