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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솔 Aug 29. 2022

텃밭의 자반뒤집기

산골 일기 스물일곱 번째

흔히들 산골생활의 묘미가 자급자족이 가능한 텃밭에 있다고 말한다. 귀촌을 결정하면서 나무와 꽃이 함께 

어우러진 자그마한 텃밭은 마음 한 구석을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최고의 로망 중 하나였다. 집이 지어지고 완공도 되기 전에 꾸며진 텃밭은 그런 연고로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가슴을 뛰게 하였다. 

커다란 나무틀을 짜고 채소들이 자랄 수 있는 황토를 채우고 시간이 되는 대로 산의 부엽토를 캐서 날랐다. 

거기에 더하여 비료가 든 상토를 덮어 땅기운을 돋우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심은 것이 시장에서 사 온 대파였다. 처음부터 키운 것은 아니었지만 필요할 때마다 뽑아서 먹는 대파는 시골생활의 로망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이어서 상추며 열무며 시금치를 심었다. 하지만 초보 티가 역력한 농사꾼에게 땅은 녹록지 않았다. 때를 놓쳐 심은 채소들은 시들시들한 모양새가 영 건강해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초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물이나 듬뿍 부어주는 일이 전부였다.     


그런데 살다 보니 텃밭의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텃밭을 조금 더 햇살이 잘 드는 곳, 자투리땅의 여유가 있는 곳으로 옮기기로 했다. 몇 날 며칠을 생고생하며 아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곳으로 텃밭을 옮겼다. 그 사이 가뜩이나 시들 거리던 채소들도 옮겨가느라 몸살을 해야 했다. 하지만 텃밭의 유랑생활은 시작에 불과했다. 나무 상자로 시작한 텃밭은 붉은 벽돌 테두리로 변했고, 다시 큰 강돌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것도 며칠 못 가서 텃밭은 두 곳으로 분산됐다. 소위 텃밭 자반뒤집기가 본격화된 것이다. 텃밭 위치를 바꿔 새로 조성하고 나면 이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불편함이 대두되곤 했던 것이다. 덕분에 동반해서 수난을 당한 것은 무고한 잔디였다. 텃밭이 이동할 때마다 뽑히고 심기기를 무한 반복해야 했으니... 내가 잔디였다면 ’ 해도 해도 너무 하네 ‘ 하며 파업이라도 벌였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먼저 귀촌한 선배들이 이구동성으로 조언해 주던 말이 새삼 떠올랐다.

”귀촌 일 연차는 공연히 뭘 이리저리 바꾸느라 제 몸 상한지 모른다니까 “       


도시를 벗어나 시골로 들어왔다는 흥분 때문에 섣부르게 정했던 많은 것들이 경험이 쌓이면서 조금씩 제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작은 것 하나라도 이리 바꾸고 저리 바꾸며 마음이 들 때까지 무모한 노동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그래도 그 일이 그리 싫지 않으니 어쩌나! 텃밭의 작은 변화 

하나하나가 마음을 흥분시킨다. 뿌린 씨앗이 움돋는 것, 겨우내 죽은 줄만 알았던 꽃대에 푸른 기운이 입혀지는 것, 흙속에 묻혀 있다가 다시 움돋은 상추 잎사귀 하나까지 모든 것이 신비하고 경이롭다. 손길 가는 만큼, 호미질 한 번 더한 만큼 다듬어지고 가꾸어지는 일상의 정직한 땀방울이 희열을 느끼게 한다.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자반뒤집기를 했지만 텃밭이 주는 묘미는 소소한 수확을 통해 시골 살이의 즐거움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죽고 못 사는 엄청난 일은 아니지만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 살아있는 것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의미로 나를 충일하게 한다.      


