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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솔 Jul 30. 2022

백합도 피고

산골 일기 열한 번째

태풍 소식이 있어 걱정했더니 한차례 호우를 뿌리고는 사라져 버렸다. 

비에 씻긴 대기는 맑게 개어 멀리 느껴졌던 둔철산이 눈앞에 다가선 듯 선명하게 보인다. 

가볍게 지나간 태풍과 함께 기대하지 않았던 청명한 대기가 얼마나 고맙던지! 

그런데 비 개인 뜨락에는 전혀 예기치 않은 또 다른 선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꽃 몽우리가 오른 지 여러 날이 지났건만 언제나 꽃이 피려나 더디기만 하던 

뜨락의 백합이 드디어 꽃잎을 만개한 것이다. 

그 화려하고 기품 있는 자태라니! 

체리 세이즈 같이 잔잔한 꽃들로만 가득했던 정원이 술렁이는 느낌이다. 

마치 오랜 누옥에 감당할 수 없는 귀인이라도 방문한 듯이. 

너무 무성하게 번져나간 메리골드를 솎아내고 조금 허전하던 차에 핀 백합은 성하(盛夏)의 더위를 씻어준다. 세상이 아무리 비집고 들어갈 틈 없이 촘촘해도 언제나 작은 여유 하나는 있기 마련이다. 

봄꽃들이 모두 진 자리에는 어김없이 여름 꽃들이 피고 여름 꽃이 진 자리에는 가을꽃이 피어난다. 

겨울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오래도록 흰 손자락을 흔들고 서있는 갈대며 추위 속에 제 잎사귀를 붉게 물들이는 기린초가 그렇다. 

자연에는 누군가를 위해 내어 줄 자리의 여유가 항상 남아있다. 

각박하고 이악스럽지 않다. 

뜨락을 가득 메운 꽃들도 자신의 때가 지나면 시들어지며 다음 세대를 위해 자리를 내어 준다. 

그러므로 인해 자연은 끊임없는 아름다움을 이어간다. 

아름다움이 전달되는 레이스를 감상하는 일은 나는 아마 세상 제일가는 행운아일 것이다. 

햇살이 깊든 옅든, 바람이 있든 없든, 비가 많든 적든 세상이 어떠하든지 

제 소임을 다하는 풀과 꽃과 나무들의 묵묵함이 나는 참 좋다. 

매사에 일희일비하며 감정을 고조시키는 내 감정의 기복으로는 자연의 평상심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이제 백합이 지고 나면 여름의 끝자락에 이를 텐데 그때는 뜨락의 빈자리를 어느 꽃이 채울 것인가? 

봄부터 새싹을 디밀고 오른 동국과 구절초가 자기 때를 기다리며 서늘한 잎새를 다듬고 있을 터이다. 

가을이 시작되면 흰빛 청초한 구절초와 노란빛이 따스한 동국의 숲을 보게 되리라. 

그러고 나면 동백의 꽃 몽우리가 서서히 맺혀 오겠지. 

꽃을 기다리는 마음은 방문을 예고한 연인을 기다리는 마음과 같다. 

설레는 마음에 몇 번이고 나가서 언제쯤 꽃망울을 터뜨릴지 꽃의 기운을 가늠하게 된다.      

그런데 가만 살펴보면 꽃들의 성격이 모두 제각각이다. 

한 며칠 바짝 피었다가 시들어 버리는 꽃이 있고, 여름을 가로질러 가을까지 계속 피어 있는 꽃도 있고, 

피었다 졌다 를 반복하는 꽃들도 있다. 

대부분 작은 꽃들은 오래도록 피어있는데 크고 화려한 꽃들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초여름부터 핀 체리 세이즈는 아직도 여전한데 큰 기쁨 속에 핀 백합은 

이틀이 지나면서 벌써 시들기 시작한다. 

미인박명이라고 했던가! 

화려한 꽃일수록 그 아름다움이 짧고 그 뒷모습이 초라하다. 

지는 장미, 지는 백합은 예쁘지 않다. 

예쁘게 늙는다는 말이 장미나 백합에게는 무색하다. 

나는 문득 그것이 자연계의 평등이 아닌가 싶다. 

인간세상은 승자독식이 가능하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다. 

모든 것을 독점하고 다 가질 수 있는 존재는 없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소박한 모습으로 오래 남는 꽃, 한 순간 천하를 매료시키며 폭풍처럼 사라지는 꽃. 

자연은 적당한 누림과 여유의 한계 속에 서로 가대며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상이다.

        

만일 신께서 우리 인간에게 천하를 호령하며 굵고 짧게 살겠느냐? 

아니면 두각은 못 나타내더라도 오래도록 제자리를 지키며 살겠느냐?라고 선택을 요구한다면 

나는 무엇을 선택할까? 

이 물음을 식물에 비유하면 한순간 온 세상을 꽃 천지로 덮은 뒤 분분히 사라지는 벚꽃이고 싶으냐? 

아니면 은은한 향기로 오래도록 남는 가을 국화가 되고 싶으냐?라는 물음으로 비유될 것이다. 

그런 신의 물음이 있다면 나는 아마도 망설임 없이 후자를 선택할 것 같다.

 어디에든 정점에 설만한 용기나 자질이 부족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나 스스로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괜찮다. 

소박하더라도 한 송이 꽃이라 부를 수 있는 세월이 있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한 송이 꽃도 피워내지 못하고 무성한 잎새만 자랑하다 시드는 풀들도 얼마나 많은데.      

그대에게는 꽃이라 부를 수 있는 세월이 있었던가? 

그렇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아니한가? 

어느 꽃도 사시사철 필 수는 없으니 그 꽃 같은 날들의 추억만으로 충분하지 아니한가?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백합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꽃다웠던 시절을 더듬어 추억한다. 

그래 그런 세월이 있었지. 

꽃다운 청춘의 날들이 있었지. 


그럼 됐지. 

뭘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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