텃밭을 옮긴 자리는 손님들을 위한 바비큐 장으로 꾸몄다. 디딤석을 깔고 텃밭에서 떼어낸 붉은 벽돌을 둘러 나름 그럴듯하게 다듬었다. 불에 달궈져도 잘 깨지지 않는다는 마천석을 두르고 참나무 장작을 때어서 찾아오는 분들을 대접하곤 한다. 별 반찬은 없어도 텃밭에서 막 캐온 상추쌈 맛이 괜찮은지 손님들이 잦다. 아파트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목공이며, 공작, 흙일들이 점차 일상이 되어간다. 집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내디뎌도 할 일이 태산으로 널렸다. 뭐 급할 것도 없고 안 해도 그만이지만 하자고 마음먹으면 하루해가 짧다. 하나의 일과를 마치고 나면 새로운 일과가 마음에 떠오른다. 어제만 해도 아내가 제법 큰 해당화를 사 왔다. 오래전부터 수돗가에 해당화를 심고 싶어 했던 아내의 작은 소망이었다. 아마도 내년 여름에는 수돗가에 흐드러진 해당화를 볼 수 있으리라. 하지만 땅을 파고 나무를 심는 노동은 고스란히 내 몫이다. 앞으로도 파종시기에 맞춰 나무며 꽃모종을 심는 일은 널릴 것이다. 벌써부터 라일락이며, 애기 사과를 심자고 조르는 중이어서 언젠가는 

반드시 정원 한구석에 라일락과 사과 꽃이 필터이다. 물론 그 나무를 심고 옮기는 노동도 곁들여져서 말이다.     

잘 되었다고 소문난 정원 한 곳이라도 견학하고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필연적으로 밭일이 늘어난다. 누군가가 이루어 놓은 예쁜 모습이 우리의 정원과 비교되어 따라 하지 않고는 못 베기는 것이 귀촌 일 연차의 숙명 같은 것이니까 말이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 정원이 잘 꾸며진 집이 있는데 한번 가봅시다 ‘라는 말이 그리 싫지 않다. 예쁜 나무를 보면 집 마당 어디에 어울릴까를 생각하느라 눈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평소에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꽃들을 검색하고 찾아보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능소화, 죽단화, 금잔화, 버베나, 베고니아, 금창초... 집안의 텃밭 귀퉁이에서 자랄 꽃들을 생각하면 그만 미소가 절로 번진다.      


”정원은 5년 정도 길게 보고 가꿔야 하니 서둘지 말게 “     

선배 귀촌인들의 경험 어린 조언이 아직은 귓등으로 스친다. 당장 보고 싶은 급한 마음에 꽃들이 일렁거린다. 앞으로도 나의 정원과 텃밭은 몇 번이고 자반뒤집기를 하겠지. 나는 그 흙투성이 노동이 계속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일로 남겨지기를 소망한다. 오늘도 아내는 정원의 돌 틈에 심을 꽃모종과 가을꽃 몇 송이를 사 왔다. 깨진 옹기그릇에 흙을 돋우고 소박한 꽃송이를 어우러지게 심으니 제법 보는 맛이 난다. 집안 뜨락 곳곳에 꽃송이를 옮겨 심는 이 치명적 습관은 앞으로도 오래도록 계속될 것 같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 내 생각의 변화만큼 뜨락도 매일매일 변한다. 서쪽 돌 틈에 심은 안개꽃은 왜 그렇게 일찍 말라 버렸을까? 황화 코스모스는 씨앗마다 움터서 군락을 이루는데 메리골드는 왜 피어나지 않을까? 여름을 서늘하게 식혀주던 보랏빛 수레국화 외에 어렵게 구한 붉은빛, 흰색 수레국화 씨앗은 어디에 뿌려야 좋을까? 숲처럼 무성해진 동국을 솎아 주어야 할까? 수국이 올 겨울을 나려면 어떻게 따뜻한 기운을 북돋아줘야 할까? 이런저런 걱정들이 머릿속에 울울하다.

 ’지멋대로 내버려 두면 알아서 잘 커!‘ 그 말은 쑥대밭이 된 어느 정원을 보고 난 뒤로 믿지 않기로 했다. 사랑도 그러하듯이 손이 가고 발길이 닿고 마음이 머물러야 예뻐지고 귀해진다. 저절로 되지 않는 것만이 사랑스러워지는 마법을 부린다.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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